윤반웅 목사님, 이두수 목사님, 유운필 목사님, 전학석 목사님!
진실이라는 말보다는 고지식하시다는 말이 제격인 네 분 목사님이 이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고 계시다는 것으로 그냥 마음 든든합니다. 전학석 목사님이 어디 우리를 떠나신 겁니까? 전 목사님은 세 분 목사님과 함께 고요히 우리 가운데 같이 계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진실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번 감옥에 들어와 있는 동안 ‘양심’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많이 썼습니다. 세상이 온통 속임수밖에 모르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 그냥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속에는 네 분 양심이 우직하게 서 계시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양심이 상 심부름꾼의 힘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시는 윤반웅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목사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보았습니다. 양심은 몸의 힘까지 겸비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신 분이 김구 선생님 아닙니까? 김구 선생님은 가까이 모시지 못했지만, 몸의 힘까지 겸비한 양심으로 윤 목사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쪽 같은 양심 이두수 목사님, 대쪽 같으시면서도 늘 평화로우시고 모두를 감싸 안아 주시는 이 목사님, 정말 만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유운필 목사님은 저에게 늘 투우를 연상하게 하십니다. 불의를 보고 폭발하는 화산 같은 면도 있지만, 온몸으로 불의를 들이받는 투우 같은 양심. 유운필 목사님, 요새도 등산을 하시는지요?
세 분 다 건강이 안 좋으시어 현역에서는 물러앉으셨지만, 아쉽다면 그지없이 아쉽지만, 청빈한 선비의 양심으로 사신 전학석 목사님과 함께 우리들 마음의 지성소에 고요히 앉아 계시는 것 만으로도 이 역사는 무게를 얻고 근원에서 맑아지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목사님들께 아무 말씀 못 드리고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제가 왜 실정법을 어기면서 갔다 왔는지를 목사님들은 이해하시고도 남으실 줄 압니다. 통일은 부쩍 다가왔습니다. 아무도 못 막습니다. 저를 위한 네 분의 기도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부디부디 건강을 보전하셔서 제 어머니와 함께 통일을 보시도록 하십시오. 분단 50년을 넘기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북쪽에서도 복음의 씨앗은 움이 텄습니다. 김재준 목사님, 함석헌 선생님, 저의 아버님이 가시고 난 자리를 지금 세 분 목사님이 지키고 계십니다.
뒤를 쫓아가는 한 목사 문익환 드림
당신께
오늘 정평 목사님 세 분이 왔다 가셨어요. 이해학 목사는 다른 일이 있어서 후에 오시기로 하셨다는군요. 고마웠습니다. 서경원 의원이 나보다 먼저 갔다 왔군요. 한 사람이라도 더 갔다 오는 게 좋은 일이지요. 안기부가 대한민국을 온통 새빨갛게 칠해 버렸네요. 세상에 그렇게 철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세태라니, 한심, 한심, 또 한심.
오늘 네 분 목사님께 글월을 올리는데, 어쩌면 내가 제일 제일 뵙고 싶은 분들인지도 모르죠. 이만 총총.
당신의 사랑 1989. 6. 28.
교도소로 면회와 주신 세 목사님에게 감사의 편지. (전학석 목사님은 이미 소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