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바로알기

인주(仁州)가 인천(仁川)이 된 사연

 
비류 백제의 전설이 얽힌 유서깊은 도시  '인천'. 
이 이름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진(仁) 내(川)'가 되는데요,  이 지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시대에 제작된 <조선지도>의 '인천부' 부분.
붉은 점은 인천도호부관아 위치이며 현재 미추홀구 관교동이다. 
(출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태종 13년, 주州를 천川과 산山으로 고치다 

 
사실 인천은 원래 '인주(仁州)'라고 불렸던 곳이에요. 인천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처음 만들어졌지요. 이 해에 조정에서는 전국의 행정구역 이름을 대대적으로 새로 정하는 작업을 했어요.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26권, 태종 13년(영락(永樂) 11년) 10월 15일 신유 1번째 기사
지방 행정 구역의 명칭을 개정하다 
​(​​​​​원본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30장 A면)

  

 "凡郡縣號帶州字者, 皆改以山字川字, 寧州改寧山, 衿州改衿川, 其例也。
무릇 군(郡)·현(縣)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쳤으니, 
영주(寧州)를 영산(寧山)으로 고치고, 금주(衿州)를 금천(衿川)으로 고친 것이 그 예이다."

―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0월 15일  신유 첫번째 기사 중

    
  
「조선왕조실록」 태종 13년 10월 15일자 기록을 보면, 태종이 하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주를 완산부로 고쳤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전라도라고 부르고, 경주를 계림부로 고쳤는데도 여전히 경상도라고 부르니 이름을 다시 고치는 게 맞겠다"고요. 그러자 하륜이 "다른 지역 이름도 함께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고 답했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국적인 지명 개편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었어요. 고을 이름에 '주(州)'자가 들어간 곳은 모두 '산(山)'자나 '천(川)'자로 바꾸기로 한 거예요. 물가에 가까운 고을에는 '천(川)'을, 산이 많은 고을에는 '산(山)'을 붙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주(寧州)는 영산(寧山)으로, 금주(衿州)는 금천(衿川)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바로 이 원칙에 따라 바닷가에 있던 '인주(仁州)'가 '인천(仁川)'이 된 거예요. 인천시는 이 날, 즉 10월 15일을 '시민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답니다(태종 때는 음력을 사용했지만요.😅).

 
  

인주는 왜 '인주'였을까 — 왕비를 배출한 고을

  
그렇다면 인천의 원래 이름이었던 '인주(仁州)'는 어디서 온 이름일까요? 이걸 알려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인주는 원래 고구려 때 매소홀현이라 불리던 곳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소성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인주'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붙은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어요.
 
고려 문종부터 인종 임금까지, 무려 7대에 걸쳐 이곳에 살던 인주 이씨 집안이 왕의 외가이거나 왕비의 친정이 되었거든요. 이를 '7대 어향(七代御鄕)'이라고 부릅니다. 왕실과 인연이 깊은 특별한 고을이었기 때문에 '어질 인(仁)'자를 붙여 인주라 불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에요.
 
실제로 「고려사」에도 이곳이 황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원군, 경원부 등으로 높여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세워진 뒤, 정도전이 함경도 지역을 '경원부'라고 이름 붙이면서 원래 경원부였던 이곳은 다시 '인주'로 돌아가야 했어요. 고려 왕실과 친했던 고을이 조선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다시 인주로 불리다가, 태종 때 '인천'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仁의 숨은 뜻 — 어진 고을? 큰 고을!

 
'인천(仁川)'을 한자 그대로 풀면 '어진 내'가 되는데, 냇물이 어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사실 '천(川)'은 원래의 '주(州)'자가 가진 뜻, 즉 '고을'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은 글자예요. 그러니 '냇물'이 아니라 '고을'로 봐야 합니다. '인(仁)'이라는 글자는 '어질 인'으로 읽히죠. 그래서 인천은 흔히 '어진 고을'이라고 풀이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仁'이라는 글자가 우리 중세 국어에서는 '어질다'가 아니라 '크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근거가 있거든요.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보면, '仁'을 '클 인'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반면 진짜 '어질다'는 뜻을 가진 '賢'자는 '어딜(어질) 현'이라고 따로 풀이해 놓았어요. 즉 당시 사람들은 '仁'과 '어질다'를 곧바로 연결 짓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보면 인천은 '어진 고을'이 아니라, '여러 왕비를 배출한 덕망 있는 큰 고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덕망이 있는 사람을 두고 '큰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어진 고을'이라는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글자의 옛 뜻과 어감을 생각하면 '큰 고을'이라는 풀이가 조금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인천은, 결국 '큰 고을'입니다. 🤗

  


*이 기록콘텐츠는 최재용 저 『미추홀은 물골이다: 인천, 그 이름에  얽힌 역사』(사)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2020)의 'Intro' 를 AI로 요약·재구성한 뒤 아키비스트가 검수하고 원본 기록물을 첨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