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8년 1월 13일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율리아가 딸 리자와 2주 전 친정인 러시아에 다녀왔다. 율리아는 ‘아시아 친구들’의 부설 재활용품 가게 ‘나눔꽃’에서 일하던 동료였다. 여행길에 오른 이유는 친정어머니가 암으로 치료 불가능이라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송년회에 함께한 남편은 기러기아빠 신세가 될 처지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난 농담반 진담반으로 “평소에 좀더 잘하시지 그랬어요?”라며 술 한 잔을 건넸다.이주민, 그들의 모국을 인정하자
율리아와 아친의 인연은 ‘한글교실’에서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그녀가 다른 나라에서 시집온 주부들까지 잘 챙기는 마당발임을 알게 되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율리아의 성실한 성품은 ‘나눔꽃’ 근무로 이어졌다. ‘나눔꽃’은 그의 손길로 새롭게 단장되어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그는 매일 먼지 쌓인 옷을 정리하여 가난한 동네 아줌마들과 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맞는 옷을 골라 입혀주며 월동준비를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율리아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리자만 돌봐야 할 것 같다며 고민을 내비쳤다. 유치원에서 리자가 친구들에게 가끔 맞는다는 것이었다. 생김새가 다르고 키가 작아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는 추측했다. 친구 나타샤는 “엄마, 아빠의 키가 작아서 그런 걸 어째?”라면서 리자를 달랬고, 또 다른 이는 리자가 너무 예뻐서 또래친구들이 그렇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위로했다. 이런 일들이 생기면 당사자들이 이중문화 속에서 자란 자녀의 어려움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데, 함께하는 우리들은 조금 달랐다.
국제결혼 자녀들에게 ‘다름’이 영원히 자신을 규정하는 딱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자식에게 그러듯이, 리자에게도 친구들이 귀찮게 하면 같이 쥐어박으라고 그 대응법까지 한 수 일러줬다. 여느 아이들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대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서 리자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유치원에 다시 갔다. 그동안 율리아는 어린 딸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면서.
엄마들 사이에서 리자는 이중문화 자녀들의 모범 사례이다. 노래를 시키면 ‘곰 세마리’ 동요를 부르고 시키지 않아도 러시아 동요를 잇따라 부른다. 화가 나면 러시아 말로 소리치고, 기분이 좋으면 한국말로 다가와 속삭인다. 외할머니와 국제통화를 하면 러시아말이 줄줄 나온다. 아직 어리지만 엄마가 러시아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터득해 간다. 부지런히 한국어, 러시아말로 대화한 엄마 덕택이었다. 리자는 더 크면 알 것이다. 엄마가 고향을 떠나 살면서 주민등록증이 없이 많이 불편했지만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고향 러시아는 딸에게 가르쳐주고 남겨줘야 할 반쪽의 뿌리이자 엄마가 밤마다 전해주는 이야기보따리의 근원이다.
그녀처럼 우리 주변에는 한국에서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이 많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여 정부에서는 2007년 국제결혼 주부들의 이중국적 허용을 검토한다고 했는데 아직 말이 없다.
예쁜 아시아 2세들이 지금 곳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있다. ‘아시아의 친구들’만 해도 작년 한 해에 15명 정도 태어났다. 아이들에게 이중언어가 필요한 이유는 엄마, 아빠와 소통을 잘하고 더 나아가 정체성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엄마, 아빠들의 모국의 역사와 삶을 온전히 인정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행’은 과거와의 결별이며 포기가 아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또 다른 선택의 확장일 뿐이다. 이주민들과 자녀들, 노동자들의 영주와 체류 조건을 완화하고 규제를 푸는 것이 이땅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을 위해 차기 정부가 가장 먼저 투자해야 할 인권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미경/아시아의 친구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