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연대
네팔에서 드리는 감사편지
신대연
게시일 2026.05.29  | 최종수정일 2026.05.29


네팔에서 드리는 감사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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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잔해에서 다시 일어서는 나라, 네팔에서 드리는 감사편지
 
안녕하세요? 네팔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마음과 성금으로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긴급 구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소식을 올립니다.
425일 첫 지진이 일어 난 후, 일주일간의 현장 방문을 한 뒤 준비에 착수하여 보내주신
성금으로 512일부터 첫 구호품 배포를 시작하였습니다.
3개월간, 구호활동을 하면서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 톡으로 짧은 인사만 올렸기에 이 편지
로 활동의 전체적인 현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활동은, 전부 한국시민들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네팔 지진 피해자를 위한
긴급 구호네트워크”1)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
었더라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소통의
힘은 참여해 주신 분들의 마음이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신속하게 보내주신 성금으로 네팔에서 우리들은 긴급구호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 며, 팀워크를 다졌습니다. 한국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져 쌀과 천막과 같이 시급하게 필 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고 525일 긴급 구호 중에 2차 지진이 다시 발생했지만 우리는
슬픔 중에도 기쁨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배포된 구호품은 쌀과 달을 비롯하여 텐트와 매트리스, 식용유와 소금, 비누와 물정수제, 의류
와 담요 그리고 의약품 세트였습니다. 우기를 대비해 후에 모기장이 추가되었는데, 우리는 이
물품들을 피해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전부 혹은 일부 품목을 마을로 가져가 배포했습니다.
 
그림 3 텐트 구입 그림 1 (130킬로그램) 그림 2 네트워크 배너
그림 4 참여단체와 배너 그림 5 네트워크 대표자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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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갔던 마을 중에 가장 안타까웠던 곳은 다딩(Dhading) 지역의 달카(Dharka)라는 마을이었
습니다. 달카로 가는 일부 구간 중 30킬로미터는 6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험한 길이었는데,
벽에 카트만두를 떠나 늦은 밤에야 겨우 마을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대피한 초등학
교 교실에서 밤을 지새운 뒤, 이른 아침에 무너진 가옥의 잔해들을 치우고 있는 주민들을 만
나러 다녔습니다. 학교 교실 몇 개를 제외하고 마을 가옥은 전부 무너졌고, 사망자도 많았습 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허공을 응시한 채 무너진 잔해 위에
앉아 있던 여인의 얼굴은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일을 할 만한 남자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 갔기에 사상자도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시였 지만 가족을 잃은 그 여인의 등을 쓰다듬어 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험한 길로 인해 운송하는 데 걸린 긴 시간이었습니다. 달카 마
을과 다딩의 수날 바자르, 누와콧의 타프락 마을도 찾아 가는 데만 하루가 걸렸습니다. 좁고
가파른 길을 지나야 할 땐 중간에 작은 트럭으로 물품을 다시 옮겨 담아 이동을 해야 하는 일
도 있었습니다. 길이 끊겨서 접근이 어려운 곳을, 피해가 더 심한 마을을, 더 많이 찾아 가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피해 지역을 찾아서 외딴 마을을 갈 때마다, 그 마을의 주민들도 배포를 같이 하였고, 피해 정도를 파악하여 명단을 작성하는 것도 주민들과 그곳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들이 맡아 주었 습니다. 주민들은 뭐든 주는 대로 받겠다는 식이 아닌, 우리 마을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했기에 우리는 가능한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물품을 준비하려 노력했습니다..
지진 피해 지역 중에 신두팔쪽크와 누와콧은 따망 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 지
역에 있는 마을로 갔을 땐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샥티사무하 활동가들에 의해 인신
매매 방지를 위한 캠페인도 병행하였습니다.
큰 트럭을 타고 먼 거리를 가야 하는 구호 활동은 65일까지 나갔고, 2,000 이상의 가 구에 구호물자가 전달되었습니다. 긴급 지원 성격의 외딴 지역으로 나가는 구호를 일차 마무리 한 뒤 613일 전체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구호활동에 참여한 5개 단체의 실무자들과 봉사자들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구호 활동 현황 보고와 봉사한 소감 발표도 있었고, 수고한 봉사자들에겐 감사패도 전달하였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트럭을 타고 다니며 펼친 구호 활동을 사고 한 번 나지 않고 안전하게 할 수 있었
 
그림 6 배포 전의 구호물자 그림 7 실행팀장 서멀 타파 그림 8 외딴 마을에 도착한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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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것에 감사하며 맛있는 식사도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평가회를 가진 뒤 우리는 그때부터 도시의 피해자를 돕는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염
두에 둔 도시의 피해자들은 주로 월세 방에 사는 저소득 계층이었고, 특히 카트만두 밸리에서
지진 전후로 출산을 한 여성들2)이 우선 선택 대상이었습니다.
이 여성들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연결망을 활용하여 6월부
터 현재까지 총 134명의 아기엄마들에게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혼자서 아기
를 키우는 엄마들이었습니다. 부모가 버리고 도망간 아기를 데려다 키우는 여성도 있었기에 엄마의 위대한 힘에 우리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대상이 카트만두 밸리 사는 도시빈민들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우리식의 주민 등록증이
없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집이 무너져도 등록증이 없는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도시의 주변부에 수 십 년 전에 이주해 와 빈민지역이 형성된 곳 중의 하나인 고다바리 마을엔 양철판과 대나무를 지원하여 임시 거처를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5월부터 8월까지 구호품이 전달된 곳은 총 가구 수는 2400가족입니다. 12개 품
목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고, 트럭을 빌리고 운반하는데 들어간 총 경비는 5만 달러입니다.
액 한국에서 보내주신 성금으로 진행되었으니 우리가 시작할 때 정한 한국시민들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네팔 지진 피해자를 위한 긴급 구호라는 제목이 표방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0여명 이상의 봉사자들 전원이 무보수로 일했기에 인건비는 들지 않았습니다.
구호 활동을 하는 중에, 6월부터 진행된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건 고다바리 텐트촌
에 임시 공부방을 만들어 6월 한 달간 매일 저녁 5시부터 2시간 남짓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 한 놀이교실을 진행한 것입니다. 아이들과는 색칠하기, 종이접기, 찰흙놀이, 풍선 만들기를 했
, 여성들과는 잼 만들기와 바느질을 같이 했습니다.
 
그림 10 아이들 놀이 교실 그림 11 그림 색칠하기 그림 12 여성기술 교육
그림 9 평가회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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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놀이 교실 마련과 재료 준비와 진행 일체는 성가소비녀회 소속 오윤심수녀님이
담당하셨습니다. 저는 놀이 교실에 오는 아이들 엄마들인 피해 여성들에게 잼 만들기와 손바 느질 훈련을 담당 했습니다. 이런 놀이 교실은 지진으로 놀란 마음을 달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전부 적극 참여 하였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놀이 교실을 운영하면서 매일 텐트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보내 온 간단
한 약품을 나누어 주었고, 응급 처치도 했답니다.
비록 모기와 벌레 그리고 야생 동물이 위협하는 텐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놀이교실에서
만큼은 색을 칠하고 풍선을 만들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텐트에 살던 주민들은 서서히 무너진 흙더미를 치우고 쉼터를 지어 하나 둘 텐트촌을 떠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족들이 쉼터를 지어 이동을 하면 우리들의 놀이 교실도 완전 히 종료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성들의 바느질은 계속될 것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앞으로
마을 안에 작은 공부방이 만들어 질 수 있기를 바라며 바느질 하는 여성들과 궁리를 하고 있
습니다.
긴급구호와 놀이교실 진행에 이어 우리가 해온 일, 그리고 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학교를 지원
하는 것입니다. 지진으로 깨진 학교들이 무척 많았는데 우리가 오랫동안 교류해 온 학교들이
1,2차 지진으로 교실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깨졌기에 어떤 대책이라도 수립해야했습니다.
그중에 특히 다딩의 마하데브베시에 있는 자나자그리티 학교와 카트만두에 있는 미래의 별이
빨간 스티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학교는 지진으로 입은 피해가 오히려 학교에 새 바람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고 있
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다딩은 공동체 학교이므로 공동 리더십이
잘 발휘된 결과 신속하게 수리에 착수했고, 미래의 별은 재앙 중에도 높은 학력 평가 결과를
얻게 되어 텐트교실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림 15 새로 지은 초등학교 교실 외부 그림 16 교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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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딩의 학교는 수리비를 지원하자마자 15년전 학교를 직접 지은 바 있는 학교 운영위원
회는 즉시 공사에 착수하여 다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을 아주 빠르게 새로 지어 냈습니다. 서 너 차례 방문을 하였는데, 최근에 학교 교장 선생님과 운영위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지원을 시작하자 여러 나라 단체들이 도와주겠다고 찾아오고 있으니 한국인들이 학교에 큰 복
을 가져다주었다며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다딩 학교와 2005년부터 교류해 왔기에 사용 불가를 의미하는 빨간 스티커를 받은 이
학교를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육만 달러 이상 계산된 재건축 경비 마련을 어떻게 할까 하며 고심하던 석 달 전의 학교와는 지금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한국의 지 원으로 초등학교 교실을 다 지었고, 본관 수리도 시작되었으며, 11, 12학년을 위한 교실을 학
교 밖에 따로 신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학교 건물을 재 빠르게 수리하여 수업을 전개하고 있기에 다딩의 이 학교는 앞으로 학생들이
더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이유는 이번 지진으로 산속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이 더 안전한 곳을
찾아 큰 길가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골에 있는 무너진 작은 학교를 다시 세우는 것
도 검토해 보았으나 마을이 붕괴되어 공동체가 복구될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판단이 어려워
보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해 오던 학교를 계속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트만두에 있는 미래의 별도 빨간 스티커를 받아 학교를 아예 다시 지어야 합니다. 우기라서
시멘트 공사가 어려워, 텐트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우선 화장실부
터 짓고 있습니다. 교실 짓기도 곧 시작됩니다. 다딩의 학생들이 총 천 백 명, 카트만두의 학
생들이 오 백 명 이상이니 보내주신 성금은 아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
건축 예산은 기술자에 따라, 재료에 따라 다르게 나와 시장조사를 할수록 혼란에 빠지기도 했
지만 직접 건축 팀을 꾸려 우리가 교실부터 직접 지어 나갈 것입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학교 공사가 끝까지 잘 될 수 있도록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구호활동, 학교 수리, 학교 짓기와 기술 교육 그리고 저소득 주민들의 쉼터 짓는데 보
내주신 성금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지진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서도 사용될 것입니다.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네요. 카트만두 밸리 내에 있는 고아원 서너 곳에도 쌀과 부 식을 지원했습니다.
지진이 발생 한 뒤 여진이 계속되고 있기에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림 19 임시 교실 그림 17 무너진 학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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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에도 삶은 계속 되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했고, 또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려합니다. 기도
해 주시고, 성금으로 참여해 주셔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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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이금연 세실리아(국제가톨릭형제회 AFI) 드림
연락처 : 카카오톡 아이디 afi21 / facebook : cecilia. kum Yeon, /
네팔 전화 9818814167
 
1) 5개 단체로 구성하였다. 부산에 있는 사단법인 이주민과함께 부설 아시아평화인권연대(아평), 국제인권단체 UFER, 네팔 랄릿푸르 소재 에커타 신용협동조합, 네팔 이주노동인권센터인 신미고와 여성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네팔 여성 단체 샥타 사무하. 에커타 신협 회원들과 우리 장학생들이 자원 봉사자로 나섰고, 부산의 이주민과 함께 아평과 UFER은 국제 연대 차원으로 모금을, 신미고와 샥티사무하는 지진 피해 지역으로 구호 활동을 나갈 지역을 선정하고 현장에 나가는 일을 맡는 등 역할 분담을 적절하게 할 수 있었다. 
2) 도시 피해자들에 주목한 것은 국제구호단체들이 주로 신두팔쪼크, 누와콧, 고르카, 라슈와, 다딩과 돌라카와 같은 지역에 집중하였기에 막상 카투만두 밸리 내 인구의 80%이상이 밸리 바깥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기에 그들 중 대다수가 월세방에 사는 빈민들이었음에 집중하였고, 그들은 분산되어 살고 있어서 구호품에의 접근이 쉽지 않았음에 주목하여 도시 빈민 여성 피해자들에게 집중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