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팝) 웨이브?” 워크숍 참관기
“세 번째 (팝) 웨이브?: 디지털 시대 한국과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이 가진 의미” 세미나가 2024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독일 하노버의 헤렌하우젠 가든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는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 연구소(소장 이은정)가 주관하고 독일 폭스바겐이 후원했다. 3일 동안 이스라엘, 호주, 미국, 일본, 한국 등의 한류 학자 15명과 한국의 현장 전문가 4명이 참석해 깊이 있는 연구 발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필자는 현장 전문가의 한 명으로 참가하여 논의된 주된 내용을 소개한다. 해외 컨퍼런스는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후원사의 발제 조건도 까다로웠지만, 3일간의 세미나는 보기 드문 훌륭한 행사였다.
행사 주최자인 이은정 교수는 세 번째 바람인 한류가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에 불었던 중국풍이나 일본풍과는 달리 21세기 유럽에서 불고 있다고 전했다. 이 세 번째 물결의 특징은 귀족이나 화가와 같은 매개자 없이 유럽 대중이 멀리 한국에서 온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와 웹툰을 직접 접촉하고 즐기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 덕분이다. 이제 세 번째 바람인 한류가 세계문화사에 어떤 발자취를 남길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여 기록을 남기는 과제만이 남아있다.
2) 남태정(MBC 라디오콘텐츠제작센터장), 강혜정(외유내강 대표), 유건식(KBS 박사), 조영신(SKB 경영전략담당)
3) 이은정(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 김신동(한림대 미디어과 교수), 이향진(일본 릿쿄대 문화간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상엽(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초빙교수), 홍경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정수경(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빈센조 치첼리(프랑스 파리시테대 교수), 올가 페도렌코(서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앤나 엘프빙-황(호주 커틴대 한국학과 교수), 김숙영(미국 UCLA 연극학과 교수), 이리나 리안(이스라엘 히브리대 한국학과 교수), 한울(서강대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괜돌린 돔밍(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박사과정), 달리아 하디직(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은정 펠스너(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교수)
5) 우키요에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한 당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린 풍속화의 형태를 말한다(위키백과).
6) 자포니즘 또는 자포니슴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를 지칭하는 말로써 필립 뷰르트 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이는 단순한 “일본취미”에 그치지 않는 일본 취미를 예술 안에서 살려내고자 하는 새로운 미술운동을 지칭한다(위키백과).

이어서 현장 전문가 세션 “K-콘텐츠 제작의 시스템과 문화”에서는 디지털 미디어가 가져온 변화와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 속 도전을 강조하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진화하는 역동성과 회복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K-팝의 세계화에 있어서 방송사가 위기이지만, 전통적인 방송사의 힘을 보여준 #MBC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 사례도 소개됐다. 극장의 부진을 탈출할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다. 강혜정 대표는 한국이 코로나19 와중에도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냈고, 이제 AI가 한국 콘텐츠를 세계 시장으로 진출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스토리텔링과 테크를 양 날개로 삼아 날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출처: 유건식)
이튿날 현장 전문가 세션인 “K-콘텐츠 제작의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콘텐츠 제작 모델이 다르고, 한국 내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 점과 글로벌 OTT의 진출에 따라 변화는 현상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또한 현재 한류가 글로벌 전역에서 인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의도 있었다. 조영신 그룹장은 “HBO가 왜 K-콘텐츠를 사지 않는가”하는는 질문을 던지면서 한류의 글로벌화는 아직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화하는 미디어 산업에서의 창의성”은 한국 스튜디오 시스템 내에서의 창의적 환경을 논의하는 세션으로 개별 창작자, 레이블, 스튜디오 간 관계와 이들의 제작 관행 및 문화를 분석하는 한편 창작자들이 직면한 과제와 그들이 사용하는 창의적 전략에 대한 발제‧토론이 이뤄졌다. 특히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창의성과 혁신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홍경수 교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텍스트 분석과 제작자 인터뷰를 통해 K-드라마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왜 ‘다르고 매력적'으로 인식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다. 정수경 교수는 8명의 K-콘텐츠 창작자를 인터뷰해 한국 콘텐츠가 창작자 관점에서 어떻게 제작되는지, 다른 국가의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언급했다. 괜돌린 돔밍은 독일에서 한류 기사를 검색해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는 한류 수용이 전통 미디어에서는 타자화되지만, 팬들과 더 넓은 국제적 커뮤니티는 일상생활에서 통합된다고 주장했다.
“적확한 미학 선택: K는 어떻게 매력적이게 만드는가?”는 케이팝의 미학과 그 소비 가능성에 대한 세션으로 케이팝과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미학이 한국성(Koreaness)의 진정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한 케이팝 아이돌의 미학이 어떻게 글로벌 청중에게 매력을 더하는지에 대해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올가 페도렌코 교수는 이정재 등 K-셀레브리티의 글로벌 광고 활동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문화적 차이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팬-민족주의는 팬들이 그들의 팬덤과 국적, 그리고 글로벌 이슈를 상징적으로 연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관리하고 팬덤 자본을 높이는 또 다른 상징적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빈센조는 프랑스 청소년 74명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케이팝의 글로벌 소비는 코스모폴리탄 감정을 일으키고, 청소년의 케이팝에 대한 취향은 미적 자본주의의 발전의 일부로 맥락화된다고 주장했다. 조앤나 엘프빙-황 교수는 한국성에 대한 연구에서 케이팝과 K-뷰티 미학은 글로벌 소비를 위한 한국적 미학으로 자리 잡았는데, 뚜렷한 미적 규칙이나 표식을 통해‘한국적'으로 인식되며, 전통적인 한국 미학과는 다른 미학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와 함께 동질화하기 또는 참여하기”에서는 독일에서의 한류 수용과 통합 과정의 분석, 독일 미디어의 한류 보도, 베를린과 같은 도시에서의 한류 문화 통합, 그리고 팬클럽 활동 등을 통해 독일에서 한류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에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이리나 리안 교수는 팬덤이 확대된 팬-민족주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팬들이 그들의 팬덤과 국적, 그리고 글로벌 이슈를 상징적으로 연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관리하고 팬덤 자본을 높이는 또 다른 상징적 자원이 된다고 주장했다. 한울 교수는 번역을 한류 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한류가 글로벌화, 단편화, 문화적 혼합을 특징으로 하여 번역의 개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올가 페도렌코 교수는 K-셀레브리티에 주목했는데, 글로벌 미디어에 등장하는 셀럽이 국가 이미지 강화에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오징어 게임> 인기가 치솟은 후 주연 배우 이정재 인기가 글로벌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수한 콘텐츠의 생산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글로벌 메가 히트작이 부족하고 콘텐츠 제작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원적인 노력에 중점을 두어야 할 때다.
괜돌린 돔밍 연구자는 독일 내 한류 수용에 대한 연구에서 데이터가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세미나를 폭스바겐이 후원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해외의 한류 연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김숙영 UCLA 교수는 한류를 위해 과도하게 정부가 관여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LA공립학교에서 케이팝 과목이 시범 채택됐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4년 4월 LA총영사관은 LA통합교육구의 정규 선택교과로 케이팝 과목 개설을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가을학기 시범학교는 LA 아카데미 중학교 등 4개 학교를 대상으로 한국의 대중음악 및 케이팝의 역사, 케이팝 마케팅과 관련 산업의 발전, 케이팝 밴드·음악 장르·댄스 분석 등의 커리큘럼를 강의할 예정이다(LA 총영사관, 2024. 4. 18).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확장되었으면 한다.
둘째, 스코핑 워크숍 답게 창작자와 연구자가 같은 장소에 모여 향후 유럽 내 한류 논의에 대한 방향을 모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2023년 3월 국내에서 다양한 생산자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바탕으로 워크숍 세부 주제를 정하고, 관련 전문 패널을 확정해 토론한 만큼 향후 풍성하고 깊이 있는 연구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한류 연구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도 깊었다. 한류의 위기를 포함한 생산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진정한 한류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넷째, 한류의 지역성과 지속에 대한 논의도 빠지지 않았다. 아직 K-드라마를 포함한 콘텐츠의 인기가 아시아에 국한되었다는 분석을 통해 소위 ‘국뽕'에 취해서는 객관적인 연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다섯째, 이번 워크숍 결과는 발제 자료와 토론 내용을 정리해 별도의 책자로 발간된다. 이번 워크숍에 참석하기 전에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있는 렘브란트 생가를, 워크숍이 끝나고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생가를 방문했다. 두 곳을 보면서 역사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느꼈는데, 이번 워크숍도 후대 한류 관련 기록에 있어 역사의 산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류를 연구한 학자들의 논의가 이번 웨크숍에서 풍성하게 전개됐다. 유럽에서 제3의 물결이 일어난다는 점을 포착해 네이밍을 한 선점 효과가 있고, 향후 활발한 후속 논의를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한류의 확산 못지 않게 이를 역사적 또는 문화사적으로 포착해 관련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한 의미있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 워크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