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이해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3. '시간'
차미경
게시일 2025.01.16  | 최종수정일 2025.01.16

​실용적인 서양 교육을 받은 한국인은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한다. 돈의 가치를 잘 알기에 마치 돈을 아끼듯 시간도 그만큼 귀중하여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미얀마(불교)에서 시간은 중생의 삶을 갉아먹는 것으로 말한다. 인간은 시간에 의해 조금씩 갉아 먹혀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한다. 이렇게 죽어 사라져버리는 시공간 속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세상을 고통으로 몰아가며 성공하는 것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삶에서 정말 간직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죽음은 매 순간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죽음’을 보기 쉽지 않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가끔 장례식장에서나 냉동 처리된 깨끗한 시체를 통해 죽음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미얀마의 마을에서 시체는 무더운 날씨로 금방 부패해 얼굴은 검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시체 특유의 냄새가 주위를 가득 채운다. 사실 많은 경우 한국이었다면 의학의 힘으로 죽지 않았을 사람이 많다. 안타깝지만 특히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양곤제1어린이병원을 담당하는 사원에 머물렀을 때, 거의 매일 장례법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 해는 비가 무척 많이 왔고 너무 습한 날씨 탓에 어린이병원에서 죽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도시 빈민들의 영양과 위생 상태가 안 좋으니 아이들은 특히 병에 쉽게 걸리고 만다. 도시 빈민가의 아이 중에는 불법조직에 팔려 앵벌이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시궁창 위 움막에 살며 부모와 함께 쓰레기를 뒤지고 비를 맞으며 꽃을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도 있다.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이 문득 떠오른다. 안데르센이 이야기를 쓸 당시만 해도 덴마크는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학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아이가 죽는 사건은 빈번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 덴마크의 사회복지는 20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정부와 국민 모두의 치열하고 끊임없는 타협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전 사회적 합의 과정이 없다면 한 개인의 힘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소녀에게 성냥 한 통 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미얀마 사람들이 서로 돕고 나누는 전통이 있을지라도 현대의 빈곤 문제는 기존 마을 공동체나 종교적 신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진 : 양곤 어린이병원에서 질병으로 죽은 아이와 - 장례 공양 법회 후에 바로 옆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비극의 연속이다. 지방에서는 시민군이 정부군의 초소와 부대를 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군부는 그 보복으로 마을을 폭격하고 불태워버리는 일이 매주 반복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와 여성은 너무나 쉽게 희생 당한다. 비탄에 빠진 청년들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혁명 완수의 그날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맹세한다. 반대로 군인과 가족은 시민군에 대한 증오를 키워가며 군부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 견고해져 간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무지는 무한 반복되며, 특히 전쟁 상황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아 인간성을 잃고 도덕과 양심의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또한 무력에 의한 정의 실현과 평화는 오래지 않아 또다른 폭력과 증오를 불러옴을 본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대부터 쌓여온 민족갈등과 종교갈등이 내재된 미얀마에, 과연 혁명이 성공한다고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까? 살생을 위한 무기 지원이 미얀마의 행복을 위한 일일까?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 간 끊임없는 보복 학살의 비극이 미얀마의 미래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인류에게 전쟁과 죽음의 두려움은 일상이며 평화는 매우 드문 귀한 가치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인간은 결국 죽어 역사를 이루는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선택할 기회를 준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분노의 힘으로 살다가 죽는 삶과, 세상에 대한 자비심(자애와 연민)으로 살다가 죽는 삶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엇이 더 가치로운 삶이고 죽음인지 우리의 양심은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짧은 기간일지라도 평화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다. 그렇기에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사의 한줄기 흐름도 만들어야 한다. 인류가 끝없는 전쟁과 증오의 역사를 반복할지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심으로 가치로운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