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역사에 길이 빛 날 목공장인들
미추홀시민기록단 표기자
목공예거리 아카이빙은 이론 수업을 마친 후 마을탐방을 시작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6월 초여름 더위는 삼복 더위 만큼이나 무더워서 온 몸이 끈적이고 갈증이 심했다. 탐방을 마친 후 카페에 들러 평소에 잘 안마시는 아이스커피를 폭풍 흡입했다.
목공예거리 아카이빙은 때 이른 무더위에서 이미 난조가 예견 되었던 걸까? 그 후로 구술인들에 대한 사전면담 차 숭의동을 찾았던 날도 불볕더위였다. 목공소마다 에어콘이 없고 길가에도 잠시 머물만한 그늘조차 없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도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마주하게 되는 생경함이 오히려 살짝 텐션 업 되는 점도 괜찮았다.
목공분야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미흡한 터라 공부를 하면서 질문지를 만드는 과정에선수차례 고치고 고치면서 적잖게 고민을 했다. 한평생 목공인의 삶을 살아온 장인들의 삶에 나는 얼마나 진실되게 다가가서 공감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다만 질문지의 구심점은 분명했다. "구술인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라"는 어느 강사의 말 한마디에 주목하고 도전했다.
질문지를 가지고 장인들과 사전미팅 약속을 하고 구술 장소에 갔는데 부재중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고 면담을 할 때 경우에 따라 적잖이 당혹스러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거듭 거듭 구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 자신도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순발력이 부족한 면도 발견하여 초심을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을 우선 고려하며 진행했다. 곤혹스러운 경우로 상심할 때도 있었지만 또 다른 경우에서 구술인의 푸근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돌아오기도 했다.
장인들의 업력은 평균 30~40년이 넘었다. 우연히 들어서게 된 목공일이 전 생애에 걸쳐 당연히 해오고 있는 일이 되었다. 당연히 라는 말속엔 세월이, 사회 또는 가족에 의해 붙여진 과업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도 될 만큼 목공업은 인천지역에서는 상징이 될 만한 업종이었다. 인천지역사에 기록,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오고 있는 장인들은 당신들의 생애를 예사롭게 풀어주셨다. 일하다가 사고로 잘려나간 손가락을 보았다. ‘당신들의 그 손이 한 일가를 이루었고 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경의의 훈장을 달아드렸다. 목공인들은 시류(공공정책)에 밀려 이리저리 사업장을 옮겨다니고 현재도 여전히 그 불안함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숭의동 목공예거리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목공예센터의 활약상에서는 차세대 목공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바람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목공인들과 관계기관의 협치가 관건인 것 같다.
목공 장인들과 6-7개월 교류하면서 처음에 대면했을 때의 낯선 느낌은 이제 없고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한평생 한 우물을 길어 올린 그들의 노고와 업적에 진심으로 숙연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