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여 년 전만 해도 부평 토박이들 사이에서 흔히 나오던 말이에요. 실제로 부평은 아주 오랫동안 인천과는 다른 행정구역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부평이 인천보다 훨씬 큰 고을이어서,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부평도호부가 인천, 해풍, 김포, 교동, 양천, 통진까지 거느린 기록이 나올 정도예요. 인천의 남쪽 동네와 부평을 택시로 오갈 때 '시외' 취급을 받아 할증요금을 더 냈다는 이야기, 간석오거리에서 동암역을 지나 서울로 향하는 국도변의 '원통이고개'가 두 지역의 경계로 여겨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로, 이 정서는 꽤 뿌리 깊었습니다.
부평이 인천에 완전히 편입된 건 일제강점기인 1930~1940년대의 일이에요. '부평(富平)'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이 땅은 무려 여섯 번 넘게 이름을 바꿔왔어요. 주부토군에서 장제군으로, 수주로, 안남도호부로, 계양도호부로, 길주목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부평으로. 이름이 바뀔 때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부평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에요. 『삼국사기』에는 이 이름이 통일신라 경덕왕 때 '장제군(長堤郡)'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부토'라는 이름, 한자 뜻 그대로 읽으면 도무지 해석이 안 돼요. 한글이 없던 시절이라 우리말 이름을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표현했기 때문이에요. 이두나 향찰처럼요. 그래서 지금 한자 뜻으로 풀면 안 되고, 당시 어떤 우리말 소리를 나타내려 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국어학자들이 가장 유력하게 보는 해석은 '주(主)'는 '님'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어 '나마' 혹은 '니마'를 표현한 글자이고, '토(吐)'는 '터(땅)'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에요. 신라 향가 「서동요」에 나오는 "선화공주님은…"이라는 구절에서 '主'가 '님'으로 쓰인 것이 그 근거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부토'는 '주인의 땅' 또는 '임금의 땅' 정도의 뜻이 됩니다.
이후 경덕왕 때 이름이 '장제군'으로 바뀌는데, 여기서도 '장(長)'은 '주부'와 같이 '님'이라는 뜻으로, '제(堤)'는 역시 '땅'을 나타낸 글자로 해석돼요. 그러니 '장제' 역시 '임금의 땅'이라는 같은 뜻을 이어받은 셈이죠. 이 이름은 고려 초기인 940년에 다시 '수주(樹州)'로 바뀌는데, '수(樹)'가 '나마'라는 발음을, '주(州)'가 '땅'이라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면 이것 역시 '임금의 땅'이라는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와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라는 군사 행정기구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안남'은 한자 뜻 그대로 풀면 "남쪽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말이에요.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이 지역을 다스린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이 이름, 사실은 중국에서 먼저 쓰던 이름을 빌려온 것일 가능성이 커요. 중국 당나라가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지역에 '안남도호부'를 두고 다스렸던 전례가 있거든요.
한편 언어학적으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기도 해요. '安(안)'을 임금이나 주인을 뜻하는 우리말 '아라'를 표현한 글자로 보고, '南(남)'은 '님'을 뜻하는 고대어 '나마'를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는 거죠. 이렇게 보면 '안남도호부' 역시 '주인의 땅' 또는 '임금의 땅'이라는, 앞서 나온 이름들과 똑같은 뜻이 됩니다.
이후 이름이 바뀐 '계양도호부'는 '계양산'이라는 산 이름 때문에 생긴 이름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계(桂)'자가 흥미롭습니다. 흔히 '계수나무가 많아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계수나무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 이 산에 많았을 리 없어요. 언어학적으로는 '계(桂)'가 '높은 곳'을 뜻하는 옛말 '돌(달)'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봅니다. 산이니까 높은 곳이라는 뜻에서 이 글자를 쓴 거예요. 결국 계양이라는 이름 역시 '높은 곳(산)' 혹은 '높은 사람(임금)이 사는 땅'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어, 앞선 이름들의 계보와 이어집니다.
고려 충렬왕 때 이 지역은 '길주목(吉州牧)'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흔히 충렬왕이 이곳에 매 사육장을 만들어 사냥을 즐겼기에 '길(吉)한 땅'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해요.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보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영동군은 본래 길동군이다", "영풍군은 본래 대곡군이다" 같은 기록을 비교해보면 '영(永)=길(吉)=대(大)'라는 관계가 성립하고, 여기서 '길(吉)'이 '크다'는 뜻을 가졌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 '길주'는 '큰 고을'이라는 뜻이 되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고려 충선왕 때인 1310년, 이 길주목이 '부평부(富平府)'로 이름을 바꾸면서 처음으로 '부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부평'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수확이 많은(富)넓은 들(平)"이라는 뜻이에요. 실제로 부평 일대에 넓은 평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전까지도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는 저지대였고, 곡식이 풍부하게 나는 땅이었다는 기록도 딱히 없습니다. 그러니 '풍요로운 들판'이라는 해석은 조금 의심스러워요.
그래서 언어학적으로는 다르게 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강원도 김화군 기록을 보면 "부평군은 본래 고구려의 부여군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김화현이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를 통해 '부(富)=금(金)'이라는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데, 땅 이름에서 '금'은 흔히 '신(神)'이나 '거룩한 존재'를 뜻하는 옛말 '금'을 한자로 옮긴 것이거든요. 그러니 부평의 '부(富)'도 이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고, 결국 '부평'은 '거룩한 땅', '높은 사람이 다스리는 땅' 정도로 해석됩니다. 앞서 나온 주부토, 장제, 수주, 안남, 계양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에요.
이렇게 이름을 얻은 '부평'은 조선시대까지 도호부·현·부 등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졌고,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부평동, 부평구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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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콘텐츠는 최재용 저 『주부토는 신성한 땅: 인천, 그 이름에 얽힌 역사Ⅱ』(사)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2025)의 'Intro'와 '부평'을 AI로 요약·재구성한 뒤 아키비스트가 검수하고 원본 기록물을 첨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