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더 큰 악의 뒤에 숨는 비겁함을 타기했던 여행
신대연
게시일 2026.05.13  | 최종수정일 2026.05.13

더 큰 악의 뒤에 숨는 비겁함을 타기했던 여행
 
201510월 즈음,베트남전쟁이라는 책의 저자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책의 내용을 다시한번 강렬하고 간명하게 정리해 주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 유익한 강연이었다. 그런데 강연 자체보다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던 어떤 청중의 질의 하나가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과 일본이 숱한 비인도적 행위들을 자행했고, 그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그들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 우리의 과오를 가지고, 더구나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냐는, 이런 요지였던 것 같다.
 
학살자체를 완전부정하거나 또는 완전시인하면서 사죄를 해온 양 극단의 입장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대중적 인식은 이러한 청중의 질의와 거의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랬다. 상식적인 정황이나 명백한 증거가 있는 이상, ‘학살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겠는데, 그러자니 그동안 제국주의, 특히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그토록 비분강개했던 순결한 피해자적 역사의식이 순식간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 없다라는 물타기가 되어 버리니, 그 감정적 불편함을 가장 손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위와 같은 논리전개였던 것이다. 서구 열강과 일본이 깨끗하게, 완전하게 과거를 청산한다면, ‘그 다음에 우리도 청산하면 된다라는...
 
이렇게 논리적 방어벽을 둘러쳤지만, 그래도 무언가 불편했다. 그때 강연장 한켠에서는 민간인 학살관련 베트남 평화기행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둘러친 그 방어벽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확인받고 싶었다. 현장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당사자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물론 철저하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은 유지하면서 말이다.
 
마침내 116일 기행이 시작되었고 첫 번째로 방문한 마을은 빈호아 마을이었다. 1965년 민간인 430여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마을인데, 당시 지역 전황이나 증오비 바로 곁에 있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전사묘역을 두고 보았을 때, 물론 민간인 학살 자체는 명백한 죄악이지만 한국군입장에서의 학살상황 자체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어떤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내가 둘러쳤던 방어벽의 정당성이 확인되는 듯 했다. ‘우리의 학살은 상황논리상 이해할 수 있지만, 역시 서구와 일본의 학살은 그 자체로 죄악인 것이었다라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다음날은 하미마을과 퐁니퐁넛마을로 향했다. 역시 한국군에 의해 각각 150여명 80여명의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내가 둘러쳤던 방어벽이 비로소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정황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학살까지의 전개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숱하게 망가져 버린, 그럼에도 어떻게든 억세게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냉정하게 유지해왔던 객관적 관찰자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학살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분들이야 그분들 전체 삶의 정당성이 걸린 문제라 신앙에 가까운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어 어떤 설득이나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그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학살자체를 인정하면서도 희생자 내셔널리즘에 경도되어, 서구와 일본의 더 큰 악의 뒤에 숨어버리는 감정적 불편함을 느꼈던,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여행이었다. 책으로, 지식으로 접하는 것과 체험과 만남으로 접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