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FOCUS 1 | 나다움이 곧 다양성, 빅오션이 열어가는 새로운 한류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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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가 혁신적인 제품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가운데,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까지 더해지면서 K-뷰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주목할 만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해외에서 탄생한 K-뷰티 브랜드들의 부상이다. 그 대표적 사례인 유럽 기반 '예쁘다(Yepoda)'는 현지 창업자들이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유럽에서 판매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클린 뷰티', '지속가능성', '젠지(Gen Z) 감성' 등 유럽 소비자 맞춤형 가치를 내세운 예쁘다의 성공은 K-뷰티가 단순 수출 상품을 넘어 글로벌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예쁘다의 공동창업자인 샌더 준영(Sander Joonyoung), 베로니카 스트로트만(Veronika Strotmann)과의 인터뷰를 통해 변화하는 글로벌 K-뷰티 생태계의 미래를 전망해본다.



 
Q. 기존 케이팝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청각’ 장애인 멤버들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만드실 생각을 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케이팝 소속사가 몇 개 안 되다 보니 결국 아이돌들이 비슷해지는 악순환이 있었어요. 빅오션을 통해 아예 다른 접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세 명 모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수어라는 고유한 언어가 있었거든요. 그 언어를 무대 위에서 음악과 접목시키는 도전을 한 거죠.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Big Ocean)(출처: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Q. 대중성과 포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굉장히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면 결국 둘 다 놓친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장애, 아이돌, 수어, 기술까지 여러 키워드를 한꺼번에 다루려다 보니 방향이 흔들렸죠. "그냥 일반 케이팝 아이돌처럼 활동하다가 나중에 '사실은 저희 장애가 있어요'라고 드러내면 어떨까?"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나다움'이더군요. 나다운 게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멤버들이 훈련하고 노래하는 방식, 그 정체성에서 장애를 뺄 수 없는데, 그걸 감추고 다른 선배들을 따라하는 게 '나다움'일까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다양성'이 훨씬 큰 키워드가 됐어요. 팬들도 음악이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이 팀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장애 아티스트의 길이 열린다'고 말해주세요. 저는 이게 단순한 팬덤이 아니라 하나의 무브먼트라고 생각해요. 관심을 갖고 다가오면 누구나 이들의 매력을 발견하거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쁜 꽃처럼요.

진정성 있게 보여주니까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대중성도 뒤따라왔어요. 사실 처음엔 모두가 반대했죠. SM 출신 이사님까지 '절대 안 된다'고 했을 정도예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왜 안 되지? 너무 잘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어를 빠르게 주고받는 모습에 처음 보는 절도와 카리스마를 느꼈거든요. 흔히 장애 콘텐츠가 부드럽고 감성적으로만 소비되잖아요. 저는 그 안에서 새로운 비주얼 언어를 봤어요. 케이팝과 합쳐지면 무대 자체가 강렬해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요. 그래서 인기가 생겼을 때 '아, 역시 잘될 줄 알았다' 싶었습니다. 

 
Q. 기존의 케이팝 제작 시스템 안에 빅오션을 맞추기는 사실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작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까요? 
케이팝 산업은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벽함을 만드는 노하우가 쌓여 있잖아요. 밖에서 보면 다 경쟁자 같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가면 서로 크고 작은 기여를 하면서 그 노하우가 아주 끈끈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저희도 되도록 케이팝 제작 방식을 따르려 했는데, 빅오션은 인력 풀 자체가 너무 작았어요. 청각장애가 있으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해본 친구들이 극소수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바이벌 경쟁을 시키는 케이팝 시스템이 저희한테는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실제 훈련이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노래를 틀어놓고 연습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육성으로 카운트를 외치시느라 다 목이 쉬셨어요. 보통은 음악을 틀어 놓으면 내적 리듬에 맞춰 카운트를 하는데, 그 리듬 자체를 사람이 심어줘야 했거든요. 그리고 그걸 몸으로 느끼게 하려고 진동 워치와 플래시 라이트까지 동원했고요. 대형 기획사에서 10년 넘게 트레이닝을 해온 코치도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하셨을 정도예요.

보컬 훈련도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음정을 들을 수가 없으니 앱으로 실시간 확인하면서 박자와 코드를 맞추는 식이었죠. 말 그대로 머슬 러닝이에요. 몸이 기억할 때까지 수백 번 반복해야 했습니다. 결국 다른 팀에겐 필요 없는 장치와 과정들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했죠. 그래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고, 트레이너들도 끝나면 녹초가 됐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면서 무대 위에서의 한 걸음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025 CPI DAY : 한류 교류 전문가 포럼에서 기조발제하는 차해리 대표
 
 
Q. 빅오션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큰 반응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처음엔 한국 팬덤 형성이 쉽지 않아서 영어 곡을 많이 냈어요. 흥미로운 건 빅오션의 팬덤과 공연 계약이 복지 선진국 순서대로 진행됐다는 점이에요. 데뷔하고 이틀 만에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이 미국이었고, 첫 공연 계약은 프랑스에서 이뤄졌습니다. 복지와 다양성 인식이 높은 나라일수록 먼저 손을 내밀더군요.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빨랐고요. 그래서 '아, 이건 정말 장애 인식과 연결돼 있구나'라는 걸 체감했죠.br />br /> 그리고 해외 팬덤의 반응도 한국과는 조금 달랐어요. 저희가 영어를 못해서 소통이 어려운 건지, 안 들려서 어려운 건지 잘 구분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답답함이 '장애의 장벽'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다른 케이팝 아티스트와 소통할 때 겪는 언어 장벽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오히려 그 점이 감사했죠. 게다가 수어는 시각 언어다 보니 팬들이 금방 배우고 따라하더라고요. 빅오션은 한국 수어뿐 아니라 영어·미국·국제 수어까지 함께 쓰는데, 팬들이 짧은 영상 하나만 보고도 곧잘 따라 해요. 언어의 한계가 오히려 새로운 놀이와 교감의 방식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장애의 장벽이 언어 장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빅오션이 해외 투어를 활발하게 다니고 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랑스 팬미팅이었어요. 원래 촬영이 금지된 행사였는데, 한 가족이 A4 용지에 한국어와 영어로 사연을 적어 보여주더라고요. "딸이 일주일 전에 암 수술을 받고 아직 퇴원하지 못했는데, 빅오션이 유일한 위로였다. 오늘은 가족이 대신 와서 각자 미션을 해야 한다"면서요. 아빠는 사인, 엄마는 메시지, 동생은 포토카드에 사인을 받아가겠다고 하는데 그 순간 엄청난 마음의 울림을 느낀 것 같아요.

그 이후로 팬미팅은 늘 '스크림 오어 크라이(scream or cry)'였어요. 무대 전에는 울며 "너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던 팬들이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하고, 암 투병을 고백한 팬이 무대에서 '오빠!'를 외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 저희도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요.

더 놀라운 건 팬덤 커뮤니티예요. 청각장애 팬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같은 취향과 같은 어려움을 가진 친구를 만났다'며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LGBTQ 팬들이나 학교·가정에서 상처받은 팬들도 모여 서로 위로했어요. 저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빅오션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죠.
 
Q. 말씀하셨던 것처럼 빅오션 팬 커뮤니티도 엄청 활성화되어 있고,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런 소통을 통해 아마 팬들이 빅오션을 더 친밀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케이팝 아이돌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대 밖에선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지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케이팝의 전략인데, 빅오션은 데뷔 전부터 틱톡 라이브를 하루에 다섯 시간씩 했어요. 아무도 우리를 모르면 어쩌나 걱정돼서, 연습실이든 이동 중이든 늘 카메라를 켜뒀거든요.

그러다 보니 멤버가 차 안에서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이 생중계되거나, 같은 동작을 백 번 넘게 틀리는 모습이 그대로 나가기도 했죠. 팬들은 '답답하다, 제발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며 댓글을 달았지만, 한 달 뒤에 실력이 늘어난 걸 확인하고 같이 웃고 응원해줬어요. 그 과정 자체가 팬들에게도 성장 드라마였던 거죠. 결국 이런 일상 공개가 빅오션을 멀리 있는 아이돌이 아니라 '내 곁의 친구'처럼 느끼게 했던 것 같아요. 특히 해외 팬들에게는 그 친밀감이 더 큰 연결고리가 됐고요.

‘얘네 정말 무대에 설 수 있는 거 맞아?'라며 모든 연습 과정을 함께한 팬들이 데뷔 전 이미 20만 명이 넘었어요. 빅오션 몰래 데뷔 축하 영상을 준비해서, 전 세계 팬들이 수어로 '데뷔 축하해' 메시지를 담은 긴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고요. 영상에는 '너희 틱톡 라이브를 다 지켜봤어. 힘든 과정 다 봤는데 이제 드디어 무대에 서는구나. 내가 다 기쁘다'는 진심이 꾹꾹 담겨 있었죠.


한류나우 인터뷰 현장
(좌측부터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윤도경 KOFICE 문화교류연구센터 주임연구원, 이현지 센터장)
 
Q. 빅오션이 케이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아요. 이런 다양성이 케이팝 산업에서 더 확대되려면 어떤 변화나 지원이 필요할까요?
지금 케이팝은 이미 포화 상태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지원'보다는 팀별 강점을 살려 해외 시장에 특화해서 진출할 수 있는 정책이 보완되면 좋겠어요. 저희처럼 미국·유럽형 아이돌은 그쪽을, 남미에 강점이 있는 팀은 남미를 집중 공략할 수 있도록요. 세계에 200개가 넘는 국가가 있는데, 아이돌 팀마다 하나씩만 맡아도 서로 겹치지 않고 다 뻗어나갈 수 있잖아요. (웃음)

이렇게 특화가 이루어지면 현지 음악과의 협업도 활발해지고, 글로벌 케이팝 생태계가 훨씬 더 다채로워질 거예요. 저는 나중에는 시니어 아이돌, 플러스사이즈 아이돌, 퀴어 아이돌 등 더 다양한 형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이미 BL 콘텐츠와 아이돌이 결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고요. 한류가 이렇게 넓게 확장되는 그림을 생각하면, 정책적 지원의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하는 차해리 대표 모습
 
Q. 말씀하신 것처럼 케이팝이 더 다양해지는 미래를 그리고 계신 것 같아요.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한류나우 독자들, 콘텐츠 업계 종사자분들께 편안하게 한 말씀 남겨주세요.
데뷔 초에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야, 저런 애들도 아이돌 하는데 우리도 한 번 더 과감하게 해보자.' 이 말이었는데요. (웃음) 빅오션이 등장하면서 다른 기획사들도 더 새롭고 과감한 콘셉트를 시도할 용기를 얻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 참 보람 있었어요. '나다움'을 밀어붙인 선택이 결국 산업 전체에 작은 파장을 만든 거죠.

저는 요즘 해외 포럼에 가면 늘 느껴요. 세계적인 연사들의 발표를 들어보면, 기술이나 완성도에 대해 다뤄지는 내용들이 국내에서 이미 다 하고있는 내용이더라고요. AI 보이스 기술을 찾으려고 스페인 MWC까지 갔는데, 결국 협업하게 된 곳도 한국 기업이었어요. 영화의 날카로움, 드라마의 스파이시함, 숏폼의 빠른 트렌드 적응력, 케이팝의 완벽한 비주얼과 기획력. 이런 걸 보면 늘 '한류는 어떻게 이렇게 창의적일까, 대체 뭘 먹고 자라는 걸까?' 싶어요.

그래서 콘텐츠 업계에 계신 분들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지금처럼 자부심을 갖고, 지치지 말고, 계속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 주세요. 그 덕분에 저희 같은 작은 회사도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었고, 현장에서 늘 든든함을 느낍니다. 

 
케이팝이 지금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힘이 완벽한 기획력과 퍼포먼스에서 나왔다면, 빅오션이 보여준 건 진정성에 가까운 무대였다. 차해리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듯, ‘나다움’은 곧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빅오션의 여정은 케이팝산업이 품을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며 한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고 있다. 다양성은 이제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 글로벌 대중문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기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현지,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11월 25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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