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와 함께
[미얀마 공동체] '찟따수카 미얀마'
신대연
게시일 2026.05.06  | 최종수정일 2026.05.06

[미얀마 공동체] ‘찟따수카 미얀마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 주택가에 위치한 찟따수카(마음의 행복) 미얀마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 단체에 미얀마의 문화와 일상 이해를 돕는 글을 정기적으로 써주시는 디라 스님과 2019년 미얀마에서 오신 지도 법사, 위쑤따(VISUTA ASHIN) 스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간 미얀마 노동자 100여 명이 월급을 모아서 준비한 곳이므로, 노동자들이 주인입니다스님께서 강조한 공간의 역사성은 구석구석 붙어있는 오래된 기억의 사진들, 포스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우리(알리, 세라, 일리아스)를 반갑게 맞아 준 디라스님은 한국인으로 미얀마에서 출가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아래 영상에는 미얀마와 한국인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디라스님은 10년 이상 미얀마에서 생활과 수행을 하던 중, 2021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사찰에서 미얀마 스님들과 운영하던 교육사업을 잠시 접고 20224월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위쑤따 스님은 지난 2019년 한국에 입국해 이곳 사원에서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의 불교 신행을 지도해 왔으며,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 집회에 청넌들과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활동을 펼치고 계십니다.
 
대구경북지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이 모이는 찟따수카 사원은 미얀마인들이 모여 법회를 보는 불교사원이기도 하고 미얀마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이 곳은 고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월급으로 공간을 준비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도록 기여한 의미있는 장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 디라스님의 연재 기사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얀마인들에게 불교란 종교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불교는 생활이며 문화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미얀마에서도 그랬듯이 이곳에 살면서도 사원에 온 사람들은 여기저기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경조사도 함께 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일요일에는 돌잔치가 있었습니다. 본국을 떠나 타지에서 노동자, 유학생으로 살며,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 마을 사람, 가족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얀마인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관습 덕분일 것입니다.
 
함께 이곳을 방문한 알리(이집트 난민 노동자)님은 한국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처음으로 타민족 공동체 공간을 보았습니다. 모슬림 신자인 알리 님이 부처님을 모신 법당(사실 2층 작은 방이었지요)에서 스님들과 직접 만난 느낌은 어땠을까요? 짧은 한국어로 좋았다라고 합니다. 난민이라는 처지의 공통성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대구 성서공단 공단 가까이에 있는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없는 일리아스 님은 방문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좋았어요. 집회에서 이주노동자 만나도 반가운데, 직접 공동체를 운영하는 노동자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음식도 너무 맛있었어요. 아침부터 행사 준비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요. 저도 설거지를 함께 했는데, 자기 그릇은 자기가 다 닦는 것 같아서 눈치로... 한국말을 다 잘해서 그것도 좋았어요. 제가 친하게 지내는 이집트 친구들이 한국말을 더 열심히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를 하니,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게 더 많아졌습니다.”
 
이날 노동자들이 준비한 생일파티 음식은 닭고기 요리로 평소보다 덜 기름져서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을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주방에서 점심식사 준비와 서빙을 남자들이 도맡아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건물 구석구석을 소개해주는 한 청년을 만났는데 미얀마 배우처럼 잘 생긴 남자였습니다. 노동자로 일하면서 쉬는 날은 사진을 찍는다고 했습니다. 생일파티 주인공 아가를 카메라에 담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디라 스님은 국가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를 사는 청년들이 상호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주목하며,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한국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다. 대단히 순응적이라고만 생각한 미얀마인들에 대한 평소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하네요. 드라마와 케이팝뿐만 아닌 한국의 촛불시위가 미얀마로 전해지며 미얀마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심어줬다는 겁니다. 그 희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어디서든 미얀마 청년들을 만난다면 힘내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3년 전 긴급 모금 지원과 주민교육을 위한 노트북 요청에 재생 가능한 물품을 모아서 보낸 것도, 이번에 의약품 전달을 준비하는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20년 전, 2004년 청년들과 중장년 회원들이 참여한 미얀마와 태국 여행, 매솟 난민촌 방문, 부천지역 난민 공동체와의 연대, 지위 개선을 위한 기고와 대사관 앞 캠페인, 주민과 어린이 대상 시민교육, 민주화 역사를 소개하는 리플릿 제작 등 지속적으로 이음을 해온 우리들의 크고 작은 역할들이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환대하며, 내전으로 생존에 위협받는 모든 미얀마 주민들, 소수 민족들을 향한 마음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글로벌화된 경제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나와 우리의 이익에 직결된다는 이유로 연결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편협한 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근거가 정의롭지도 못하구요. 다른 상황이나 문화 속에 있는 타자들을 통해 생각이 달라지고 덕분에 연대와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면 이웃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우리 안의 단절이나 그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글들을 읽어보시길 권면합니다. 미얀마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알아가며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을 것입니다.
(정리, 글과 사진 차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