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담기 D-365

어릴 적 찍었던 사진 대부분의 배경은 늘 수봉공원이었어요.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에 그나마 갈 수 있는 놀이기구가 가깝게 있었기에, 제겐 최고의 꿈동산이었죠.
점점 크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도 가고 바쁘게 살다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쌍둥이언니랑 마지막으로 벚꽃이 만개한 날 추억을 담아두었는데, 이렇게 다시 꺼내보게 됐네요.

사진에만 담겨 추억속으로 사라져 버릴 줄 알았는데, 이런 이벤트를 통해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아요.
놀이기구 철거 소식 이후로는 그 직전까지 1년 동안 거의 매 주말마다 갔던 것 같아요.
그냥... 어릴 적 모든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서글펐거든요.

옛날에 살던 집이 수봉산 언덕 아래여서, 친척들은 우리집을 "수봉집"이라고 불렀었어요.
우리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설명하려면, 수봉산을 꼭 얘기해야 했었죠.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매일 수봉산을 산책하셨어요. 산책 가시면서 저희 쌍둥이도 꼭 데려가셔서 놀이기구를 태워주셨어요.
특히 퐁퐁 할아버지는 저희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셔서 퐁퐁은 사람만 없으면 거의 하루 종일 탈 수 있었어요.
제일 좋아했던 건 동물모형 타고 그 작은 공터 한바퀴 도는 거였는데, 느릿느릿한 그게 왜 그렇게 재밌었던 건지...
다른 유명한 놀이공원에 비하면 정말 별거 아닌데.

그리고 국궁장에 벚꽃이 피면 그렇게 고풍스럽고 예뻤어요. 수봉공원 올라가던 입구 쪽에는 개나리가 참 많았는데...
그 언덕을 숨차게 올라가면,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비둘기에게 모이줄 수 있게 파시던 할아버지도 계셨고요.
비둘기가 한번은 제 머리위에 앉아서 엉엉 울었더랬죠.
벚꽃이 피면 꼭 공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었어요.
한여름 수봉산 언덕 중턱쯤에서는 방학숙제 하겠다고 별자리를 찾으러 밤중에 밤하늘을 올려다 봤고.
중고등학교 땐 살을 빼겠다고 저녁마다 수봉산에 올라가 현충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고.
겨울엔 앙상한 추위가 싫어서 관람차(수봉공원은 '허니문카'라는 이름이 있었어요!:D)

놀이기구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게 사라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1년 후 리모델링 된 수봉공원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구요.
깨끗하고 안전하게 바뀐 놀이터와 블로그 인플루언서에게도 소개되는 설치조형물들과, 
이젠 세대가 바뀌어 젊은 친구들도 밤에 설치된 조명을 배경삼아 인스타그램용 사진도 찍고, 누군가에겐 또 다른 추억의 배경이 되었죠.

수봉산은 그렇게 계속 오래오래 잘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대대손손 이어지면서 사진 속 추억의 배경은 바뀌겠지만, 누군가의 집이었고, 꿈이었고, 눈물을 받아주던 곳이었으며,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그런 곳으로요.

• 촬영일자 : 1991년 3월
• 장수 : 4장 

#. 해당 사진은 2023 특성화사업 기록물 수집 공모전 '그 때 그 시절 앨범 속 수봉산'을 통해 수집된 사진입니다.

상세정보열기
관련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