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ZOOM 3 | 여성 서사 드라마의 확장성, 그 의미와 과제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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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서사의 전면화는 한류 콘텐츠의 포용력과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다. 과거 여성은 주로 사적 영역에서 보조적 위치로 재현되었으나, 최근 작품들은 여성의 일, 욕망, 연대, 정체성을 중심에 둔 서사를 보여준다. 여성 서사는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주체의 자의식, 욕망, 관계, 판타지, 그리고 기존 가부장적 서사에 대한 균열과 문제 제기를 포함한다. 사회문화적 변화, 글로벌 OTT로의 미디어 환경 변화와 더불어 2010년대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 여성 수용자층의 확대, 여성 제작 인력의 증가가 이러한 변화의 기반이 되었다. 여성 제작자의 증가가 곧 여성주의 서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자의 정체성이 재현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여성 서사는 장애, 계급, 지역, 나이,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사회적 범주와의 교차를 통해 더 확장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1. 한국 드라마에서의 여성 서사의 변화와 현재
최근 한국 드라마 분야에서는 여성 서사로 묶일 수 있는 작품들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2020년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한국 콘텐츠 중에는 <더 글로리>(Netflix, 2022), <파친코>(Apple TV+, 2022), <폭싹 속았수다>(Netflix, 2024), <은중과 상연>(Netflix, 2025) 등 여성의 서사가 전면화된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이는 과거 드라마 소비가 주로 국지적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비교했을 때, 글로벌 OTT 시대에서 다양한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 서사의 등장이 2020년대에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과거 일부이기는 하나, 1990년대에도 <질투>(MBC, 1992)를 비롯한 드라마들은 직장을 가진 여성 주체를 등장시켰다. 한류 초창기로 이야기되는 2000년대 초반에도 비록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작동했으나, 여성의 감정선을 중심에 둔 드라마가 흥행을 거뒀다. 특히 <대장금>(MBC, 2003)은 초기 한류의 중심에 있었던 작품이다. 기존 사극에서 여성이 등장할 때 궁중 암투 등이 중심이 되었던 흐름과 달리, <대장금>은 궁중 전문직으로서 여성의 삶을 조망하며 여성의 일을 서사의 중심에 두었다. 동시에 동료, 경쟁자, 사제 관계 등 여성 간의 다양한 관계성에도 주목했다.


(좌) 2003년 방영된 <대장금>, (우)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출처: 《MBC》)
 
 
크게 흥행하며 주로 낭만적 사랑의 주체로서 여성을 재현했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내 이름은 김삼순>(MBC, 2005)은 자기 일을 중시하며 당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여성 주인공과는 차별화된 유형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선덕여왕>(MBC, 2009)의 경우 사극에서 정치적 주체가 대체로 남성이었던 것과 달리,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을 전면에 부상시키고 이들의 연대와 경쟁을 담아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케이블 텔레비전과 OTT 플랫폼으로 콘텐츠가 확장되면서 더욱 다양해졌다.

여성의 생활과 일에서의 분투와 연대를 그려내는 <청춘시대>(JTBC, 2017), <멜로가 체질>(JTBC, 2019),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tvN, 2019), <마인>(tvN, 202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2022), <대행사>(JTBC, 2023), <굿파트너>(SBS, 2024), <애마>(Netflix, 2025), <백번의 추억>(JTBC, 2025), <미지의 서울>(tvN, 2025)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러한 여성 서사 드라마의 궤적은 주변화되어 주로 사적 영역에서 재현되었던 여성의 위치가 변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보편적 주체로 재현되는 남성과 그 보조자로 존재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존재가 한국 드라마에서 최근 들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2. 무엇이 여성 서사인가?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 달라지는 시대상의 반영을 보여준다.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기존에 타자화되었던 여성 주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확산하는 가운데, 기존 미디어에서 다뤄온 주제가 아닌 주요 수용자층인 여성에게 맞춘 소재와 주체를 등장시키려는 미디어 산업의 전략적 선택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는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 서사에 대한 정의 자체는 쉽지 않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여성이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방식은 변화해 왔지만, 그 변화가 꼭 여성주의 서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여성 서사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주요한 흐름으로 주목받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5년 《Netflix》에서 공개된 <은중과 상연> 
(츨처: 《Netflix》)
 
 
완전히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연구자들에 따르면 여성 서사는 몇 가지 특징으로 정의된다. 주로 여성 주체가 등장하며 그들의 자의식이 나타나고(이혜린·조혜정, 2022), 여성 인물이 서사의 중심에 있으며 그의 욕망을 다루며(김강은, 2020), 여성의 연대가 나타나는 것(김미라, 2021) 등이다. 즉 여성 서사는 단순히 여성이 주체로 전면에 부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 주체의 욕망이 드러나고 여성의 정체성과 연대가 나타나며, 이들의 판타지가 형상화되어 새로운 쾌락과 의미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김은영·이소현·정사강, 2025)을 의미한다. 여성 서사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전통적인 젠더 이분법과 가부장적 관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보편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타자화되던 여성을 새로이 재현한 서사'로 정의하기도 한다(정영희·한희정, 2023).

이러한 정의들을 통해 볼 때, 여성 서사는 여성 주체가 다른 방식으로 서사를 전유하면서 정형화된 서사에 균열을 가져오고 기존의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까지 포괄할 수 있다. 즉, 단순히 다수의 여성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여성 서사로 의미화할 것인지의 문제, 드라마가 여성을 전면화하는 서사 구조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종류의 다양성에 대해 논의하는지가 중요하다.
 
3. 여성 서사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여성 서사 드라마들은 기존에 재현됐던 관습에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균열을 일으킨다. 정형화된 틀은 깨지고 인물들은 기존 규범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가령 드라마 <연인>(MBC, 2023)은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남성적 사건으로 재현됐던 전쟁을 여성 중심으로 재편하는 젠더지리학을 보여준다(양근애, 2024). 이 작품은 이성애 중심 로맨스로서의 한계가 있지만, 기존 공식 역사, 특히 전쟁을 다루는 사극에서 주변화되었던 여성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경이>(JTBC, 2021)는 여성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존 남성 중심적 범죄 서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탐정을 보여준다. 과거 여성 탐정이 등장할 때는 이들에게 결함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최종적으로 이성애적 로맨스 결혼 서사로 진행되며 가부장제에 편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 달리 해당 드라마에서는 알코올과 게임 중독의 반사회적 40대 여성 탐정과 주변 사람들과의 연대적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탐정 서사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젠더 규범을 전복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서영주, 2022).

<낮과 밤이 다른 그녀>(JTBC, 2024)에 대한 논의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여성 서사에서 경쟁력 있는 여성,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여성이 등장했던 것과 달리, 지극히 평범한 여성의 욕망과 연대를 보여주며 또 다른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전지은, 2025). <마인>(tvN, 2021)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여성 연대와 주요 인물의 섹슈얼리티는 기존 드라마에서 재현되지 않았던 퀴어로서의 여성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낸다(정영희·한희정, 2023).
 
(좌) 2021년 방영된 <구경이>, (우) 2021년 방영된 <마인> 
(출처: 《JTBC》, 《tvN》)
 

물론 이와 같이 재현되는 여성 서사물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여전히 드라마 속 여성은 이성애 로맨스와 모성에 집착하기도 하고,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은 어쩌면 전형적인 남성 주인공의 성별만 바꿔놓은 유형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전복적인 서사를 지닌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드라마화되면서 여성 주인공의 진취성과 전복성이 약화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여성 서사물이 증가하는 가운데 시선의 변화는 담지한다. 기존에는 단순한 성별 전도를 여성 서사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다수였다면, 현재 여성 서사물에서의 여성은 더 다각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여성 서사물이 등장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사회문화의 변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과거 여성 서사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운동가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여성 담론이 지목되기도 한다(최서율, 2025). 최근의 흐름에서도 2010년대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와 여성 수용자의 변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용자의 변화는 재현의 변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기존 성역할 규범의 유지를 어렵게 하며, 콘텐츠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요인으로 과거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제작 분야에서 PD를 비롯한 여성 인력의 증가가 꼽힌다. 「2024년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 지상파 방송의 정규직 PD 2,290명 중 여성은 896명으로 약 39.12%를 차지한다. 2003년 지상파 3사의 인원 구성에서 PD 여성 비율이 11.98%였던 것에 비하면(이수연, 2004), 20년 동안 여성 제작 인력은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히 여성 제작 인력의 양적 증가가 여성 서사의 증가 자체에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제작 인력의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담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단일한 여성성과 남성성, 생물학적 성별에 기준을 둔 이분법적 사고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2021년 다양성 리포트에서 제작자의 정체성이 콘텐츠의 다양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듯이(노지민, 2021.03.05.), 여성 제작진이 그려내는 여성 서사는 기존 시각과 다른 변화를 야기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다. 과거 연구들은 방송사의 남성 중심적 인력 구조가 방송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성차별성과 남성 중심 시각의 메시지 전달은 조직 문화의 남성적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문화가 고착된 상황에서는 여성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여성주의적 시각의 결여로 이어진다(이수연, 2004).


2021년 넷플릭스가 발표한 「다양성 보고서(Diversitu Report)」
(츨처: 《Netflix》 홈페이지 캡처)
 
 
일례로 <옷소매 붉은 끝동>(MBC, 2021)에서 다루는 주인공의 서사는 기존에 수차례 드라마를 통해 이미 재현되어왔다. 그러나 여성 제작진이 다시 재현한 여성 주체는 기존 서사에서처럼 왕의 사랑을 원하는 궁녀가 아니다. 그 무엇보다 자신의 일과 동무들이 소중한 사람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용감하고 진취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 주체에게 왕의 사랑과 그 결과는 기존 멜로드라마에서의 관습적 재현과 같은 행복이 아니라 차라리 형벌에 가깝게 나타난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서사물에서 재현의 변화들은 아직은 완전하지 않지만, 여성 서사가 나아갈 방향성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여성 서사의 변화는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로서 여성의 등장이나 재현의 증가가 아니라, 더 다양한 방향으로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젠더 질서에 균열을 야기하며 장애와 젠더의 교차, 계급과 지역성의 문제, 나이 듦에 대한 재현,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확장되는 여성 서사의 가능성은 젠더,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나이, 장애 등을 포괄하는 콘텐츠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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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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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라 (2021). TV드라마 <마인>의 여성주의 서사: 가부장제 클리셰의 파기와 질서의 전복.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1권 11호, pp. 268-280.
- 김은영, 이소현, 정사강 (2025). OTT 플랫폼 환경 속 여성 서사 콘텐츠의 재현 양상과 서사 전략. 《한국방송학보》. 39권 2호, pp. 126-168.
- 노지민 (2021.03.05.). 넷플릭스,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다양성 리포트 내놨다. 《미디어 오늘》. URL: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06974?sid=103
- 서영주 (2022). 여성탐정 드라마 〈구경이〉는 왜 이상한가? -탐정장르의 횡단과 전복, 균열하는 젠더 이데올로기-.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pp. 31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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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연 (2004). 지상파 방송의 성별 인력구조와 방송내용의 성차별성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 《미디어,젠더&문화》. 창간호, pp. 117-152.
- 이혜린·조혜정 (2022).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여성 서사 분석. 《인문사회21》. 13권 2호, pp. 1443-1456.
- 전지은 (2025). TV 드라마 속 여성서사의 새로운 가능성 연구 : <낮과 밤이 다른 그녀> (JTBC 2024)를 중심으로 . 《콘텐츠와산업》. 7권 1호, pp. 263-268.
- 정영희, 한희정. (2023). 텔레비전 드라마 속 여성주의 서사의 가능성과 한계 : 〈마인〉(tvN)과 〈구경이〉(JTBC)를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67권 2호, pp. 206-241.
- 최서율 (2025). 1990년대 멜로드라마의 여성 주체성 - <질투>와 <애인> 속 감정과 관계. 《드라마연구》. 77호, pp. 175-204.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현지,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11월 25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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