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의 대안적 모델로서 주체성 생산을 위한 ‘PSE’ 제안
조주현 큐레이터·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전 세계 문화예술기관들의 기후 어젠다와 행동주의 전략이 한국의 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 채택한 ‘ESG 경영’의 맥락과도 본질적
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2020년 이후 기업들이 환경이나 사회문제처럼 지속 가능한 미래와 관련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게 된 ESG 경영의 계기는 “변화한 투자 트랜드”에 따른 결과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세계적인 투자 트랜드 지표가 문화예술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는 현상에는 이보다 복잡한 방정식이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이 글은 최근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ESG 경영 지표가 기업의 ESG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연구와 환경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통합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PSE 모델을 제안한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예술계의 전략은 무엇보다 기존의 세계를 보수하는 프로젝트의 적극적 주체가 될 가능성을 재고하는 것이어야 하며, 개개인의 새로운 ‘주체성 생산’이야말로 문화예술계가 지표로 삼아야 할 주요한 요소일 것이다.
세계 각지의 뮤지엄들은 자체적으로 기존의 화이트큐브(White Cube)1) 정체성을 벗어나 행동주의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지속 불가능한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불편하고 골치 아픈 질문들을 던지며 수집, 보존, 전시 제작 등에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9년 4월, 영국 테이트(Tate)의 4개 분관 관장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해 전체 뮤지엄 운영 단계에서 녹색 요금제 전환을 통해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선포했다(Tate, 2019). 폐기물을 줄이는 전시 디자인에 힘을 실을 것이라 강조한 런던 V&A 뮤지엄의 ‘지속 가능성 전략 및 2035년 탄소배출 순 제로(zero) 목표’, 전문 환경 영향 연구소와 협업하는 구조를 설정한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의 움직임도 급격한 사회적, 환경적 변화에 맞서 뮤지엄이 행동주의의 공간으로 전환된 일면이다(조주현, 2023, 11).

(사진출처: Culture Declares Emergency 웹사이트, https://www.culturedeclares.org)
이러한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전 세계 문화예술기관들의 기후 어젠다와 행동주의 전략이 한국의 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 채택한 ‘ESG 경영’의 맥락과도 본질적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지난 2월, 필자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사진출처: Amy Balkin 웹사이트
행동주의 예술가 발킨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탄소 상쇄’ 제도의 개념을 파고들어 기업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탄소 중립기업이라는 자격을 편법으로 얻어내고 있음을 고발하고, 도덕적 기업으로 치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가 악용되는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저탄소 배출시설을 만들거나, 저탄소 에너지 생산활동을 위한 노력을 하는 대신, 간단하게 탄소 배출량이 적은 지역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탄소배출권은 주로 저탄소 생활방식을 충실히 따르는 에콰도르, 콩고, 파푸아뉴기니 등의 삼림 지역에서 구입하게 되기 때문에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며, 이 제도의 수혜자는 바로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기업가들, 즉 기득권 세력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는 온실가스 저감이나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본질적인 목적과 전혀 관계없이 거래를 통해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세력으로 가득하다는 점이 이 제도의 민낯이다(위의 기사 참조).
인도 출신의 법학자이자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Radha D’Souza)와 네덜란드 작가 요나스 스탈(Jonas Staal)이 설립한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이하 CICC)’는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주의 시장의 ESG 경영이 향하고 있는 환경 프로토콜이 어떠한 복잡성과 모순을 지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는 국가와 기업이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영향을 미친 ‘기후 범죄’를 기소하기 위한 일종의 대안 법정으로, 실제 법률가들이 CICC의 검사와 판사로 참여하고, 시민단체나 활동가, 피해자, 지역주민들이 증인으로 참여해 증거를 제시한다. 또한, “인간 너머의 재판소(more-than-human tribunal)”를 표방해,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지로서 식민시대 이후 멸종된 동식물이 세계 여러 지역의 국가와 기업이 저지른 기후 범죄의 목격자로 참석한다. 관객은 이 재판의 배심원으로 역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각예술가 요나스 스탈이 ‘권리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 소유가 아닌 상호 관계 그사이(간격)에 존재한다’는 주장을 담은 라다 드수자의 저서 『권리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what’s wrong with rights?)』(2018)를 읽고 대안 재판소의 형태를 구상한 것이다(D’Souza, 2018). 이 책에서 드수자는 계몽주의가 발명한 ‘인권’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 근대법(modern law)이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제도화해 살아있는 세계를 재산으로 전환하고, 이후 유럽의 식민지 개척과 세계자본주의 건설을 위해 대량 절도, 살인, 노예화, 자원추출, 인간 및 비인간 세계에 수많은 문화적 대량 학살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특히 근대법 체계에서 국가와 기업, 군대, 경찰 등을 포함하는 전문적 관료제도가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과 같은 권리로서 법인격을 갖게 됐을 때, 자연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며, 권리가 개인의 재산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인간 간, 인간과 비인간 간, 또는 비인간 간의 관계로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기반해 드수자는 상호 의존적인 생명체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종의 멸종을 주도하는 근대 법을 무효화하고자 대안적 법안으로 ‘세대 간 기후 범죄 법(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Act)’을 작성하고, 2021년 10월 암스테르담 비영리 예술기관인 Framer Framed에서 첫 번째 재판을 열었다. 이 재판에서는 네덜란드 정부와 Unilever, ING, Airbus와 같은 네덜란드에 등록된 초국적 기업이 저지른 행위가 기후범죄 행위로 기소됐다. 각 지역의 뮤지엄 또는 예술기관에 설립되는 CICC는 예술 프로젝트이자 기후 행동을 위한 활동가들의 도구이며, 지역민들의 삶과 토착 지식에 권위를 부여하는 법정이자 민주적 포럼의 장이다.3)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네덜란드 파빌리온에서 선보인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전시는 ‘멸종전쟁(Extinction Wars)’이라는 부제로, 한반도의 군사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해 지역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여러 공간, 즉 군사복합단지, 신공항, 화력발전소 시설이 위치한 전라북도 군산, 강원도 삼척, 강릉 및 베트남 붕양(Vung Ang) 등을 조명하고, 이곳의 토착민 현실과 생태문제를 다뤘다. 총 3회에 걸친 증거심리 재판에서 군산 평화바람, 전쟁없는세상, 청년기후긴급행동과 같은 여러 활동가 단체들은 각각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한화, 두산, 포스코 등을 기소해, 군사 산업 단지를 통해 한국과 국제사회 생태계를 파괴하는 정부와 기업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ESG 경영평가 지표와 유사한 맥락으로, 유럽과 북미 지역의 문화예술계는 새로운 기후 체제에서 이전의 인식론적, 감각적 가치 체계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가 연합해 자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작 툴킷(Sustainable Production Tookit)’ 등 환경 측정 도구를 개발하고, 새로운 지침으로 제작 매뉴얼을 만들어 오픈소스로 배포하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 제작된

전 세계적인 팬데믹과 백인 우월주의의 유산, 그리고 또 다른 현실인 기후 위기는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세 가지 위기는 각기 다른 별개의 사건이나 현상이 아닌 서로 촘촘하게 얽힌 상황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러한 위기의 복잡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적 주체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고, 인식, 미학에 대한 틀이 필요하다. 최근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발생하는 기후 행동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산업 자본주의 등의 복합적 문제에 도전하며 지질학적-인간적 얽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모색한다. 예술은 자본주의적 가치로서 효율성, 합리주의가 아닌, 건강한 공동체적 삶과 상호성에 있어야 하고, 나아가 작품을 통해 또 다른 개인, 사회,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 맺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하여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예술계의 전략은 무엇보다 기존의 세계를 보수하는 프로젝트의 적극적 주체가 될 가능성을 재고하는 것이어야 하며, 개개인의 새로운 ‘주체성 생산’이야말로 문화예술계가 지표로 삼아야 할 주요한 요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