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대개의 후속작의 운명이 그러하듯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이 뜨겁게 교차되고 있다. 시즌1과 시즌3을 연결하는 역할이기에 ‘부족한’ 서사로 여겨질 법도 하다. 시즌1보다는 인물이 다양해지고 게임의 양상도 바뀌어 극적 긴장감은 높아진 반면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며 “저 위”를 향해야 할 비판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면에서 한계로 지목되기도 한다. 시즌2는 전 편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떤 면이 나아지거나 어느 지점에서 진보하기를 멈추었을까? 이 글에서는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살펴보고 한계를 비평함과 동시에 질문을 제시한다.

(출처 :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우선 인물들의 서사가 다채로워졌다. 시즌2 에서는 456명의 참가자들 외 시즌1에서는 스쳐 지나갔을 뿐인 딱지남과 프런트맨(이병헌)의 숨겨진 서사가 (조금) 풀리고, 진행요원들의 세계를 보다 세밀하게 보여준다. 게임 바깥에서는 프런트맨이 된 형 인호를 찾으려는 경찰 준호(위하준)와, 그를 돕는 박 선장(오달수), 햇빛캐피털 이사 우석(전석호)이 기훈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다변화한 인물 구성은 주제의식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컨대, 1회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한 딱지남은 과거에는 진행요원이었다. 그는 게임 참가자들(심지어 아버지까지)을 죽이는 일에 심취했던 인물로서 게임에 참가한 인간들을 ‘쓰레기’로 여기며 경멸한다.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가한 프런트맨은 게임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다는 면에서 기훈과 비슷하지만, 더이상의 살인을 막기 위해 게임을 끝내고자 하는 기훈과는 달리 그 게임의 ‘최종보스’가 된다. 프런트맨은 기훈의 ‘같은 편’인 것처럼 굴지만 은근히 기훈의 행동과 신념을 조롱한다. 놀이동산에서 인형 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탈북자 노을(박규영)은 사실 핑크 유니폼을 입은 진행요원이고, 노을처럼 진행요원들 또한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걸 보다 세밀하게 보여준다.
456명의 참가자들은 시즌1과 마찬가지로 세태를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시즌1이 빈부 격차, 사회의 불평등 등 구조의 문제를 드러내는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면, 시즌2는 코인, 마약, 비혼모, 무당 등 보다 개인 캐릭터성을 내세우는 데 방점이 찍혔다. 그래서 인물 구성은 비교적 다채로워졌지만, 각각의 인물이 가진 서사는 납작하고 헐거워진 면이 있다. 젠더적 측면에서는 어떨까? 트랜스젠더 여성인 현주(박성훈)를 통해 소수자성과 다양성을 보완했다지만 현주 외에 인상적 역할을 하는 여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즌1과 비슷하게 모성애를 상징하거나, 빌런이거나, 수동적이고 소극적 캐릭터로 제한된 면이 있고, 후반부의 전투 장면에서는 아예 여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는 면에서 퇴행적이기도 하다. 이런 배치는 해병대 출신 참가자들이 서로의 ‘기수’를 확인하며 서열을 정리하고, 진행요원들의 세계가 ‘군대’ 문화와 흡사하다는 설정과 묘하게 대비된다.
시즌2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면은 인물들의 관계다. 개인 참가자가 많았던 시즌1에 비해 친구, 엄마와 아들, 과거 연인, 유튜버와 팔로워 등 관계가 얽힌 참가자가 많아졌다. 관계의 변화와 함께 게임의 양상도 바뀌었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제외하고는 ‘근대 5종 5인 6각(딱지치기, 비사치기, 공기놀이, 팽이 돌리기, 제기차기)’, ‘짝짓기’ 등 모두 팀을 이루어 경쟁하는 게임으로 배치했다. 심지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게임의 의도를 알고 있는 기훈이 참가자들을 살리고자 외치는 구호에 맞춰 단체 운동처럼 진행된다. 이런 인물 관계와 게임의 양상 변화는 인간 본성과 사회 공동체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왼쪽부터 탈북자, 트랜스젠더(MTF)와 20대 여성, 아들과 어머니 참가자
(출처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이런 비판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권력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참가자 간의 갈등과 배신에 집중하게 하여 손쉬운 냉소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시즌2는 분명 게임의 배경과 구조를 확장시켰고, 그 안에서 참가자들의 심리적 변화를 상세히 묘사하면서 인간성의 추악함을 한층 더 강조했으나 시즌1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체제나 권력자들에 대한 구조적인 비판은 부족하다. 기훈은 개인적 욕망이 아닌 “계단 위쪽에 이 게임을 컨트롤하고 있는 자들”과 싸워 게임을 멈추게 하고자 하는 대의를 가지고 게임에 참가한다. 그러나 미래적 전망과 전략적 사고는 부족한 인물이어서 게임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게임을 수행하는 모순적 인물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을 설득하여 ‘혁명’을 일으킨 기훈은 “저 위”를 가리키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아래”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프런트맨은 그의 한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제압한 후 그의 행위를 “영웅놀이”라며 조롱한다. 게다가 기훈을 돕기 위해 바깥에서 추적하는 인물들은 무능하여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해내지 못한다.
반면 게임 주최자들의 인간을 향한 냉소는 노골적이다. 그런 노골적 냉소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딱지남이다. 그는 빵과 복권을 사서 탑골공원에서 가난한 노인들에게 두 개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실험을 한다. 딱지남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복권을 선택하자 이들을 힘껏 조롱한다. 1화의 제목으로 쓰인 ‘빵과 복권’은 ‘세계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구호인 ‘빵과 장미’를 변형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구호에서 ‘빵’은 생존을 의미하고, ‘장미’는 인권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복권’은 무엇을 의미할까? 딱지남은 그걸 욕망으로 해석하여 “쓰레기”인 주제에 당장 배를 채워줄 빵이 아닌 욕망을 선택한 인간을 조롱한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복권을 희망으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그 복권을 품고 며칠 동안 생의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게 빵보다 더 강력한 생존 방식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의 눈에 ‘장미’나 ‘복권’은 한심한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존엄과 희망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인간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기훈이 그렇다. 기훈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인간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지만, 딱지남은 인간을 경멸하며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재산과 일생을 건 기훈의 신념을 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낭비한다. 결국 그는 시즌1의 오일남처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공동체’와 ‘제도’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장치를 보완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인 ‘위’를 보지 못하고 냉소와 분노를 ‘아래’로 흐르게 했다. 권력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는 표면만 보여준 채 불평등하고 반생명적인 체제의 문제를 개인의 어리석음과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한 갈등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사회 축소판을 재현하며 사회를 비판하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게임을 설계하고 유지시키는 이들의 관점으로 인간 사회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선은 정당한가?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려고 이 세계의 부조리한 방식을 그대로 재연한다면, 그것이 부조리를 타파하거나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김지미, 2021)라는 시즌1에 대한 반문이 시즌2에서도 유효한 이유다.

(출처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이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처한 실제 세계를 향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세대, 계층, 종교 민족, 인종 등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선을 긋는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았다”는 황동혁 감독의 말처럼 드라마는 상상으로 조직된 세계지만, 결국 현실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구현한 세계는 불평등한 계급 격차 사회와 소수의 자본과 권력에 허약하게 휘둘리는 제도를 은유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기에 시즌2가 공들여 제시한 인간이 직면한 복잡한 딜레마와 사회 공동체의 불/가능성에 관한 질문은 점점 양극단으로 갈라져 싸우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우리 사회를 향한 뼈아픈 고발이기도 하다.
절박성을 가장한 천박한 자본주의와 합법적 절차로 위장한 반생명적 문화와 제도로 구성된 이 잔혹한 게임이 영속되는 사회를 어떻게 멈추게 할까? <오징어 게임>은 단지 참가자들이 넘어서야 할 ‘게임’에 관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절박하게 직면해야 할 문제다. “우리가 내리는 다양한 선택들이 어떻게 우리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러한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열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처럼, <오징어 게임>은 여러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한 다양한 해석과 대화의 장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