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미 디지털미디어리터러시 독립연구자
디지털 네이티브로 성장하는 잘파세대는 어린 나이에 디지털 미디어 기기와 환경에 접하고, 디지털 환경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무언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불분명한 디지털 사회에서 잘파세대는 기성세대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소통, 참여, 연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 한류 콘텐츠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느슨한 공동체는 잘파세대가 새로운 소비, 생산, 참여를 하는 주요 환경으로 작용한다. 잘파세대는 한류 콘텐츠의 소비 및 제작을 통해 글로벌 취향공동체에 참여하며, 문화적 연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환경 운동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긍정적인 경험의 이면에 저작권과 초상권 문제, 다양성을 담보한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가치 충돌 등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다. 이 글은 잘파세대가 새로운 디지털 사회에서 당면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노력을 촉구한다.


(사진출처: <또 오해원> 유튜브 채널 캡처. https://www.youtube.com/@ohhaewon)
이 중 ‘팬튜브’는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모습을 모아서 숏폼 미디어나 몇 분가량의 영상으로 편집해 소개한다. 기획사가 제작하는 공식 콘텐츠(자체 제작 콘텐츠를 줄인 ‘자컨’으로도 불림)가 아닌 팬이 제작한 콘텐츠라는 특성이 있다.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 연구에서 연구에 참여했던 어린이들에게 유튜브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자고 했을 때 ‘팬튜브’를 적기도 했던 것처럼 잘파세대에게 익숙한 콘텐츠 형식이다(김아미, 2020). 이와 같은 ‘팬튜브’를 통해 소개되는 영상은 일반 대중이 특정 아티스트의 매력을 알고 빠져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산활동은 개인의 취미 활동이라 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의 활동 모습이나 사진을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 활동으로 저작권이나 초상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팬튜브’ 운영자가 해당 계정을 통해 수익 창출을 하지 않음을 먼저 밝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떠한 활동이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침해하는 활동이고, 또 어떤 것이 용인되는지 그 기준이 확실하지 않다. 새로 등장하는 케이팝 아티스트의 경우 초반 인지도 확보를 위해 이와 같은 팬들의 생산활동을 용인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는 동일한 생산활동을 초상권 위배로 금하는 경우도 있다.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팬덤 문화에 있던 ‘리믹스’라 불리던 2차 음원 저작물은 ‘리믹스’가 원전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향유이자 원전에 대한 기여라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갑론을박의 대상으로, 잘파세대는 이에 대해 정확한 정보나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팬튜브’ 외에도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특히 앨범을 개봉하는 브이로그, 콘텐츠에 대한 리액션을 촬영한 영상 등은 팬들이 시작했던 생산활동을 아티스트가 차용해 콘텐츠를 즐기는 공동의 참여문화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처럼 팬덤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사회적 향유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잘파세대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팬들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잘파세대의 경우에도 팬이 주도하는 참여문화에 함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의 의견을 표현하고 이를 모르는 사람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다. 이처럼 다른 공통점이 없어도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은 잘파세대가 성장하는 디지털 사회의 새로운 양상이다.

(사진출처: 케이팝포플랫닛 홈페이지 화면 캡처. https://www.kpop4planet.com/ko)
케이팝 팬들의 사회 참여행동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든다. 일례로 케이팝 팬들의 미국 내 정치 참여행동에 주목하는 기사가 《타임(Time)》 등 여러 미국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특히 미국 내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는 참여행동 이후, X(구 트위터)에서 퍼지기 시작한 ‘스팸 해시태그’1)가 확산됐을 때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 아티스트의 팬캠이나 사진 등을 해당 스팸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하는 참여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위해 케이팝 팬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집회 티켓을 예매하고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적 개입을 하는 움직임도 있다. 타임지에 실린 기사는 이러한 케이팝 팬들의 정치 참여행동이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한 시민 참여행동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Bruner, 2020. 7. 25). 이처럼 케이팝 팬인 잘파세대는 케이팝을 즐기던 팬덤 문화에서 익숙하게 활용하는 전략(팬덤이 동시에 동일 해시태그를 활용해 케이팝 아티스트의 활동을 이슈화하는 전략이나 케이팝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하여 티켓을 구입하는 티켓팅 전략 등)을 정치 참여행동에 적용하기도 하는 등 새로운 참여 역량을 보인다.
케이팝 등 한류를 향유하는 잘파세대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디지털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참여 실천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케이팝 팬덤을 구성하는 언어, 문화, 사회적 배경의 다양성은 전 지구적 이슈에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긍정적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관점 차이로 인한 논쟁과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잘파세대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시민으로서 참여행동을 할 때,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혹은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이해하고 협력할 것인가’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어느 선까지 생산과 공유 활동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문화적, 정책적 모호함이 있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같은 맥락에서 잘파세대가 한류를 경험할 때 ‘소비자’라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류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산업적 맥락을 고려할 때, 한류 콘텐츠와 문화를 접하는 잘파세대가 ‘소비자’로 위치 지워지고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데에서 오는 문제(예를 들어, 다양성의 부재, 아티스트에 대한 부당한 요구 등)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향유자로서 한류를 접하는 것과 소비자로서 한류를 접하는 데에서 오는 차이가 무엇일지, 잘파세대가 한류 문화를 다양하게 향유하고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책적 지원은 무엇이 있을지도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파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토대로 온오프라인 공간들이 결합된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참여를 경험하고 있다. 취향 기반의 느슨한 글로벌 공동체 안에서 함께 협력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문화적 현상을 함께 즐기기도 하며 새로운 리터러시(역량)를 키워나간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으로 익히지 못한 새로운 소통 문제나 경제적, 문화적 차이나 갈등을 목격하거나 경험하기도 한다. 잘파세대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디지털 사회의 문화와 그들이 경험하는 새로운 어려움을 세심히 살펴 디지털 사회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