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계급전쟁’ 덮은 ‘한중 문화소유권 전쟁’

(출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https://www.netflix.com/id/title/81728365)
중화요리의 매력이 돋보인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중국 네티즌들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흑백요리사> 관련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중국 최대 콘텐츠 리뷰사이트 더우반에서 <흑백요리사>는 9월 공개 이후 현재까지 10점 만점에 8.7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2024. 11. 4. 기준). 또 중국의 유튜브라 할 수 있는 빌리빌리,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홍슈, 숏폼 플랫폼 틱톡, 팔로워수가 많은 유명 1인 미디어의 블로그에도 <흑백요리사> 관련 게시물이 넘쳐난다. 프로그램을 리뷰하는 글과 영상, 한국이나 홍콩에서 운영되고 있는 <흑백요리사> 셰프들의 식당 주소 모음, 실제 방문 인증 모습, 한국 편의점에 출시된 요리 대결 우승작 ‘밤티라미수컵’ 구입 성공기가 인기다.


(출처: 샤오홍슈 https://www.xiaohongshu.com/explore)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한국 주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듯 중국 SNS상에는 <흑백요리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프로그램에서 많은 편집 분량을 할애해 가며 중식 요리 관련 이슈를 만들어낸 것이 중국에서는 오히려 비난 여론을 촉발한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그간 중국 현지 맛집 탐방이나 다양한 요리 관련 예능에서 중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조예를 보여준 <흑백요리사> 심사위원 백종원과 자신만의 중식 요리 스타일을 선보인 셰프들을 모두 ‘도둑’으로 몰아갔다. 이에 자중을 요하며 몇몇 네티즌들이 “백종원이 출연한 예능을 많이 보아온 바로 그는 누구보다 중국 음식을 가장 존중하는 한국인이다. 그가 중국 문화를 훔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흑백요리사>에 ‘중식 요리’라는 자막까지 나오는데 우리가 이렇게 흥분할 필요가 있나.” 등의 이성적인 게시글을 올리고 있지만 여론을 중재하긴 역부족이다.

(출처: 샤오홍슈 https://www.xiaohongshu.com/explore)
도둑 논란에 맞서 한국에서는 중국의 <흑백요리사> ‘도둑 시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의 넷플릭스 콘텐츠 불법 시청은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불법 유포된 콘텐츠가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넘치는 호평을 받거나(가령 <오징어 게임>, <더글로리> 등), 이번 <흑백요리사>처럼 지나친 악평을 받으면 국내에선 중국인들의 비합법적 시청 행태를 이슈화한다.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와 중국 당사자 간의 콘텐츠 공식 유통이 체결되지 않는 한 도둑 시청 문제는 한국의 입장에선 해결책 없는 한중 갈등 유발의 요소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보도된 도둑 시청 비판이 중국 내에도 전해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더욱 격양된 태도를 보였고, <흑백요리사> 관련 게시물에 이미 불붙은 도둑 트집은 “망했네, 한국이 또 훔쳐가네”라는 유행어 같은 문구로 온라인상에서 더욱 확산되었다. <흑백요리사>의 ‘요리사 계급전쟁’이 졸지에 ‘한중 문화소유권 전쟁’으로 번진 이 사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중국 SNS 플랫폼 더우반, 빌리빌리, 샤오홍슈, 틱톡의 게시글과 댓글을 중심으로 중국 네티즌들의 도둑 발언의 배경을 살펴보고, 한국 문화산업계와 공공의 차원에서 이 사태를 영리하게 대처할 방법을 소략하게나마 찾아보자.

(출처: CCTV2 https://tv.cctv.com/cctv2)
하지만 중국 관영매체의 생각과 중국 네티즌들의 태도는 달랐다. 관영매체가 중식 문화의 한국 전파 통로로 꼽은 숏폼 플랫폼을 통해 이번엔 한국에서 유행한 ‘마라탕후루 챌린지(마라탕과 탕후루를 외치는 중독성 높은 노래와 안무를 따라 하는 숏폼 영상 찍기)’ 영상이 지난 5월경부터 중국에 퍼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다. 중국 네티즌들은 “두 가지를 훔쳐 가놓고, 이제 그걸로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네.”와 같은 불만을 표했다. 현재는 <흑백요리사>의 흥행으로 “마라탕, 탕후루에 이어 이제 ‘한국식’ 빠쓰가 출시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적해 가면 올해 마라탕, 탕후루, 그리고 <흑백요리사>로 절정을 이룬 중국의 식문화 도둑질 주장은 그간 크고 작게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한중 간 문화소유권 논란이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출처: 빌리빌리 https://www.bilibili.tv/id)
<흑백요리사>에서 한국 요리사들이 보여준 ‘한국식’ 중화요리는 중국 네티즌들의 집요한 공격거리가 되었다. “피자의 종주국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의 하와이안 피자를 보고 경악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며 한식 중화요리를 정통성 없는 기괴한 요리로 깎아내렸다. 또 집에서 직접 요리한 듯한 사진을 게시하며 “매일 즐겨 먹는 요리와 흔한 중식 조리법이 한국 요리 경연에서 주목받는 걸 보니 한국 요리는 단순해서 내세울 게 없는 것”이라고 비방했다. <흑백요리사>의 출연진들과 시청자들이 중화요리에 보낸 진심 어린 감탄이 중국인들 눈엔 그저 호들갑으로 왜곡되는 상황이 꽤나 씁쓸하다.

(출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https://www.netflix.com/id/title/81728365)
하지만 중국 네티즌의 공격적인 댓글 속에는 그야말로 웃픈 열등감이 드러난다. 흑수저 ‘만찢남’ 셰프가 일본만화 <맛의 달인>, <철냄비짱>, <요리왕비룡> 등을 보고 독학으로 중화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에 “다 보고 나서 젤 웃긴 건 한국인이 일본만화를 보고 중국요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라고 남긴 댓글에 네티즌들은 공감을 표했다. 여기에는 전통 깊은 미식 문화를 수없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21세기 소프트파워로 활용하지 못해 한중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자책이 섞여 있다. 또 “왜 중국요리를 한국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가? 우리도 이렇게 중국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촉구해 보지만 “예쁜 빠쓰디과(拔丝地瓜:고구마맛탕)는 중국인도 만들 수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중국인들이 아직 만들지 못한다.”며 민간의 제작 역량 부족과 그를 둘러싼 중국 사회의 경직된 환경을 꼬집고 있다.
그런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해서라면 사실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날선 입장도 그에 못지않다. 한국은 중국의 ‘동북공정 포비아’에서 시작됐다. 중국이 한국문화와 분리될 수 없는 조선족 문화를 자국 소수민족 문화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중국 자체 국가무형문화유산 목록으로 여러 번 지정해왔고 한국은 이를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경계한다. 올해만 해도 지난 9월 중국 지린성 지방 정부에서 돌솥비빔밥을 성(省)급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다. 중국 지방 정부에서 지정한 성급 무형문화유산은 추후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승격될 수 있고, 이것이 중국을 대표해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지정의 목적은 문화다양성의 원천으로서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고취하고, 산업화와 도시화, 전지구화 등으로 급속히 소멸해가는 지구촌의 무형문화유산을 국가적 지원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두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통문화 원조 논쟁과 그로 인한 상대국에 대한 혐오는(남근우, 2017) 이번 <흑백요리사> 논란이 보여주듯이 이미 일상적인 대중문화 콘텐츠의 수용과 교류에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말았다. 더 늦기 전에 한중 양국이 경쟁적으로 문화재 만들기에 열을 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의 진정한 의미와 대중적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할 때이다.
이왕 파격적인 외국인 유명 출연자 섭외를 구상한 김에 세계 각지의 요리 고수는 물론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는 중국 국적의 스타 셰프도 후보군에 넣어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번 <흑백요리사>를 둘러싼 중국 내 논란과 네티즌들의 날 선 반응을 시즌2를 업그레이드할 조언으로 삼아 정면 돌파해 보는 것이다. 중국 네티즌의 지적대로 시즌1이 중국에선 일상적인 음식이 요리 경연 필살기가 된 수준이었다면 시즌2에서 중국 대륙 셰프를 출전시켜 과연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또 한국 셰프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요리 변형을 중식 정통성 결여로 탄식한 중국 네티즌의 입장을 역지사지해 한식 응용으로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외국인 셰프 출연을 적극 검토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물론 한중일 3국 중 한국은 식문화 세계화의 가장 늦은 후발주자로 한식 전문 외국 셰프를 찾는 일이 쉽진 않을 테다. 어쨌든 한국은 아시아에서 영상콘텐츠 제작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한국 제작진들과 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에 영리한 아이디어만큼이나 글로벌한 포용력과 일종의 책임감을 기대하게 되는 상황이다. ‘계급장 뗀 요리 대결’에 더해 시즌2에서는 ‘문화장벽을 뛰어넘은 각국 요리 고수들의 대륙 횡단기’를 볼 수 있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