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문화정책의 힘: 신개발주의 문화산업정책의과거와 미래
‘창의산업’ 또는 ‘창조산업’이란 개념은 1997년 제3의 길을 주창하며 등장한 영국 신노동당 정부에 의해 주조됐다(정종은, 2013). 대처 정부 주도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18년 만에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기 위한 표제어로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채택한 신노동당 정부는 기존의 국가유산부를 문화매체체육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로 확대·개편했다. 신설된 문화부가 쿨 브리타니아란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육성 및 홍보한 새로운 기획이 바로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 정책이었는바, ‘창조성’과 ‘창조산업’, ‘창조경제’, ‘창조도시’ 등을 강조하는 영국 정부의 새로운 담론은 이후 유네스코 등에 의해 채택되면서 전 지구적 문화정책의 중심적인 의제로 등장하게 된다.
‘창조성’을 재료로 삼아 ‘지식재산’을 산출하며, 이로써 국가와 지역에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이라고 정의된 ‘창조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테제는 이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당시 우리 정부도 초기부터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인식하고 적극 대응할 수 있었다. 1998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시절부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자신은 ‘문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해 왔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를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던 영국의 창조산업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8년 4월 ASEM 정상회의의 개최국(영국)과 차기 개최국(한국) 정상 간에 이뤄진 이러한 정책 교류 및 그로 인한 확신은 이후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에서 ‘문화산업정책’ 또는 ‘콘텐츠산업정책’의 가파른 성장을 추동하는 중요한 모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정종은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 김대중 정부의 ‘신개발주의’ 문화정책의 구조와 특징1)
블레어 정부의 창조산업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문화산업정책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그중 하나는 필자가 인터뷰했던 김대중 정부 당시의 중앙정부 문화산업국장들의 증언이다. 세 사람 모두 입을 모아서, 1990년 이후 가장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 국가는 프랑스였지만,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우리 문화부는 프랑스의 문화정책보다 영국의 문화정책을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자국문화의 보호보다는 창조성을 무기로 지식재산을 산출하고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당시 제2의 국난으로 불렸던 IMF 구제금융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이끈 모델로 널리 알려진 것은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이다(Johnson, 1982). 서구 조절국가(regulatory state) 모델과는 달리, 공적인 시스템과 사적인 시스템 사이의 “시너지적 연결”을 꿈꾸며 “통치받는 시장”(governed market)을 운영하고자 하는 이 모델은 한편으로는 압축적 성장이라는 눈부신 결과물을 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통치와 정실 자본주의라는 부작용을 배태하고 있었다(Wade, 1990). IMF 구제금융은 개발국가 모델의 사용 연한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이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로 등장한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자신의 오랜 철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기회를 얻게 된다(김대중, 2000).
문화정책 분야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 개발국가 모델의 중대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의 ‘팔길이 원칙’을 수입했다. 종종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요약되는 이 원칙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1940년대 대영예술위원회를 만들면서 정리한 원칙이었으며, 이후 문화정책의 민주적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과 국가의 창의성을 활짝 꽃피워야만이 ‘제2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고, 21세기 국가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는 개발국가 시대 ‘이데올로기적 촉매제’ 또는 ‘장식품’ 정도로 치부되던 ‘문화’를 주요한 국가 정책의 한 분야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아래서 문화관광부가 ‘문화산업의 국가기간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활용한 정책수단들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방식과는 매우 달랐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 개발주의 시대의 전성기에 경제기획원(Economic Planning Board)이 취하던 국가 전략산업 육성 방식에 더 가까웠다. 실례로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을 천명하면서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할 여섯 가지 전략산업을 제시했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을 천명하면서 (문화기술을 포함하여)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할 여섯 가지 신기술을 제시했다2). 그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정당성을 확보는 과정에서 ‘민족생존 담론’에 기반한 대중운동을 추진했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새마을운동 vs. 제2의 건국운동). 무엇보다도 약 삼십 년의 격차를 두고 발생한 두 차례의 변환에서는 모두 카리스마적인 대통령들의 ‘보이는 손’이 큰 역할을 했다.
1)이 글은 필자의 다음 저서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 및 재구조화한 것임을 밝혀둔다.
정종은 (2022). 『한류 맥 짚기: 신개발주의를 알아야 한류가 보인다』. 경기: 진인진.
2)박정희 정권은 철강, 조선, 기계, 비철금속, 전자, 석유화학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했고, 김대중 정권은 환경 기술, 나노 기술, 우주항공 기술, 생명공학 기술, 정보통신 기술, 문화 기술을 차세대 성장 기술로 선정했다.
정종은 (2022). 『한류 맥 짚기: 신개발주의를 알아야 한류가 보인다』. 경기: 진인진.
2)박정희 정권은 철강, 조선, 기계, 비철금속, 전자, 석유화학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했고, 김대중 정권은 환경 기술, 나노 기술, 우주항공 기술, 생명공학 기술, 정보통신 기술, 문화 기술을 차세대 성장 기술로 선정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구성해 낸 문화산업정책은 서구 조절국가의 거버넌스 원리와 동아시아 개발국가의 전략산업 육성 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혼합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필자는 김대중 정부의 새로운 문화산업정책을 ‘신개발주의 문화산업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신개발주의’ 문화산업정책 프레임워크가 문화산업의 단계적 발전(phased development) 논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길이 원칙’에 기반하고 있는 첫 번째 단계는 문화를 이데올로기적인 촉매제(ideological catalyst)로 활용했던 개발독재시대 문화정책의 관습을 혁파하여 국민들과 문화산업계의 창조성을 진흥하려는 ‘창조성의 부정 강화’(negative consolidation)를 핵심 논리로 삼고 있다. 다음으로 ‘문화산업의 국가기간산업화’라는 비전에 의존하고 있는 두 번째 단계는, 문화를 일종의 장식품(add-on)으로 치부하면서 그 중요성을 무시했던 개발독재시대 문화정책의 또 다른 국면을 넘어서서, 이제는 문화경제 또는 창조경제의 생태계를 튼실하게 구축함으로써 문화산업의 폭과 깊이를 키우고 이를 통해 개인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창조성의 긍정 강화’(positive consolidation)를 핵심 논리로 삼는다.

강조할 것은 이 두 단계가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문화산업을 둘러싼 새로운 방식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보장하는 환경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다양한 투입 인프라를 조성하고 아무리 전략적으로 개별 산업 장르의 가치사슬에 개입한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공공 영역, 그리하여 사회적 자본이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한 사회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고양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구성원들의 창조성이 향상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겠지만, 민주주의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분명하게 해당 구성원들의 창조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적 창조적 전회가 낳은 가장 중요한 정책 결과물로서 ‘신개발주의 문화산업정책’의 핵심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는바, 한국 문화산업의 비약적인 성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2. 한류, 신개발주의 문화 정책의 힘
한류는 개발국가 시대의 침식과 함께 이뤄진, 개발주의 문화정책이 서구 선진국의 민주적인 거버넌스 원칙을 만나서 신개발주의 정책으로 전화(轉化)하는 것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통제 장치로 간주하면서 문화와 문화정책이 집중적인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 그리고 뒤이어 3S(Sex, Sports, Screen) 정책이 상징하듯이 경제성장의 톱니바퀴로서 지친 국민들에게 순간의 위로와 여흥을 제공하는 장식품으로 치부되던 시기가 끝이 나면서, 비로소 한류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검열과 무시로 점철되었던 ‘개발주의 문화정책’의 시대가 저물고, 팔길이 원칙과 국가기간산업화 담론에 기초한 ‘신개발주의 정책의 시대’가 열리면서, 한류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이루어 낸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창조성을 강화하는 두 가지 방식, 즉 ‘부정’ 강화와 ‘긍정’ 강화가 호환이 불가능한 단계적 미션이라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는 일찌감치 G2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문화콘텐츠가 국제 시장에서는 완벽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절하게 반증하고 있는 교훈이다.
다시 말해서, 한류는 글로벌화, 디지털화, 혼종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신개발주의 문화정책의 국제적 ‘힘’을 보여주는 가장 명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역으로 한류를 통해서 신개발주의 문화정책은 지속적으로 ‘힘’을 얻으면서 그 역동성을 발휘해 오고 있다. 그와 같은 한류의 선순환적 확산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여기에서는 ‘신개발주의 문화정책’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단계들을 중심으로 설명해야 하겠다. 우선 첫 번째 파란색 박스로 제시된 1단계, 즉 ‘팔길이 원칙과 문화산업의 국가기간산업화’라는 새로운 정책 철학을 공유한 ‘신개발주의 정책 공동체의 부상’에 주목하자. 이들은 ‘한국적 창조성 담론’의 시발점이자 지속적인 컨트롤 타워로 기능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산업 현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새로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2단계(새로운 재현양식으로 무장한 창조적인 콘텐츠들이 출현)의 문이 열리는 과정은 ‘표현의 자유’라는 열쇠 개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한국 영화의 양적·질적 도약의 이정표가 된 일군의 영화들은 새로운 정책공동체가 검열과 과감히 작별하면서 출현할 수 있게 된 콘텐츠들이었다. 이후 한국 문화산업계가 정책 현장에서 발생한 신개발주의 연대의 부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수용자들도 국내시장에서 일어난 창조적인 콘텐츠들의 출현에 아주 빠르게 반응했다(3단계).

영화 <쉬리>(1999) 포스터 (출처: 삼성 픽쳐스)와 영화 <실미도>(2003) 포스터 (출처: CJ ENM)
이와 같은 초기의 전환점들을 목도하면서, 신개발주의 문화정책 공동체는 본격적으로 ‘팔길이 원칙’에 입각해 기존하는 준정부 조직을 총체적으로 변환하거나 새로운 준정부 조직을 설립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4단계). 전자의 사례로는 단연 영화진흥위원회를 꼽을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문화콘텐츠진흥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관’이 이끌던 개발 시대의 관습과 결별하면서, 관련 업계의 세밀한 사항을 잘 알고 있었던 민간 전문가들이 문화산업 관련 진흥기관들을 해당 산업의 현실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과거에는 무시되거나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업계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롭고 유용한 정책들이 대거 출현했다. 이처럼 중앙부처가 정책 현장에 마련해준 공간으로 민간 전문가들이 뛰어들었듯이, 다음으로는 문화부와 진흥기관들이 새롭고 유용한 정책들을 통해서 산업 현장에 마련해준 공간으로 뛰어난 인재들과 상당한 양의 투자가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된다(5단계).
수출 주도 산업화(EOI)라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에 기인하여, 문화산업 가치사슬에 대한 국가의 개입 역시 초기부터 해외시장의 개척과 확산에 초점을 맞춰왔다. 수출 확대를 위한 정부의 개입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두 가지 즉각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는 수출을 준비하는 회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경쟁에서 승리한 회사들이 정부와 매우 밀접한 협력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부는 ‘높은 잠재력’을 가진 업체들에게 해외시장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해외 견본시 참가를 지원하는 등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다(6단계). 직간접적으로 ‘스타’ 콘텐츠의 생산 및 유통을 위한 자금조달을 돕기도 했고, 다양한 표창이나 훈장들을 통해서 그들의 성취를 격려하기도 했다. 이것은 개발국가 시대의 수출 확대 전략과 상당히 유사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핵심적인 차이는 이번에는 채찍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내 문화산업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던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이 해외시장의 개척 단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즉,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창조적인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상품과 브랜드에 대한 수용자들의 인식이 전환되는 현상”이 해외에서도 발생한 것이다(7단계).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새천년 전환기의 흥행 영화들이 한국 영화에 대한 국내 수용자들의 인식 변화에서 상징적인 전환점이 됐듯이, 약 2~3년 후에 등장한 <겨울연가>(2002)와 <대장금>(2003) 등 빼어난 TV 드라마들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아주 유사한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이와 같은 해외에서의 인상적인 반응은 역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출발점이었던 ‘새로운 문화정책 공동체’를 강화시켰고, 단순히 문화부를 넘어 모든 부처에서 한류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8단계).
3. 지속 가능한 한류를 위한 문화정책 도약의 필요성
K-콘텐츠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개발주의 시대의 낡은 관습인 검열 및 고립 정책과 과감히 작별하고 팔길이 원칙을 기반으로 전략적 진흥에 앞장선 정부가 있었다. 더 중요하게는 새로운 환경에 조응하면서 자신의 열정과 상상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온 개인 및 집단 창작자, 제작자가 있었다. 특히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다루는 신선하고 세련된 콘텐츠들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면서 시장을 이끌어 온 우리 국민들의 팬덤 역할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처럼 지난 20여 년에 걸쳐 이뤄진, 한류의 성장과 확산은 쉽게 침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중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의 경쟁국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검열이 제한하던 창조성을 해방시키면서 큰 효과와 울림을 불러일으킨 1990년대 후반의 ‘신개발주의 문화산업 정책’을 넘어서, 2020년대의 한류 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산업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2021년 UN 역사상 최초로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정책적 도약이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글로벌 문화산업 시장을 두드렸던 한류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BTS, 블랙핑크, <기생충>(2019), <오징어 게임>(2021) 등과 함께 세계 문화산업의 정점에 올랐다. 과거 한류 성장기의 정책과는 구별되는 ‘성숙기’의 정책이 새롭게 모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1억 8천만에 달하는 한류 팬들과 보다 밀접하게 호흡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한국문화가 그들 각각의 문화와 함께 이제 상호적인 변용과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챗GPT 등을 통해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저작도구의 상용화는 콘텐츠의 기획, 개발, 창작, 제작, 유통, 소비 등 가치사슬의 제 단계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 창조산업으로서 K-콘텐츠 산업은 그 원료가 되는 ‘창의성’에 대한 고민을 이제는 다른 방향에서도 진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콘텐츠 창작자와 제작자들은 이러한 창의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어떻게 이를 강화할 것인가? 한류 성공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전혀 새로운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대중 (2000). 『김대중 옥중서신』. 서울: 한울.
정종은 (201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들의 변화에 관한 고찰. 《문화정책논총》, 27(1).
정종은 (2022). 『한류 맥 짚기: 신개발주의를 알아야 한류가 보인다』. 경기: 진인진.
Johnson, Chalmers. (1982) MITI and the Japanese Miracle: The Growth of Industrial Policy.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정종은 (201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들의 변화에 관한 고찰. 《문화정책논총》,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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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de, Robert. (1990) Governing the Market: Economic Theory and the Role of Government in East Asian Industrializati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