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진보 5호 - 넓은 연대, 굳센 단결로 민주노총 건설하자
자본과 정권의 노동통제정책 변화의 배경과 전망 “복수노조의 허용을 검토하겠다”는 전 노동부장관 최병렬의 발언은 곧 노동부에 의해 공식 부인되었지만 노동부의 정책 변화를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에 따른 국내외의 압력과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 등의 정치일정은 이러한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한충 높여주고 있다. 언론노련 재판에서 산업 , 업종별 상급 단체의 노총 가입을 강제 규정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병원노련 재판에서 기존의 연합노련과 조직 중복이 되지 않는다고 한 최근 사법부의 판결들 역시 비 록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위헌성을 밝혀내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노동자의 단결권에 관한 현행 법률의 정비의 불가피함을 권력 스스로가 의해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차기 정권의 초기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복수노조의 인정은 87년 이래 대두된 민주노조운동을 하나의 현실로 인정하고 그것에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자주적 단결권의 보장을 요구해온 투쟁 의 구체적 성과이면서 동시에 온갖 탄압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민주노조운동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 은 지배계급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민주화 조치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복수노조 인정이라는 정책 변화가 민주노조운동의 승리와 정권의 양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제도의 개선이 곧 민주노조운동의 성공적 인 장래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노총의 의무금 납부율이 10%에 불과하다거나 전노협의 가입 조합원 수가 출범 당시의 30% 수준으로 줄었다는 예들이 말해 주고 있듯이 민주노조 진영은 물론 노동조합운동 전반이 현저하게 위축되었다는 사실 또한 복수노조 인정이라는 정책변화의 배경이 되고 있다. 즉, 이러한 제도의 개선은 개선된 제도 아래서도 자본과 정권의 이해를 충분히 관철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노동통제 정책에 대한 자신감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상급 조직에서의 복수노조의 인정은 한국정부 수립 이래 45년간 유지되어 온 유일노조체제가 이념 과 정책에 따라 분화된, 최소한 2개 이상의 전국 조직이 서로 대립 경쟁 협력하는 다극체제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 유일노조체제의 중앙 조직으로서 자본과 정권의 노동통제기구 기능을 해온 한국노총의 지위와 역할에도 일정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 다물론 이러한 변화는 87년 7,8월투쟁 이후 한국노총 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노조체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돌입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87년 7월 이후 기존 조직 수의 2배 가까운 노동조합이 새롭게 건설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온 한국노총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확산되면서 한국노총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서도 반노 동자적 관제어용조직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88년에 들어선 박종근 집행부는 “집권여당과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고, “자주적 민주노동운동의 기치 아래 새로운 각오로 자기혁신을 과감히 추구"할 것을 결의 하였으며, 정치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방의회 선거에 참여하며 다양한 정책활동을 전개하는가 하면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단식투쟁을 감행하고 총액임금제 저지투쟁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자기변신을 위한 이러한 노력이 한국노총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기치 하에 노동조합들을 결집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한국노총 의 영향력은 오히려 87년 이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평가 된다. 그러나 4.13 호헌 선언 지지와 같은 노골적인 반노동자적 행위로부터 ‘‘제 2의 탄생’’을 선언한 한국노총의 이러한 변신이 전노협을 구심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확산을 막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상급 조직에서의 복수노조 인정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조 진영 사이의 대립과 경쟁을 필연적으로 격화시킬 것이며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확산을 막는 방파제로서 한국노총의 역할도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수 십 년간 친정부적이며 친자본가적 행위를 일삼으며 온갖 특권을 누려온 노동귀족들이 한국노총과 산별조직의 상층에 자리잡고 있는 한 한국노총의 개혁노선이 자신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실리적 조합주의 조차도 제대로 관철시킬 의지와 힘을 갖지 못한 한국노총이 실리적 조합주의의 극복을 이념적 지향으로 하는 개혁노선을 천명하고 있는데서 드러나듯이 한국노총의 개혁노선이 대외적인 선전을 넘어서서 자생력을 갖는 것은 현 단계에서 상정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복수노조 인정에 따라 변화될 노동조합운동 의 체제는 현재 한국노총과 전노협 및 업종회의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고 있는 다수의 노동조합을 사이에 두고 허구적인 개혁노선과 민주노조운동노선이 대립하고 경쟁하는 구도이다 동시에 새로운 노동통제 정책이 노리는 바는 자본의 일방적인 우위 속에 노동조합운동이 이념과 노선에 따라 사분오열되는 분할지배 구도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다수 노동조합의 지지를 획득하고 자본과 정권의 분할지배 구도를 깨뜨리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의 이념과 조직발전 경로 그리고 활동노선을 어떻게 정립하고 실현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현실 구조적 위기론의 문제점은 노동조합운동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87년에서 89년에 이르는 고양기의 양상과 평면적으로 대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따른 이념적 혼란 경기 침체, 노동통제정책의 변화, 자본과 정권의 탄압, 운동의 사회적 고립 등 운동을 위축시키는 제 요인들의 인과관계와 상관 정 도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의 토대 위에 서 있다. 현재의 상황은 노동조합운동의 보다 장기적인 발전 추세 속에서 규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87년에서 89년에 이르는 노동조합운동의 고양은 세계 노동조합운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매우 특수한 양상의 고양이었다. 90년 이후 투쟁과 조직에 관한 통계수치는 87년 이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87년 7월을 분기점으로 이미 새로운 발전 단계로 돌입하였으며 노동자들의 의식과 단결은 87년 이전의 시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 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 대중의 자발성이 현저히 저하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으며 조직역량이 일정하게 쇠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현실은 새로운 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댜 문제는 주 객관적 조건이 구조적 위기를 낳는 것이 아니라 운동 주체의 미숙한 대응과 동 요가 위기의식을 심화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노동조합운동의 일시적인 침체로만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서 일시적인 것이며 고양이 아니라는 점에서 침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침체라는 규정이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의한 운동의 일시적인 위축을 의미하고 있다면 그것은 높은 의식수준과 강고한 단결력을 구비하고 있는 일부 선진적인 노동조합에만 적용될 뿐 운 동 전반에 관한 올바른 현실인식이 아니다. 노동조합운동이 항상 고양과 퇴조를 기계적으로 반복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87년 이전의 상황을 퇴조기라 규정하지 않고 파쇼적 탄압에 의한 장기적인 침체기라 부르는 것이다. 현재의 침체 국면을 퇴조기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침체가 운동의 폭발적인 고양에 뒤 이어 찾아 왔으며 또 한 번의 고양을 앞두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또한 공세기와 수세기로 나누지 않는 것 은 이러한 규정이 운동의 의식적인 주체와 그 대립물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이 말해주듯이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의식적인 운동의 영 향력이 여전히 낮은 상태에서 양자간의 관계가전체 국면의 성격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일시적 침체론은 대중의 자발성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전반적 인 현실을 간과하고, 침체의 주된 원인을 공권력의 탄압 에서 구함으로써 92년 상반기 투쟁에서처럼 각 지역의 한 두 개 선진적인 노동조합의 강고한 투쟁으로 총액임 금제 저지투쟁의 전선을 강화하겠다는 주관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등 대중의 상태에 기초하지 않는 무리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쉽다. 대응방향 –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을 중심으로 (1)산별노조와 단일 민주노총의 방향성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은 곧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단결의 발전을 의미하며 그것은 단결의 형태 즉 조직 형식의 발전을 수반한다. 조직 발전에 있어서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가장 발전된 단결 형태는 노동자 대중이 산업, 업종 별로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고 그러한 산업, 업종별 노동조합이 전국적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노협이 자신의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자주적인 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 건설”은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과제를 정확하게 제시한 것이다.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은 개별 기업 노동조합들이 지역별로 단결하여 지역노조협의회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전노협이라는 전국조직을 건설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지노협-전노협체계는 노동조합 조직발전에 있어서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며 필수적인 단계도 아니다. 그것은 87년에서 89년에 이르는 운동의 고양기를 경험한 노동자 대중의 의식과 단결의 수준, 자본과 정권의 탄압 등 노동운동의 내외적 조건이 빚어낸 역사적 산물이며, 한국적 노자관계의 반영이다 87년 이래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지노협―전노협체계는 자본과 정권의 온갖 탄압에 맞서 싸우면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을 결집시키고, 다양한 공동 사업으로 노동자 대중의 의식과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노협-전노협 체계는 기업별 노조의 지역, 전국 단위 협의체라는 조직 형태로부터 비롯되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임금협약이나 단체협약 체결과정에서 드러나듯이 노동조합의 상급조직이 노동조합의 일차적 기능을 직접 수행할 수 없는 한 그 상급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단결의 토대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노협-전노협 체계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노력은 곧 자신을 극복하고 지양하는 노력이 되어야 하며 그것의 최종적인 성과는 “자주적인 산별 노조와 전국 중앙조직의 건설”로 나타나야 한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경제적 이해 관철을 위한 단결을 위한 단결로 발전시키고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단결의 폭을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조직적 담보물이기 때문이다. (2) 건설경로 문제 산업별 노동조합의 건설은 단순히 제도적인 개선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의 울타리에 갖혀 기업별 로 분산된 노동조합들이 산업, 업종별로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하기 위해선 기업별 단위노조들의 조직 이기주의 나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조합들 사이의 갈등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모순을 일정하게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이 처럼 산업별 단위 노동조합의 건설은 제도적인 개선만이 아니라 조합원 대중의 깊은 이해와 자각, 즉 높은 의식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실천과 준비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산업별 노조로의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 기업별 노조의 산업별 연맹과 그것의 전국적 연합조직을 건설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즉, 현 단계의 조직발전을 위한 목표는 산업별 단위노조체제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서 기업별 노조의 산업별 연맹을 꾸리는데 두고 산업별 연맹 내부의 실천을 통해 장기적으로 완전한 조직 통합을 이루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산업별 연맹 건설이 당면 과제로 설 정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복수노조 인정을 통한 자본과 정권의 분할 통제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그러한 기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노동조합법 제 3조 5호의 페기나 개정을 통해 상급 조직에서의 복수노조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전노협이 자동적으로 합법노조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법 제 13조 규정에 따라 전노협과 지노협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지위를 보장 받지 못하는 임의단체로 남게 된다. 따라서 유일노조체제가 붕괴하고 상급조직의 자유로운 설립이 가능해질 때 민주 노조 진영의 조직적 구심인 전노협과 업종회의 등이 새로운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제 2, 제 3의 다양한 경향과 형태의 전국조직의 출현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분열을 피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빠르면 93년 하반기에 복수노조의 인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 아래 지금부터 산업별 연맹과 그것의 전국적 연합조직 건설을 위한 준비에 들어감으로써 민주노조 진영의 조직적 과제인 산별노조 건설의 첫걸음을 띄어야 하는 것이다. (3)당면 과제 그러면 기업별 노동조합의 산업별 연맹체제를 어떻게 준비해 갈 것인가? 업종회의에 속한 사무, 전문직 노동조합들이 산업별 체제로 이행할 형식적인 준비를 마친 반면에 제조업 노동조합들의 실태는 별도의 다른 대안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전노협은 우선 내부에 산업, 업종별 분과를 설치하여 산업별조직 건설을 위한 이해와 준비정도를 높여 나가야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선 전노협의 내부 결속력이 보다 높아져야 하며 조직력도 확 대 강화되어야 한다. 미가입 노조의 조직화 사업도 일정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전노협 가입노조만으로는 어떠한 산업별 연맹조직도 꾸리기 어렵고, 미가입 노조의 조직화 사업도 획기적으로 진전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 할 때 전노협은 산업 업종별 분과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하여 보다 광범한 노동조합들이 참가하는 산업별 연맹 준비조직을 따로이 건설하고 이를 주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87년 이후의 급속한 신장을 통해 금속산업의 조직화된 노동자의 수가 전체 조직노동자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간의 노동조합운동에서 보여진 이 산업 노동조합들의 주도성을 감안할 때, 전노협 내부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금속산업 노동조합들이 산업, 업종별 분과 활동과 이를 토대로 한 광범한 금속산업 노동조합의 결 집을 위해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금속산업 노동조합 대표자 회의, 금속산업 노동조합 연맹 준비위원회 동을 거쳐 전노협과 민주적인 대기업 금속 노동조합들이 주도하는 독자적인 금속 노동조합 연맹 건설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금속산업 노동조합 의 광범한 결집을 통해 독자적인 산업별 조직을 건설할 수 있을 때 사무, 전문직 노동조합들의 업종별 연맹들과 함께 산업별 연합체의 전국 총연합 즉 현 단계의 민주노총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올 하반기의 노동법개정투쟁도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 구도 하에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 서 기업별체제의 완전한 전환을 통한 산업별체제의 구축,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독소조항의 철폐 등 자주적 단결권 확보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자본과 정권의 기만적인 노동법 개정과 새로운 노동통제정책의 본질을 폭로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생리휴가 폐지 등 전 대중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근로조건의 개악을 폭로하고 개악저지를 위한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노동법 개정투쟁을 추상적 요구를 내세운 ‘운동권’의 연례행사가 아니라 대중들의 현실적 고통과 불만을 기초로 하는 대중적인 제도개선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고용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국회방문 투쟁, 근로조건 개악 저지를 위한 가두 선동과 서명작업 등 다양한 선도적인 실천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노회찬
199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