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의 예수님
보호소 내 화단에는 단정히 가꾸어진 회양목 아래 앙증맞게 파아란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큰개불알풀
봄까치꽃
Bird's eye
Veronica persica
눈에 잘 띄지 않는 들꽃 하나에 이름이 참 여러 가지다.
린네는 이리도 작은 들꽃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성녀 베로니카를 학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흔하디흔한 작은 들꽃의 이름을 천박한 일본이름 그대로 빌려와 큰개불알풀로 이름지어 주었고 그 억지스러움은 국가 공권력의 왜곡된 한 모습인 보호소의 이미지와도 사뭇 어울려 보인다.
어찌되었건 이 풀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보호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까.
한국 내 미등록 체류자를 구금하고 있는 외국인보호소.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각자의 피부색만큼 다양한 외국인들은 보호소에 구금된 생활을 하면서 사소한 이유 - 이를테면 TV 채널 선택권 - 로 주먹다짐 끝에 독거실에 격리 수용되기도 한다. 강제구금에 따르는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한 신체이상과 감정기복이 잦은 싸움과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한 가운데 몇 사람을 모아 성경공부를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10개월째 구금되어 있는 나이지리아가 고향인 O씨(44세)
그는 고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인에 속하고 한 가족을 위해 전문직에서 열심히 일했으며 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와서는 어떻게든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아 몸이 부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모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다행스럽게도 난민신청에 법적인 도움을 주는 한국 친구가 있었고 절차를 밟아가던 중 뜻하지 않게 보호소에 구금되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정스럽고 안정된 말투와 표정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그는 한국말이 어려운 아프리카 영어권 국가출신의 사람들과 그렇게 보호소의 하루를 기도로 성경공부로 채워가고 있었다. 성경책과 사전이 그에게는 가장 큰 위로요 희망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서 그렇게 사신 예수님의 실루엣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로부터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죽었나 봐요’... 연기처럼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는 목소리.
지난 번 면회 때, 고향에서 투병중인 부인의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적 소견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한 지 불과 일주일 남짓한 날이었다. 지난 성탄에도 보호소에 갇혀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가족들이 슬퍼할까 걱정되어 고향집에 전화조차 할 수 없었던 그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면회실에 앉았다.
면회 신청을 하면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면회실 유리벽 앞에 다가앉던 그가 15분, 2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아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 보는데 익숙한 커다란 덩치가 흔들리며 자리에 앉는다. 초점이 사라져버린 두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투명한 물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진한 갈색의 피부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하얀 눈망울이었는데...
어지럽게 얽힌 실핏줄에 빠알갛게 새빠알갛게...
우람 하기만한 어깨는 하염없이 흔들리기만 한다.
미어지는 고통이 전해오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이제 돌아가야만 한다. 나이지리아에는 결혼하여 자식이 있는 여성이 죽으면 남편이 참석해야만 장례를 치루는 관습이 있단다. 병약한 몸으로 어린 두 아들과 힘겨운 삶을 살아내던 아내를 보내드리기 위해 그는 돌아가야만 한단다. 그리고 아들들과 다시 시작해 보아야 할 모양이다.
매일같이 기도하며 온 마음 다잡아 그려보던 실날 같은 기대도 희망도 모두 그대로 놓아둔 채.
보호소 앞마당에 봄까치꽃은 한껏 피어 있는데,
예수님의 환한 얼굴은 온 세상을 비추고 있는데,
기쁜 소식은 사방에 전해지고 있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도저히...
<외국인보호소에는 구금된 후 한 달 이내에 각자의 고국으로 자진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난민신청 등의 사유로 1년이상 5년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장기구금 되어있는 숫자도 적지 않다. 범죄경력으로 구속된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보호외국인들은 구금 후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혈압이 급속하게 오르내리는 등의 신체 이상증상을 호소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은 그만큼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품은 채 한국의 출입국관리시스템에 의해 보호라는 이름으로 구금되어 형량 없는 감옥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강제송환을 사형집행일처럼 기다리며 오늘을 살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