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친구들 베트남 평화인권기행은 2016년 1월16일부터 1월20일까지 베트남 각지를 돌아보고 21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구성되었다. 첫날인 16일은 오전 8시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 오후1시 45분에 다낭공항을 통해 베트남에 입국하였다. 다낭공항에서 다음날 방문 예정인 마을들이 있는 꽝아이성을 향해 바로 출발하였고 오후 6시경 꽝아이성의 숙소 근처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 후 호텔 체크인을 하였다.
이날호텔체크인 후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명인 탄타오 시인과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탄타오시인이 문학관련 회의참석 때문에 뒤늦게 참여가 어렵게 되어 급하게 이번 베트남 중부지방 여행의 현지 파트너인 아맙(AMAP)의 구수정 선생님으로부터 이번 여행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듣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주되게 구수정 선생님이 탄타오 시인과 관련된 그 동안의 활동 들을 중심으로 발표를 해주셨고 동행한 고경태 기자가 보충 설명을 하였다.
이하의 내용은 이날 오리엔테이션에서 구수정 선생님 등이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탄타오시인은이 곳 꽝아이성 출신으로 베트남 최고 문인상을 3회씩이나 수상한 베트남 최고의 작가이다. 그는 1954년에 제네바 회의의 결정에 따라 베트남이 17도선을 가운데로 남북으로 나뉠 때 17도선 이남인 꽝아이성 출신이었지만 북베트남을 선택하였고, 베트남전 종전 이후 폐허로 변한 꽝아이성으로 돌아온다. 꽝아이성 밀라이마을에서 그는 밀라이 학살 이후 계속된 미군의 폭격으로 풀한포기 하나 남지 않은 밀라이 마을을 보며 절망하기도 하지만 벌거벗은채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발견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79년에 <밀라이의 아이들>이라는 장편 서사시를 발표하면서 베트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한다. 그는 최근에 앞으로 글을 써서 얻은 수입은 모두 밀라이 아이들을 위해 쓰겠다며 “밀라이 아이들 장학금”을 만들었다. 한편, 그는 제주 4.3 60주년 추도식에도 참가하였는데 그 곳에서 <제주 벚꽃>이라는 시를 발표하였고, 2008년도 방문 때는 <제주 진혼궂 무당>이라는 시도 발표하였다. 또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삼성건설이 베트남 노동자들을 용역으로 동원하여 건설을 강행하였을 때 그는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여러분들이 짓고 있는 것은 미국의 군사기지입니다”, “제주는 베트남의 남사, 서사섬입니다”는 내용의 현수막 글귀를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한국의 민중가수이자 성공회대 교수인 이지상은 <탄타오와 문정현>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3Amonbddho 그 밖에 최근 한국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과 관련해 발표된 노래에는 문진호의 <도안응이아의 봄>이라는 노래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kMDeMsX38Q
흔히 우리는 베트남은 과거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과연 그럴까? 베트남은 프랑스식민지 해방전쟁부터 30년의 전쟁을 치룬 나라다. 우리는 한국전쟁 3년을 치뤘지만 아직까지 그 전쟁의 아픔과 영향은 진행형이다. 하물며 베트남 사람들에게 전쟁이 미친 영향은 어떨 것인가? 베트남이 종전 후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먼저 만든 건축물이 3개 있다. 하나는 호치민에 있는 베트남전 증적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밀라이학살 박물관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푸옌성 붕따우 마을에 건립된 한국군 증오비이다. 학살이 있었던 마을들은 1975년 종전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서울 동작구 등에 있는 월남참전기념탑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쓰고 있다. “싸웠노라, 이겼노라, 돌아왔노라” 이기긴 누가 이겼는가? 패배한 전쟁을 이겼다고 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군은 과연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야 했는가? 한국전쟁은 유엔군의 외피라도 쓸 수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은 너무나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것이 명백하였기에 유엔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 미국의 주요동맹국들도 참전을 거부하였다. 일부 참전한 국가들 조차 생색내기 수준의 파병이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했는가? 최근 밝혀지고 있는 역사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억지로 베트남전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 때부터 미국에 참전을 졸라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박정희 정권의 참전 요청에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자국의 안보를 타국 군대에 의지하는 나라가 다른 나라에 파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한마디로 “네꼬라지를 알라”고 비꼬았을 정도다. 그러면 당시 야당은 참전에 반대하였는가? 1966년에 당시 민중당 총재 박순천은 베트남 전선을 친히 방문하여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낸 감격의 땅….이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이번 기회에 우리가 차지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방문에 당시 김대중 의원도 동행하였다. 68년 이후 전세계에 베트남전 반전운동이 등장하였고 일본에서도 거대한 반전운동이 벌어졌지만 한국은 반전운동의 무풍지대였다. 서정주, 모윤숙 같은 작가들은 참전을 찬양하는 문학작품을 마치 일본군 자원입대를 독려했던 때처럼 연일 발표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시 한국민 대다수는 베트남전쟁의 공모자였다는 점이다. 비록 지금 우리가 참전군인들과 직접 관련은 없어도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