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

개념
다른 명칭 학산, 성산, 남산, 배꼽산, 文鶴山
개요
옛 인천의 안산인 문학산은(216m) 성산(세종실록, 1473), 남산(동국여지승람, 1530), 배꼽산(속명)으로 불려왔다가 여지도서(18C 중엽)에서 문학산이 되었다. ※ 세종실록, 동국여지지 - 남산봉수대. 
남구 문학-관교-학익동과 연수구 연수-청학동에 걸쳐있는 문학산(文鶴山)은 흔히 ‘그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펴고 앉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전해 온다. 『세종실록지리지』등의 옛 문헌에는 ‘남산(南山)’ 또는 ‘학산(鶴山)’이라 불린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언제부터 문학산으로 바뀌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출처: 인천광역시사, 2002)
· 유적: 
◆ 산 정상에 옛 비류성터, 봉수대, 비류정(우물)이 있었고 성 밖에 안관당이 있었다.
◆ 능선 서쪽 골짜기에 1600여 년 전 백제와 중국의 사신들이 왕래하던 삼호현 옛길이 있고
◆ 문학터널이 생기기 전 그 곳에 학산서원 터가 있었다.
◆ 임진왜란시 부평에 주둔하던 '고니시유끼나가' 부대가 문학산성을 공격했으나 김민선 부사가 두 번의 공격을 모두 격퇴시켰다. 김부사가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김부사를 모시는 사당(안관당)을 세웠다.
※ 안관당이란 관의 힘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봄, 가을 연 2회 읍민이 제를 올렸다. 
(출처: 시민과 함께하는 인천사랑운동, 2004,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