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ZOOM 3 | 게임 수출, 산업에서 문화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위해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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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수출, 산업에서 문화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위해


‘수출효자상품’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한국 게임산업은 콘텐츠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매출을 견인하면서도 문화적 영향력을 거론할 때는 매출액의 위상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형국이다. 문화콘텐츠 상품이 갖는 산업적 특징과 문화적 특징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게임산업의 수출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1. 들어가며
디지털게임을 산업적 관점에서 설명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주제는 ‘수출효자상품’이다. 실제 2020년 콘텐츠산업 수출액 규모에서 디지털게임은 82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액 120억 달러 중 68.7%를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보인 바 있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그러나 압도적인 수출액 규모는 이른바 ‘K-컬처’라는 담론의 크기와 비교하면 다소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나 음악 같은 다른 콘텐츠산업이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쉽게 볼 수 있어도, 가장 높은 수출액을 보여주는 국산 게임들이 세계 게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로서 게임 수출에 관한 산업적 맥락과 문화적 맥락의 괴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은 한국 게임의 수출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그 속에서 어떠한 특징을 갖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게임 산업이 K-컬처라는 이름 안에서 산업적 위상에 걸맞은 문화적 영향력을 획득할 방안에 대한 발전적 제언을 찾아보고자 한다.
 
2. 한국 게임 수출의 간략한 발자취들
상업적 디지털게임이 처음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한국은 디지털게임의 수입국이었다. 당시 첨단산업이었던 전자기기에 속한 게임기기는 북미와 일본에서 제작된 기기를 복제하거나 라이선스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닌텐도 패미컴(Famicom), MSX2 기반의 게임기 같은 콘솔기기를 내수용으로 제작할 수 있었으나, 소프트웨어의 제작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해외 게임들을 베끼다시피 하여 만들어낸 복제품 카피들은 1970년대 말부터도 국내에서 생산되어 수출된 기록도 존재하지만, 이는 본격적인 콘텐츠 수출이라기보다는 복제품 하드카피의 OEM격 수출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1987년에 이르러 최초의 국산 게임으로 거론되는 <신검의 전설>이 등장하고, 상업적 흥행에 도달한 <폭스 레인저>가 1990년대에 출시되는 등 본격적으로 국산 게임 소프트웨어의 제작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할 정도의 게임 수출은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온라인게임 시대로 그 시작을 잡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바람의 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 등 붐을 일으킨 한국산 온라인 MMORPG는 내수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특히 2002년 출시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76개국이 넘는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10년간 누적 매출액 1조 원을 달성하는 등의 성과를 달성, 2003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대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바 있는 대표적인 수출 성공 사례로 꼽힌다(이상은, 2012. 8. 1).

 
 
(위)닌텐도에서 1983년에 발매한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 (출처: 셔터스톡)
(아래)10년간 누적매출액 1조 원을 달성한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출처: 셔터스톡)
 
3. 높은 매출과 상대적 평가절하 사이의 괴리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이어져 온 한국 게임 수출의 간략한 흐름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수출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국산 게임이 가지는 특징을 몇 가지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장르와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온라인 RPG 중심성이다. 2000년대 초중반 게임의 대세를 이룬 장르가 온라인 MMORPG였고, 이 시대를 기점으로 한국 게임산업이 폭발적인 수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달리 보면 온라인 MMORPG류가 아닌 영역에서의 개발 및 수출역량은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구분하자면, 온라인이 아닌 싱글플레이 게임과 온라인 기반 게임이라는 두 구분에서 한국 게임 수출은 주로 후자에 의해 이뤄져 왔다는 뜻이다.
 
싱글 패키지의 판매라는 재화로서의 판매 대신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함으로써 얻는 용역수입을 기반으로 이뤄진 한국 게임 수출은 양적으로는 큰 성과를 이뤄냈지만, 역으로 이러한 특징 덕에 문화 담론으로서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현재 전 세계적 규모에서 이뤄지는 게임에 대한 문화적 담론의 영역이 주로 PC/콘솔기기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에 국한된다는 배경으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장 매년 한 해 동안 출시된 게임 중 대중과 평단의 평가를 통해 뽑히는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이 대체로 <엘든 링>, <갓 오브 워>와 같은 싱글플레이 기반의 AAA게임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높은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중심의 국산 게임들이 문화적 영향력 측면에서 취약한 주요 원인이 된다. 온라인게임은 서비스 운영의 형태로 제공되기에 단기적인 임팩트를 대중에게 제시하거나 독창적인 게임 규칙 혹은 세계관보다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어지간한 보편화에 도달하지 못한 온라인 게임은 문화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요인이 한국 게임의 수출이 주로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임의 의미를 다루는 비평의 담론이 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담론장에 치우쳐져 있는 상황에서 주요 수출국이 아시아권에 한정돼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온라인 중심이라는 특징과 맞물리며 문화적 영향력 측면에서 한국 게임의 의미를 다루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낳았다.
 
북미와 유럽 이용자들에게 한국산 게임은 <로스트아크>, <리니지>, <검은사막 온라인>과 같이 주로 MMORPG에 특화된 것으로 비친다(Marc L·Courtney B, 2022. 4. 4). ‘한국성’이라고까지 불릴 만한 MMORPG의 여러 요소들(과도한 노가다grindy, 지나친 현질Pay2Win 등)이 해외 이용자들로부터 거론된다는 것은 오늘날 국산 MMORPG들에 대해 나타나는 이용자들의 불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위험한 이분법이지만, 디지털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 기둥으로 놓고 본다면, 한국산 게임은 대체로 상업성에 크게 비중을 두는 것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게이머 집단은 일반 이용자, 평론가 모두 자신들이 사랑하는 콘텐츠로서의 게임이 좀 더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위치를 누리기를 선호한다. 이런 환경하에 안 그래도 서구 중심으로 구성된 게임문화 담론장 속에서 과도하게 상업성에만 치중한 것으로 비치는 온라인게임 중심의 한국 게임수출산업은 매출에서의 성과와는 다르게 콘텐츠가 가지는 작품성이나 문화적 의미 면에서는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4. 변화는 이미 와 있고, 모두 알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한국 게임 제작의 역사는 사실상 온라인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만개했고, 주요한 개발과 운영 역량은 모두 온라인과 그 이후 모바일을 중심으로 구성된 상태다. 더불어 콘솔기기의 보급률이 전 세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 특유의 상황도 한몫 거들 것이다. 강한 상업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비스 기반의 한국 온라인게임은 어찌 보면 그 태생적 한계 덕분에 높은 매출, 상대적 평가절하라는 독특한 구조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업성과 예술성은 결코 상호배타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올해의 게임(GOTY) 후보에 이름을 올린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온라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산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권까지 그 영향력을 떨친 바 있으며, 동시에 한때 스팀(Steam) 동시접속자 수 1위를 달성하는 등의 상업적 성취를 이뤄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적어도 지나치게 특정한 장르와 형식에 집중된 현재의 한국 게임산업 구조를 되짚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국산 게임’이라는 클리셰가 형성될 정도로 고착화된 현재의 게임 제작 환경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비단 국산 수출게임의 문화적 영향력을 제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서히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현재의 주류 장르 이후를 준비하는 흐름을 포함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게이머 집단은 자신이 사랑하는 게임콘텐츠가 좀 더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위치를 누리기를 선호한다.
(출처: 셔터스톡)



 
실제로 많은 국내 게임제작사들이 기존의 온라인 MMORPG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 <데이브 더 다이버> 등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게임으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국내 게임제작사들 또한 세계 무대를 마주하며 무엇이 다음에 넘어서야 할 지점인지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이룩한 콘텐츠 수출 분야 1위라는 업적을 이제 특수론에서 일반론으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제작사도 이용자도 모두 알고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체육관광부 (2022). 「콘텐츠산업조사」.
이상은 (2012. 8. 1). 76개국 수출, 숫자로 보는 ‘라그나로크’ 10년. 《게임톡》. URL: https://www.gamet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0
Marc L·Courtney B (2022. 4. 4).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아크〉와 한국 게임. 나보라 (역). 《게임제너레이션》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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