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하이브-어도어 갈등은 케이팝의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논쟁을 불렀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레이블은 음반사를 뜻하지만, 케이팝 산업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1990년대 유명 가수 및 프로듀서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케이팝 기획사들은 대중음악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나가며 회사 규모를 키웠고, 그 과정에서 해외 활동, 음악 제작 특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산하 부서 및 레이블을 설립했다. 2010년대 방탄소년단의 커다란 성공과 함께 성장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하이브로 사명을 바꾸며 플레디스, KOZ, 쏘스뮤직, 빌리프랩 등 다수의 음악 레이블을 인수합병하며 오늘날 ‘멀티 레이블’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어도어는 그 확장 과정에서 하이브가 처음으로 선보인 독자 레이블이다. 하이브-어도어 갈등 사태를 통해 멀티 레이블 체제의 모순과 불안을 지적하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실제 멀티 레이블은 케이팝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줄곧 존재했던 구조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거듭난 하이브가 다양한 레이블 인수합병 및 운영 과정에서 상호 간의 경쟁과 갈등, 상이한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율, 융합하지 못한 것이 이번 하이브-어도어 사태의 원인이다. 케이팝과 ‘멀티 레이블’의 동행, 그리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1-1. 레이블의 개념


레이블의 규모와 형태는 다양하다. 작은 규모의 지역 중심으로 출발하는 독립 레이블이 ‘빅 3’ 산하 레이블로 인수합병되거나 혹은 독립적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등의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빅 3’ 산하 복수의 음악 레이블은 상호계약 내용 및 지분에 따라 모기업의 성향과 경영, 창작의 영역을 분배하나,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 레이블은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모기업은 자사 레이블의 창작물을 지원하며 전체 카탈로그 관리 및 저작권 대응에 힘을 쏟는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을 예로 들어보자면, 유니버설 산하 인터스코프 게펜 A&M 레코즈는 인터스코프, 게펜, 애프터매스, 셰이디 레코즈, 드림빌 레코즈 등 서로 다른 음약 장르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레이블을 다중 관리하고 있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체제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3대 기획사’라 불리는 케이팝 기획사 역시 한국에서의 지칭이 다를 뿐 해외 개념으로 레이블이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SM엔터테인먼트가 2013년 울림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합병, 2017년 3월 30일 가수 윤종신이 설립한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 등극한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보통 케이팝에서 레이블은 음악 회사의 개념보다 음악 제작과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꾸려진 산하 부서 혹은 해외 활동을 지원하는 지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YG엔터테인먼트가 2015년 소속 가수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의 하이그라운드(HIGHGRND)를, 2016년 메인 프로듀서 테디(Teddy)의 더블랙레이블(THEBLACKLABLE)을 설립한 경우가 그 예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018년 7월 자사 제작본부를 아티스트별 레이블로 개편해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지배구조로 개편하면서 2023년 매출 5,665억 원을 기록했고, SM엔터테인먼트 역시 2023년 ‘SM 3.0’ 계획을 통해 유사한 형태의 산하 레이블 구조 개혁을 약속하고 실천했다.

(사진출처: 하이그라운드, 더블랙레이블)
하이브 역시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설립 후 사명 변경 전까지 케이팝에서의 레이블 확장을 일궈왔다. 2010년대 중반에는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성공과 더불어 산하 레이블 설립을 시작했다. 2017년 9월 방탄소년단의 일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재팬을, 2018년에는 엠넷(M.net)과의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 제작을 위한 합작 회사 빌리프랩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하이브는 전례 없이 과감하고 빠른 투자를 통해 케이팝 시장에서 검증됐거나 가능성을 보여준 중형 레이블을 대거 인수하며 ‘멀티 레이블’ 체제를 열었다. 현재 하이브의 국내외 레이블은 11개다.
2019년 방시혁 의장과 절친한 관계의 소성진 대표가 재직 중인 기획사 쏘스뮤직을 인수합병해 산하 레이블로 편입했고, 2020년에는 한성수 대표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와 음악가 지코의 KOZ 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합병했다. 또한 미국의 유니버설 그룹과 합작한 하이브 유니버설을 설립하며 북미 활동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2021년 3월 30일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오늘날 사명을 하이브로 변경하기 전까지 벌어진 과정이었다. 하이브가 다양한 레이블 체제를 계획하고 구축한 역사는 짧지 않으나, 5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레이블을 차례차례 확보하며 규모를 키우는 과정은 케이팝 역사에서 최초의 사건이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어도어는 하이브가 처음으로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사 레이블을 물적 분할하여 새롭게 설립한 레이블이다. 2019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다양한 그룹의 기획을 담당한 민희진을 하이브의 CBO로 영입한 이후 하이브는 민희진의 대표이사 지위와 함께 독자적인 음악 프로듀싱 팀, 크리에이티브 팀, 사업, 제작, 마케팅 등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 특수한 상황과 관계를 이해해야 하이브-어도어 갈등 사태와 ‘멀티 레이블’ 체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
‘멀티 레이블’ 체제 운영의 전제는 레이블의 자율과 독립 보장이다. 해외의 경우 거대 레이블 산하의 레이블이 고유의 개성을 살려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치는데, 이를 위해 레이블 대표들은 모기업과의 지분 분배를 의논하거나, 거대 레이블에 유통하기 위해 협력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도어는 2019년 하이브 CBO로 영입된 민희진 대표가 쏘스뮤직의 물적분할을 통해 2021년 설립했으며, 2023년에 어도어가 약 18% 주식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이브의 지분율이 100%인 자회사 개념의 독립 레이블이었다. 2023년 인수 소식이 전해졌던 당시에는 하이브가 뉴진스의 성공을 이끈 민희진 대표에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실어준다는 긍정적인 해석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의 갈등 상황을 통해 임원진 내부에 갈등이 존재했으며, 하이브 이사진에 대한 민희진 대표의 불신과 어도어 레이블에 대한 차별 대우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음이 공개됐다. 모기업과 자회사 관계의 대립, 독립 레이블 인수합병이 아닌 회사 차원의 분할을 통해 성공을 거둔 레이블이 겪는 모기업과의 갈등 상황이라는 점에서 하이브-어도어 갈등은 세계 음악 레이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의 대립이다.
1-2에서 짚었듯 하이브가 설립한 빌리프랩, 하이브의 모체가 되는 빅히트 뮤직, 소성진 사내이사의 역할이 줄어든 쏘스뮤직은 ‘멀티 레이블’ 체제를 표방했음에도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견인한 방시혁 이사와 빅히트 뮤직 프로듀서들의 의견 및 창작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빅히트 뮤직 프로듀서 피독(Pdogg), 슬로우래빗(Slow Rabbit)이 빌리프랩 소속 엔하이픈과 아일릿, 쏘스뮤직 소속 르세라핌, 빅히트 뮤직 소속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에 참여하고, 방시혁 의장의 의중이 소속 그룹의 서사와 콘셉트 의사 결정 과정에 중요하게 반영된다. 반면 한성수 대표와 범주(BUMZU) 프로듀서, 소속 그룹 세븐틴의 멤버 우지(WOOZI)가 기획과 음악 제작의 중심을 잡고 있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하이브 인수합병 이후에도 고유의 개성을 지켜나가며 2023년에는
독자 레이블 어도어 역시 민희진 대표의 의사결정에 따라 기획, 스타일, 마케팅, 유통 등 모든 창작 과정이 결정된다. 그러나 어도어는 독립 레이블 인수합병이 아닌 하이브의 자회사 격으로 출발했고,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의 인적자본과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걸그룹 뉴진스를 제작할 수 있었다. 각자 출발선과 지향점이 다른 레이블이 하나의 회사로 통합돼 가는 과정에서 상호 간의 경쟁과 갈등, 상이한 이해관계가 충돌했고, 그 가운데 하이브가 이를 내부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며 사태가 커졌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가 지난 5월 2일 오전 1분기 실적 발표 기업 컨퍼런스 콜에서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을 개척하며 크고 작은 난관에 수없이 봉착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원인이다.

방시혁 의장은 2023년 SM 인수 실패 이후 3월 15일 관훈포럼 강연자로 나서 “세계 음반 시장 전체 매출 점유율이 3사는 합치면 67.4%에 달하지만, 국내 주요 케이팝 회사들은 아직 2% 미만”이라 언급하며 케이팝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레이블 인수 및 팬 플랫폼 개발을 언급했다. 케이팝의 확장 과정에서 ‘멀티 레이블’이라는 용어가 현재 해외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음악 지배구조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창작과 다양한 철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오늘날 ‘멀티 레이블’ 체제에 위기감을 느끼는 케이팝 레이블들의 지상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