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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에 찾아온 위기
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이다. 하청직 포함 중공업에서만 16년을 일하다 보니 조선업이 누린 호황과 위기를 모두 경험했다. 2023년에 현대중공업은 노동자가 부족해 공정 지연으로 인한 손실이 누적되자 이주노동자 대거 유입정책을 펼쳤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알려면 조선소에 찾아온 위기, 국내 노동자들이 겪은 문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조선업이 호황기 시절을 보내는 도중 미국발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조선업은 당장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물동량(물류이동량으로 국가간 교역량을 말함)이 심각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컨테이너 운임 지수가 급격하게 떨어져 적자가 나고 선박 발주량은 뚝 떨어졌다. 조선업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현대중공업 임원은 회사경영설명회에서 "발주량이 급감했기 때문에 발주량 대비 조선소가 많아 공급 과잉 상태다. 이를 해결하려면 공급과 소비의 균형이 맞춰질 때까지 여러분들이 버텨야 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능률 향상을 요구했고 현장의 노동강도도 꽤 올라갔다. 작업에 필요한 예산도 삭감되어 작업용 소모품 공급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동량이 줄어들자 선주사들은 배를 안 가져가거나 싸게 가져가려 했다. 노동자들의 작업에 이런저런 지적을 하면서 인도일을 늦추려는 것이 느껴졌다. 고용위험을 느끼자 노동자들은 여기저기에 불려가서 일했다. 선박 발주량이 급감하자 조선소에서는 해양 시추선 같은 해양 구조물을 제작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나도 시추선을 만드는 작업과 바다 위의 움직이는 정유공장인 FPSO 같은 해양 플랜트 설비에도 투입되었다. 정부도 조선업 위기 상황에서 적극 해양 플랜트 제작을 조선소에 권했었다. 당시 조선소는 해양 플랜트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적은 상황에서 국내 대형조선소들이 경쟁하며 물량은 받은 것이 원인이 되어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2014년도에는 3조 2495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적자가 나버렸다.
출처:http://www.mk.co.kr/news/business/6575041
현대중공업 사상최대 적자 (출처: http://www.mk.co.kr/news/business/6575041 )
2014년부터 조선업 위기는 2015년에 상황 악화로 이어졌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모두 조단위의 적자가 났고 대형 조선 삼사의 적자액을 합치면 8조 5천억원 규모의 적자가 난 것이다(연합뉴스, 2016).
구조조정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중소 조선소가 문을 닫기 시작했고 대형 조선소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이 시기에 원하청 노동자 포함해 3만 5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참고로 2014년 이전에 현대중공업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꽤 많이 있었다. 대부분 E9 비자였다. 당시 현대중공업에는 6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했다. 일손이 부족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했다.

현대 중공업 사내하청 근무 이주노동자들 /사진제공=아시아의친구들
그 시절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강도가 높은 직종에 많이 있었다. 페인트칠을 준비하는 작업인 소지 작업과 높은 곳에서 발판을 설치하는 업체에서 많이 일했다. 엔진사업부 하청업체에도 많았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일터를 떠났다. 소리소문없이 순식간에 이주노동자들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하청 노동자 그리고 원청노동자도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났다. 이 시기 하청 노동자들은 해고뿐만 아니라 임금 체불로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하청업체가 줄줄이 폐업했다. 임금과 퇴직금도 날려버린 분들이 늘어났다. 속상함에 잠도 못자고 피눈물 흘리는 지인들을 다독거리는 것 외에 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4대 보험 체납의 피해자들도 발생했다. 하청업체 사장이 하청노동자 급여에서는 4대보험을 공제하고 이 돈을 공단에 제출하지 않고 가로챈 사건이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다.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줄고 긴축정책으로 실질임금도 삭감되었다.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 조선업 불황기는 2018년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LNG선 발주가 점차 늘고 이후 컨테이너선 발주도 늘어났다. 텅빈 물량은 서서히 채워지더니 지금은 수년 치 물량이 확보되었다, 선가는 점점 올라 조선업 최대 호황기인 2008년 수준의 선가를 회복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인력을 내보내던 조선업은 순식간에 인력이 부족해졌다. 구조조정으로 피눈물 흘리게 만들어 쫓아내더니 물량 많다고 이제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현장을 떠난 노동자들은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이미 구조조정 시기에 임금도 삭감되었고 창사이래 470여 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업장에 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대규모 정규직 모집을 한다면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 있겠지만 사용자 측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를 짓누르고 삭감시킨 임금회복도 가능성도 희박했다. 회사는 차선으로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출처: 금속노조 이주노조 교안, 2022 제공: 아시아의친구들
다시 시작된 이주노동자 고용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현대중공업으로 받아들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주민은 집값이 내려간다며 반발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환영 현수막을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프간 난민이 정착했고 우려와 달리 회사에 적응 중이다. 물론 그들 때문에 집값도 내려가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대규모로 이주노동자들이 조선업에 유입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이 소식이 노동자들에게 전해지자 꽤나 술렁거렸다.
이주노동자가 오지 않으면 회사는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임금을 올릴 것이고 신규 채용도 할 것인데 이주노동자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왔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이주노동자들이 현장에 처음 왔을 때는 말이 안 통해서 어려웠고 숙련도가 낮다 보니 왜 받았냐는 식의 불만이 많이 나왔다. 치안 걱정도 꽤 많이 하는 분위기였다. 이주노동자들은 밤에 밖에 나갈 때 무리지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이런 불만과 불안감은 이주노동자들이 오고 몇 년간 같이 일하면서 많이 해소가 되고 있다. . 우선 임금이 높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이주노동자들은 알선업체를 통해오는데 이 업체에는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의 돈을 준다.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한국에서도 살아야 한다. 공제비도 만만치 않다, 기숙사와 식대를 무료 제공함에도 업체 사장이 몰래 기숙사비와 식대로 50만 원씩 공제해버리는 일도 있다.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지자 저임금에 고생한다는 마음들이 생겨났다.
안 통하는 말은 통역기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며 해결했고, 시간이 지나며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실력도 점차 개선됐다. 숙련도 역시 올라갔고 용접업무를 하던 노동자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관련된 불만도 빠르게 완화됐다. 나도 이주노동자들과 일하는데 혼자 하면 힘든 일을 같이 해 더 쉽게 할 수 있고 많은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일하다 다칠 요소가 많은 사업장이다. 번역기로는 충분하지 않은 안전 관련 정보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통역사도 고용하고 교육도 하지만, 더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 체불과 폐업으로 인해 대기 중인 노동자들이 꽤 있다. 직종이 맞지 않는다고 이직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현대중공업 내 이주노동자 관리 부서가 있는데 이런 어려움을 잘 해결하도록 신경 쓰면 좋겠다.
밥심이 있어야 일하는데.
흔히 알려진 사실인데 현장의 무슬림 노동자들 중 '할랄 인증 음식'만 먹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할랄 식품은 과일, 채소, 곡류를 포함해 식물성 음식, 해산물 등 이슬람 율법 하에서 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을 말한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하청에서 일한다. 하청지회 노동조합은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식사를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선전물을 내어 식사를 챙겨줄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돼지고기가 안 들어간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됐지만 그렇다고 할랄 인증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무슬림계 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는 방법을 찾아봤다. 울산에 할랄 인증 음식으로 도시락을 만드는 업체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어느 날 노동조합에 방문해 이런 내용을 공유하고 무슬림 노동자들이 할랄 인증 도시락을 신청할 수 있게 회사에 요청해달라고 제안했다. 집행부는 좋은 요구라며 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아직 회사로부터 긍정적인 답이 오진 않았다. 머나먼 타국 땅에 힘든 일하러 왔는데 먹는 것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한다.

원출처-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제공=아시아의친구들

식사 중인 노동자들 /시진제공= 아시아의친구들
1970년대 독일에서 한국인들은 탄광일을 하며 이주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나 역시 이주노동자가 되려고 준비한 적이 있다. 돈도 많이 벌고 경험도 쌓고 싶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같이 일하는 이주노동자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함께 일하며 느낀 점은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울 때 같이 땀 흘리고 추울 때 같이 추위에 떤다.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는 짧은 영상을 보거나, 고향 가족이나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럴 때는 먼 곳으로 날아와 일하는 동료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아시아의친구들 회원)
출처 : 이로운넷(https://www.ero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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