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4월 15일 마닐라에서 갑자기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시계추는 너와 함께 했던 2003년에서 멈췄다. 비단 나뿐이겠니. 너의 웃음, 너의 수려한 영어실력, 편집능력, 이주노동 조직활동가이자 현장 연구자가 되고 싶어한 너의 마음을 기억할 볼리비아의 성희, 인도네시아의 얀노, 일본의 스즈끼, 미국의 에릭, 한국의 의령과 아시아의 친구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메신저와 새삼 너를 그리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지난 주었다.
너의 죽음을 알려준 재한 필리핀이주노동자 모임 <카사마코>의 상심은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었겠지. 칫솔, 속옷, 갈아입을 티셔츠, 필리핀에서 온 소식과 신문들을 가득담은 가방 하나 들고 이곳저곳 이동하며 자신들과 동거동락하던 너를 어떻게 쉽게 보낼 수 있었겠니. 지금 팻북에는 맑은 너의 20대 웃음이 담긴 사진부터 거리에서 투쟁하던 사진들까지 그리고 니가 남긴 딸 파위와 사랑하던 여인 크릭쉬가 함께 찍은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 이렇게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날 생각을 했니, 마음에 슬픔만 차오른다.
너와 함께 일한 대화동 평화방에 촛불을 켰다. 4월 19일 조용히 떠난 너이기에 우리도 조용히 너를 다시 만났다. 아친 홈페이지에 남아있는 너의 사진을 모아보니 영정사진이 되었네. 마크가 가장 좋아하던 커피, 담배, 코카콜라와 빵을 준비했어. 눈물을 삼키며 너의 이야기할 때는 웃음도 많이 터졌어. 너를 기억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밤을 새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어. 평소 너의 웃음이 남긴 선물이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너의 흔적들이 새삼 빛난다. 역사가 좀 더 흘러가면 이름없이 살다간 너와 같은 활동가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올까?
너의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함께한 시간의 기억들은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우리들에게 치매가 오기 전까지는...
먼 훗날 필리핀, 한국, 아니면 제3국에서 우연히라도 너의 딸 파위를 만나면 그 많은 기억 중 함박웃음 마크 아빠를 가장 먼저 이야기할게. 파위도 웃으며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고...
세 살 된 파위를 안고 슬픔에 잠겨있을 트릭쉬에게 가끔 안부 전화할게. 조금 더 있다가 만나자. 그때도 활짝 웃으며...
차미경(아시아교육문화 연구소장)
마크 파라단(43세)은 1999년 기독학생회 활동가로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이후 약 10여 년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국제이주가 보편화된 필리핀의 해외 이주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다 2010년 트릭쉬와 마닐라에서 결혼하였습니다. 아시아의 친구들에서는 2002-2004년까지 AALA 신문제작 인턴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아친 곳곳에는 아직도 마크의 자취가 남겨져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