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평화인권기행 후기(송민서)
처음에 베트남에 간다고 했을 때 국내가 아닌 외국에 나간다는 설렘과 오랜만에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만이었다. 정작 베트남에 도착하고부터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것이 화두였고,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고 되새겨 봐야하는 문제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내 교과서에 한 페이지를 채운다. 베트남 전쟁은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전쟁으로 엄청난 숫자의 베트남인을 학살했던 잔인하고 슬픈 역사이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시작한 평화기행 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은 무거워져 갔다.
여행을 가서 본 증오비와 위령비만 몇 개인지 모른다. 많은 증오비와 위령비는 베트남이 그만큼 한국을 증오한다는 뜻일 것이다. 빈호아 마을에 있는 증오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라는 자장가가 마을 사람들을 통해 불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자장가와는 너무나도 다른 잔혹한 자장가이다. 그런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이 평화기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나는 도안응이아 아저씨와의 만남을 택할 것이다. 아기 때 어머니와 시신들에게 깔려 탄약에 눈이 멀은 도안응이아 아저씨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는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되지만 한편으로 슬픈 분위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데 답가를 불러줄 사람 있느냐는 물음에 엄마가 손을 번쩍 드셨다. 엄마의 ‘걱정말아요 그대’는 그 집을 방문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잔잔하면서도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잘 부를까 나야말로 걱정했는데 나도 한시름 덜었다. 그리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노래는 잘 부르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함께 하고픈 마음임을.
이번 기행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곳은 밀라이 박물관인데 그곳에선 우리나라가 미워질 뻔 했다. 밀라이 박물관엔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모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진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우물에 넣고 총으로 죽이고 있는데 그걸 찍고 있는 우물에 비친 기자의 모습은 내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 사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또한 전쟁을 고발한 톰슨조종사를 비롯한 용기 있는 미국인들의 사진은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까지 자세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 베트남의 역사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이기도 한 사실을 직접 보고 배우니 책으로만 배울 때와 완전히 달랐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무조건 무겁기만한 여행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한국인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구수정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조금은 용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계획적이고 주제가 뚜렷한 여행이다 보니 그냥 놀러가는 여행보다는 기억에 오래 남고 살아있는 역사 속에 며칠 있다온 느낌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역사를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송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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