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1995년 대한민국
전나형
게시일 2021.12.19  | 최종수정일 2021.12.19



 

<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1995년 1월
• 1월 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995년을 '세계화 원년'으로 하자고 밝혔다.
- 부산 등 5개 직할시가 광역시로 변경되었다.
- 경남 울산시 등 35개 도농복합시가 출범되었다.
- 환경부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 럭키금성이 사명을 LG로 변경하였다.
• 1월 3일
- 서울지법은 후유증 발생 시점부터 교통사고 손해배상 청구가 유효하다고 판결하였다.
- 제이씨현이 PC통신 '엘림네트'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1월 4일
- 부산광역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환경도시'를 선언하였다.
- 국가보훈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요구 비망록을 공개하였다.
• 1월 5일
- 한국통신이 케이블TV 전송망을 개통하였다.
- 전국 32개 지역에서 첫 케이블TV 시험방송이 개시되었다.
- 경찰은 한미은행 신림본동지점이 신고한 10만원권 위조수표 66장에 대한 수사를 착수하였다.
• 1월 6일: 김영삼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실명제 시행 방침을 언급하였다.
• 1월 8일: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 1월 9일
- 김종필 민자당 대표는 대표제 폐지 등 지도체제 개편에 반발하였다.
- 홍재형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실명제를 7월 1일부터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한국 정부가 UN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였다.
- 부산 광안대로가 착공되었다.
- 네팔인 산업연수생 13명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인 사용자의 비인간적 대우 등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북한은 함흥, 청진, 김책시 등 공업도시에 투자를 개방하였다.
- 육사 36기 출신인 하기룡 중위가 국민은행 능동출장소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채 강도행각을 일삼다 청원경찰 임승재에게 체포되었다(육사출신 현역장교 은행강도 사건).
- 5.18 광주항쟁 소재 TV드라마 《모래시계》가 S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월 10일
- 이홍구 국무총리는 국내 외국인노동자의 노동실태 파악과 개선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하였다.
- 재경원 산하 '금융/부동산실명제 실시단'이 발족되었다.
- 국세청은 금년도 세정집행 역점 추진방향 5개항을 발표하였다.
- 경찰청은 연예인 출연 대가로 매니저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방송국 PD들을 수사하기 시작하였다.
- 감신대생 680명이 수업을 거부하며 장기농성을 벌이다 전원 유급되었다.
• 1월 11일
- 이날자 중앙일보에서 탈세 목적이 아닌 배우자간 명의신탁 허용을 골자로 한 등기법률시안이 입수되어 단독 보도되었다.
- 총무처는 장기근속 공무원 중 희망자 특별명예퇴직제도를 시행하였다.
- 국회 내무위원회는 서울 강남구청 등 3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지방세 비리사건 국정조사에 착수하였다.
- 삼성그룹 투자단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 1월 12일
- 건교부 산하 건설안전대책본부가 발족되었다.
- 통일원은 제3국을 통해 이산가족에게도 생필품과 소액 송금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대법원은 신부가 이혼 뒤에도 약혼/결혼예물을 소유할 수 있도록 판결하였다.
• 1월 13일
- 이기택 민주당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에게 정계 은퇴를 촉구하였다.
- 서울지법은 1980년 당시 신군부의 부정축재자 재산몰수는 절차상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 1월 14일
- 월주 총무원장이 이끄는 새 조계종 집행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 보건복지부는 4월부터 심장/신장약 광고를 금지하고 어린이용 약품 광고시간대도 엄격히 제한하기로 결정하였다.
• 1월 15일
- 10만원권 수표 위조범 4명이 시민의 제보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 서울지검은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사기록을 영구보존 문서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였다.
• 1월 17일: 교육부는 교과서 검정제를 전환하여 국사와 국어만 국정을 유지하였다.
• 1월 18일
- 김영삼 대통령은 무라야마 일본 총리대신에게 고베 대지진 관련 위로전화를 걸었다.
-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가 입수한 이승만 정권의 미인계 '낙랑클럽' 관련 문건이 이날 발행된 <월간중앙> 2월호에 게재되었다.
- '한국방송노조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19일
- 김종필이 민자당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 내무부는 2월 1일부터 부동산정보 종합전산망 국토종합센터를 가동한다고 발표하였다.
• 1월 20일: 헌법재판소는 12.12 쿠데타와 관련해 전두환, 노태우의 대통령 재임 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결정하였다.
• 1월 21일
- 국무총리 산하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 국방부와 병무청은 '징병 신체검사 규칙 개정안'을 확정지었다.
- 미국 정부는 대북한 규제를 부분 완화하며 미국 내 북한 자산의 동결을 해제시켰다.
• 1월 23일: 경수로사업 지원기획단이 출범하였다.
• 1월 24일: 북한측은 남한 정부에 대민족회의를 제의하였다.
• 1월 25일
- 정부는 남북간 차관급 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 현대그룹은 계열사 축소와 6개 소그룹 분할 운영계획을 발표하였다.
-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추진위 간담회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 1월 26일: 김영삼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1월 27일
- 김영삼 대통령의 망월동 묘역 참배 시도가 남총련 학생들의 묘역 점거로 무산되었다.
-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혜성특급이 개장하였다. 

 

❚1995년 2월
• 2월 1일
- 총무처는 각 부처 산하 417개 위원회의 통폐합을 결의하였다.
- 북한측은 남한의 여/야당에 남북정당회담을 제의하였다.
• 2월 2일
- 국방부는 동년 1월에 미국측이 한국군에 보스니아 파병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 총무처는 교원을 뺀 정부기구와 공무원 인력 전면동결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관리지침>을 시달하였다.
- 이한기 전 국무총리가 향년 78세로 세상을 떴다.
• 2월 3일
-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총재로 재추대되었다.
- 김덕 통일부총리는 대북성명에서 4월 평양축전 때 이산가족의 방북 허용을 제의하였다.
- 서울시는 승용차 10부제 및 11개 도로 종일 버스전용차선제를 실시하였다.
• 2월 4일: 교육부는 1996년부터 고교 영어교육을 강화할 것을 발표하였다.
• 2월 5일: 민자당 여의도연구소가 출범하였다.
• 2월 7일
- 민자당 정기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직에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선출되었다.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수리를 위해 정박 중이던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에서 용접 도중 화재가 발생하여 작업중이던 노동자 19명이 죽고 7명이 부상당했다.
- 지휘자 정명훈이 프랑스에서 '1994년도 고전음악의 승리상'을 수상하였다.
• 2월 9일: 김종필 전 민자당 대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 2월 10일: 서울대 황우석 박사팀이 국내 최초로 핵 이식기법으로 송아지 복제에 성공하였다.
• 2월 11일
- 주한미군의 해/공군 중심운영과 한국군의 지상군 주력을 내용으로 한 미국 국방부의 <신 아-태 전략초안>이 이날자 중앙일보에서 단독 입수되어 보도되었다.
- 부산 국제시장 2공구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점포 41개소가 전소되고 40여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 '아리랑연구회'가 창립되었다.
• 2월 12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설립되었다.
• 2월 13일: 전경련 등 경제 5단체장이 <노사협력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2월 14일
- 김덕룡 민자당 사무총장은 지방자치 선거 전 행정구역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이 제정되었다.
- 해방 뒤 소련측이 김일성을 내무성에 내정했다는 내용의 러시아 고문서보관소 극비문서가 이날자 중앙일보에서 단독 보도되었다.
• 2월 15일
- 서울시는 가뭄 극복을 위해 수요일 절수운동을 전개하였다.
- 경기도는 금년도 2학기부터 28개 국민학교에 주5일제 수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 연합TV뉴스가 첫 시험방송을 개시하였다.
• 2월 18일
- 출마예상자 동향조사와 관련된 김용선 경기도지사가 문책 해임되었다.
- 인천지검은 경매보증금 45억 3천만 원을 횡령한 인천지방법원 집달관 사무소직원을 구속하였다.
• 2월 20일: 구자경 회장 등 LG그룹 원로 경영진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 2월 2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안기부 문서파동과 관련된 김덕 대신 나웅배를 새 통일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에 임명하였다.
- 서울 소피텔 앰베서더호텔에서 '자유민주연합 창당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김상협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떴다.
• 2월 22일
- LG그룹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직에 취임하면서 3세 경영체제가 확립되었다.
- 조훈현 9단이 제3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3차전에서 일본의 린 하이펑 9단을 꺾음으로써 한국이 진로배 3연패를 기록하였다.
- 프로축구단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되었다.
• 2월 24일
- 민주당은 이날 임시전당대회에서 야권 3자 통합을 선언하였다.
- 교육부는 1997년부터 국민학교 4~6학년에 영어교육을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부산지법은 강주영 양 유괴살인사건 공범 3명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 2월 25일
- 국방부는 팀 스피릿 '95 훈련을 중지하기로 결정하였다.
- 범민련 남측본부가 결성되었다.
-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사망했다.
• 2월 26일: KBS2에서 <슈퍼 선데이>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7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고한읍 주민 3천여 명이 사북 복지회관에서 감산정책 철회, 생산된 석탄 전량의 정부 수매, 폐광지역의 개발촉진지구 지정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갔다.
• 2월 28일: 내무부는 일제가 전국 명산 154개소에 박아놓은 쇠말뚝을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1995년 3월
• 3월 1일
-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선포식'이 경복궁에서 거행되었다.
- 전국 24개 PP 및 48개 SO가 케이블TV 20개 채널 본방송을 개시하였다.
- 행정구역 개편 중 광역자치단체 간 경계조정 및 자치구 분구가 이날부로 발효되었다.
- 전주우석대학교가 '우석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가톨릭대가 성심여대를 합병했다.
• 3월 2일
- 김영삼 대통령이 유엔 사회개발정상회의(WSSD) 참석 및 유럽 5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김영삼 대통령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두 정상은 TGV 조기 기술이전과 외규장각 문서 반환 등에 합의하였다.
- 외무부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 외 한국정부 소유 토지 84,747평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확인하였다.
- 정부는 덕산그룹 부도 확산을 막기 위해 충북투자금융에 업무정지령을 내렸다.
- 한국통신은 1996년 3월부터 무선데이터통신 시범서비스를 서울 지역에서 실시한다고 밝혔다.
- 검찰은 덕산그룹 박성섭 회장 등 3명에 출국금지를 내렸다.
- 한화그룹은 25개 계열사 통합/매각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 고려시멘트가 최종부도를 맞았다.
- 중앙일보사가 인터넷 신문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한솔문화재단이 발족되었다.
• 3월 3일
- 민자당은 통합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외무부는 대한해협 영해를 12해리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 북한과 독일이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 3월 4일
- 김영삼 대통령은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 정부는 현대그룹 금융제재를 해제하였다.
- 허영호를 단장으로 한 '중앙일보 95 한국 북극해 횡단 원정대(이하 중앙일보 북극원정대)'가 발족되었다.
- 전주풍남제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도라에몽 극장판 제16작 <노비타의 창세일기>가 일본에 개봉되었다
• 3월 5일
- 수원 신미주아파트 단지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하여 3천여 명이 대피하였다.
- 중앙일보 북극원정대는 세계 최초 극점 도보횡단을 위해 출국하였다.
- KBS1에서 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6일
- 민주당은 민자당의 통합선거법 개정안 단독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를 봉쇄하며 충돌을 벌였다.
- 유엔 사회개발정상회의(WSSD)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막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은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었다.
- 한국통신이 시티폰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3월 7일
-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에 곡물을 제공할 용의를 밝혔다.
- 한국원자력연구소 박경배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붙이는 피부암 치료제를 개발해냈다.
- 경기도 군포 산본신도시 우륵아파트에서 30대 주부가 여아 3명을 끌고 뛰어내려 투신했다. 이로 인해 본인과 친구의 딸 2명이 죽고 자신의 딸 1명이 중상을 입었다.
- 서울지검은 경기 용인에서 11년 전 살해 후 암매장된 영생교 신도의 유골을 발굴해냈다.
- 한국 안과의사 1호이자 국산 타자기 발명가인 공병우 박사가 사망했다.
• 3월 8일
-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금지 철회를 촉구하였다.
- 서울시는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와 함께 '베세토(Beseto)' 협력 합의각서를 교환하였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이 문을 열었다.
• 3월 9일
- 김영삼 대통령과 메이저 총리는 한-영 정상회담에서 1997년까지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 경찰 중간간부 승진시험 정답 유출 사건이 발생하였다.
- 경찰청은 1996년부터 경찰통제선(폴리스 라인)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 광주과학기술원이 문을 열었다.
- 지체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이 서초구청의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을 감행하였다. 이후 그는 12일 뒤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3월 10일
- 김영삼 대통령은 덴마크에서 13개국 정상 초청회담을 열었다.
- 강원도 양양군 의회가 의원 7명 중 6명의 탈퇴로 해체되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지방의회 해체로 기록되었다.
- 대법원은 자기 동창을 변호사로 받아준 판사를 좌천 조치시켰다.
- 게임 제작사인 CCR이 설립되었다.
• 3월 1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유엔 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연설하였다.
- 전국노점상연합회와 장애인 단체들은 최정환의 분신과 관련해 서초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 3월 12일
- 경찰은 국회의장 공관과 이한동 부의장 저택에서 농성을 하던 민주당 의원 16명을 강제 해산시켰다.
- 이날부터 중앙일보 북극원정대가 북극 원정을 시작하였다.
• 3월 13일: 한국과 벨기에가 정상회담을 열었다.
• 3월 14일
-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는 2015년까지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 종합계획안'을 확정하였다.
- 학교법인 금룡학원 이사장 김형진이 자택 안방에서 괴한에 의해 피살당했다.
• 3월 15일
-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이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하였다.
• 3월 17일: 대중음악 작곡가 길옥윤이 세상을 떠났다.
• 3월 18일: <월간중앙>이 4월호를 끝으로 잠정 폐간되었다.
• 3월 19일: 이봉주와 이미경 선수가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 3월 20일
- 이날 살해혐의로 검거된 대학교수 김성복이 자신의 부친 김형진을 살해했다고 시인하였다.
- 신민당 박찬종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 3월 21일
- 내무부는 송탄-평택 등 5개 시/군 통합을 확정하였다.
- 서울지하철공사는 도쿄지하철 테러사건을 계기로 경계를 강화하였다.
• 3월 22일
-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1994년 김일성 조문파동 당시 정부의 대응을 지적하여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 강원 홍천군 내촌국교 ~ 5개 분교 간 화상원격교육시스템이 개통되었다.
- 이날 밤중에 잠실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 중앙일보사는 여성중앙 후속지 를 창간하였다.
• 3월 23일
-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추진 보고회의에서 '삶의 질 세계화'를 선언하였다.
- 참여연대는 정식 명칭을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로 변경하였다.
• 3월 27일
- 김복동 신민당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 북송 재일교포 가족 7명이 남한으로 귀순하였다.
• 3월 28일
- 국방부는 국산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 시험발사를 성공했다고 발표하였다.
- 대검은 박성섭 덕산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 EU 한국산 컬러TV에 반덤핑 과세 부과를 결정하였다.
• 3월 29일
- 정부는 석달 임기 시장 및 도지사 6명을 임명하였다.
- 외무부는 OECD 사무국에 한국의 회원국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다.
- 서강대 박홍 총장은 중요 기관에 친북세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 3.15의거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설립되었다.
• 3월 30일
-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이 정식 창당되었다.
- 대검은 덕산그룹 박성섭 회장의 모친 정애리시를 구속했다.
• 3월 31일
- 한국형 표준원자로 영광원전 3호기가 가동을 개시하였다.
- 국제선명회는 양곡 구입자금 9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하였다(MBC-중앙일보 후원사업).
 

 

❚1995년 4월
• 4월 1일
- 중앙일보는 북한 지하교회의 실태를 단독 보도하였다.
- 한국 표준형 원전 '영광원전 3호기'가 가동을 개시하였다.
- MBC 표준FM에서 <이종환-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가 첫 전파를 탔다.
• 4월 2일
- 성수대교 붕괴사고 감정단은 성수대교 붕괴 원인을 '부실시공'이라고 결론지었다.
-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부임 2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하였다.
• 4월 3일
- 김영삼 대통령은 젤류 젤레프 불가리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신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은 '야권통합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경찰 산악안전구조대가 발족되었다.
- 보현산 천문대가 준공되었다.
• 4월 4일: 쌍용그룹 회장 김성곤이 민자당 대구달성 조직책에 임명되었다.
• 4월 5일: 제3기 한총련 출범식이 경북대에서 개최되었다.
• 4월 7일: 건설정보관리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4월 8일: 한국표준형 경수로 울진 3호기가 완공되었다.
• 4월 11일
- 전남 화순에서 통학/통근버스와 광주발 부산행 비둘기호와 충돌하여 14명이 죽고 19명이 다쳤다.
- 통일원은 대종교 총전교 안호상 등 2명이 북한의 어천절 행사와 단군릉 방문을 위한 초청에 따라 불법 입북했다고 발표하였다.
- 대한주택팩터링이 설립되었다.
• 4월 12일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장쩌민 주석, 리펑 총리와 연달아 면담하였다.
- 김영삼 대통령은 도 므어이 베트남 서기장과 회담을 열었다.
- 부산포럼이 세워졌다.
- 서울 한남동 합참의장 공관에 불이 나 김동진 합참의장의 모친이 숨을 거두고 아들이 중상을 입었다.
• 4월 13일
- 한국-이집트 양국이 정식 수교를 맺었다. 이로써 한국은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다.
- 종전의 정보윤리위원회가 법정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출범되었다.
• 4월 14일: 한겨레신문사가 <씨네21>을 창간하였다.
• 4월 15일
- 중앙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하였다.
- 삼성 라이온즈 신인선수 이승엽이 LG 트윈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 4월 16일: 검찰은 판문점에서 돌아온 안호상 총전교 등 2명을 긴급 구속하였다. 그러나 안 총전교는 이틀 뒤 불구속 입건되었다.
• 4월 17일
- 대법원은 한국 근대 사법사상 첫 판결문을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100년 만에 발견해 공개하였다.
- 판소리 명창 김소희가 사망했다.
- 4.19 묘역 성역화 사업이 완료되었다.
• 4월 18일: 국무회의는 4.19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을 결의하였다.
• 4월 19일
- 일본 요코하마 지하철 4개 역에서 유독가스 사건이 발생하였다.
- 유원건설이 최종 부도처리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에 대한 위로전을 보냈다.
- 북한은 미국과의 경수로회담 결렬을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 서울지법은 성수대교 붕괴사고 관련자 17명 중 1명에 무죄, 16명에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하였다.
• 4월 21일
- 민주당과 신민당은 '민주당' 명칭으로 통합한다고 선언하였다.
- 쌍용그룹은 정계에 진출한 김석원 대신 김석준 총괄부회장을 회장직에 앉혔다.
• 4월 22일
- 국방부는 학군단 철수와 사관학교 추천입학제, 사병복무평가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한 <군 기강 쇄신안>을 발표하였다.
- 민족회의, 민노총준비위, 여연 등을 주축으로 한 '8.15 민족공동행사 남쪽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4월 25일: 팔당대교가 개통되었다.
• 4월 26일
-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임기 중에 개헌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전화수리 중 상급자에게 불만을 품은 전화국 직원이 전화단자선에 불을 내 28,060가구의 전화가 불통이 났다.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박창희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긴급구속되었다.
- 중앙일보사는 새 시사월간지 제호를 <시사월간 WIN>으로 확정하였다.
-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 4월 28일
- 대구 상인동에서 지하철 공사 도중 도시가스가 폭발하여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부상을 입었다.(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 이홍구 국무총리는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 제일제당은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감독과 영화 합작 및 3억 달러 투자 계약을 맺었다.
- 한-미 육류 유통기한 협상이 결렬되었다.
• 4월 29일: 건교부는 '국가지리정보시스템(GIS)'을 구축한다고 발표하였다.

❚1995년 5월
• 5월 1일: 제174회 임시국회가 개각 및 김영삼 대통령 사과를 요구한 민주당의 불참으로 인해 단독 개회되었다.
• 5월 2일
- 서울 신당동에서 지하철 공사 천공작업 도중 가스관 파열사고가 발생하였다.
- 중앙일보사가 주간 시티매거진 를 창간하였다.
• 5월 3일
- 민주당은 첫 민선 서울시장 후보로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선출하였다.
- 제1회 서울모터쇼가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되었다.
• 5월 4일: 김영삼 대통령은 주한 일본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김정일이 주석에 취임할 시 남북정상회담을 열겠다고 밝혔다.
• 5월 5일: 삼성문화재단은 서울 잠실에 '삼성어린이박물관'을 개장하였다.
• 5월 7일: 중앙일보 북극원정대가 56일 2시간 18분만에 극지점을 통과하였다.
• 5월 9일: 통일원은 북한으로의 밀가루 반출을 처음 승인하였다.
• 5월 10일
- 방중 중인 이홍구 국무총리는 리펑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반도 정전체제 유지를 확인하였다.
- 김숙희 교육장관이 국방대학원에서 열린 '한국의 교육정책 방향' 이라는 특별 강연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국군에 대해 '명분 없는 전쟁', '미군 용병' 등의 발언을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 서울경찰청은 과격시위 방지를 위해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을 시범 도입했다.
- 일일시트콤 이 S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5월 12일
- 김영삼 대통령은 이틀 전 국방대학원 발언과 관련해 김숙희를 교육부 장관직에서 해임하였다.
- 충남 보령 앞바다에서 식인상어가 출현하여 전복을 따던 해녀가 상어의 공격으로 다리가 잘려 숨을 거두었다.
- 진의종 전 국무총리가 사망했다.
- 현대자동차 해고노동자 양봉수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며 분신하였다. 이후 그는 6월 13일에 숨을 거두었다.
• 5월 14일: PSB, TBC, KBC, TJB 등 SBS계 지역민방 4개가 개국하였다.
• 5월 15일
- 안기부와 서울경찰청은 '박창희 노동당 간첩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경향신문이 국내 최초로 1면 광고를 없앴다.
• 5월 16일
- 김영삼 대통령은 나자르 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자민련과 신민당이 통합을 선언하였다.
• 5월 17일
-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남북경협 사상 최초로 대우그룹의 대북협력사업 승인을 발표하였다.
- 현대자동차는 파업에 대응하여 이날부로 무기한 휴업하였다.
- 월간중앙의 후속지로 <시사월간 WIN>이 창간되었다.
- 종전의 언론노보가 <미디어오늘>로 개편되었다.
• 5월 19일
- 김영삼 대통령은 IPI 한국위원회 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한통노조 파업을 '국가전복 기도'로 간주해 엄중히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검찰은 한통 및 현대차 노사분규와 관련된 9개 재야 노동단체에 대한 수사를 착수하였다.
- 경찰은 파업 중이던 현대차 울산공장에 전의경 1천여 명을 투입해 농성 노동자 310명을 연행하였다
- 구속 중이던 박창희 교수는 북한 조선로동당 가입 사실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등 9개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하였다.
- 이양호 국방장관은 한-러 국방장관회담에서 러-북 간 자동 군사개입 조항 폐지를 요청하였다.
- 신행주대교가 개통되었다.
- 공진청은 ISO가 한글 로마자표기 남북한 합의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 주한미군 7명이 서울지하철 충무로역에서 여성 성희롱을 만류하던 시민들을 집단 구타했다.
• 5월 20일: 무장탈영병 이모 이병이 서울 가양동 동신아파트에서 경찰과 대치 도중 폭사당했다.
• 5월 21일
- 경찰은 오용철 교육국장 등 한통노조 간부 5명을 연행하였다.
- 주한미군사령부는 이틀 전 미군의 시민 폭행사건에 유감을 표명하였다.
• 5월 23일
- 북한 공군 소속의 이철수 대위가 MiG-19를 몰고 탈북해 귀순하였다.
- 이형구 노동부장관이 산은 총재 재직시 뇌물수수 혐의로 사표를 냈다.
• 5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새 노동부장관에 진념 전 동자부장관을 임명하였다.
• 5월 26일: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북한에 조건없이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남북대표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 5월 31일: 교육부 교개위는 5.31 교육개혁방안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시험 성적표나 다름없었던 생활기록부가 그 이듬해부터 학교생활기록부(처음 명칭은 ‘종합생활기록부(줄여서 종생부)’였으나 곧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로 개편되었으며 특별활동 경력, 봉사활동 경력 등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수시모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6월
• 6월 1일
- 뉴코아는 서울 본점 3관에 킴스클럽 1호점을 개점하였다.
- 황색지 <주간경향>이 28년만에 폐간되었다.
• 6월 4일: 외무부는 와타나베 전 외상의 식민지배 관련 망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 6월 6일
- 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와타나베 전 외상의 망언에 항의하며 주한 일본문화원에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경찰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전의경 병력을 투입하여 농성중인 한국통신노조 간부 13명을 체포했다. 명동성당에 경찰력이 투입된 것은 1898년 성당이 건립된 이래 처음이었다.
- 한국PC통신 측은 이용약관에 따라 하이텔 한통노조 CUG를 강제 폐쇄시켰다. 당시 네티즌들은 이를 '6.6 학살'이라 명명했다.
• 6월 14일: 한국조폐공사 옥천조폐창에서 1천원권 지폐 1천 장(1백만 원)이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세민 사장이 전격 경질되었다.
• 6월 16일: 청주지검은 조폐창 지폐도난 사건 범인으로 조폐창 활판과 여직원인 황모 양을 구속하였다.
• 6월 17일
- 이석채 재경원 차관과 전금철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대북 쌀지원 관련 회담을 열었다.
- 원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세상을 떴다.
- 정동극장이 문을 열었다.
• 6월 19일: 대법원은 10개항의 법관 윤리강령을 제정하였다.
• 6월 20일: 남북 양국 당국자들은 베이징에서 대북 쌀 지원협상을 완전히 타결하고 합의문을 작성하였다.
• 6월 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오영선 등 해외 순국 독립운동가 7명의 유해가 고국에 돌아왔다
• 6월 25일
- 쌀 2천 톤을 실은 '아펙스 호'가 북한 청진항을 향해 출항하였다.
-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아비드 후세인이 한국 내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키 위해 방한하였다.
• 6월 27일: 전국 각 지자체별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 6월 29일: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2동 중 A동 건물이 붕괴되었다.(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7월
• 7월 1일
- 조순 서울시장 등 전국 시/도지사 및 시/군/구청장이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 경향신문사가 를 창간하였다.
• 7월 6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7월 7일: 민가협은 세계최장기수 김선명 등 비전향 장기수들을 비롯한 양심수 석방을 위해 서울 명동성당에서 '하루감옥체험'을 개최하였다.
• 7월 15일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5일 만에 박승현 양이 구조되었다.
- 힙합 듀오 듀스가 고별 콘서트를 끝으로 공식 해체했다.
• 7월 16일: '여성폭행에 관한 UN 특별보고위원회' 보좌관들은 북한에서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였다.
• 7월 18일
- 서울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자를 418명, 실종자 246명, 부상자 408명으로 집계하였다.
- 서울지검은 5.18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78명에 대해 '새로운 헌법질서 창조'를 이유로 불기소처분시켰다.
-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였다.
- 한국공예가협회가 창설되었다.
• 7월 19일
- 광주 시민과 대학생들은 검찰의 5.18 관련자 불기소처분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 '정읍사문화제 제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7월 22일
-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였다.
- 당시 고등학생이던 최우주 군이 학교의 강제 자율학습 및 보충수업과 관련하여 청와대, 교육부, 강원도 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출한 뒤, 민원문을 하이텔 플라자에 올리면서 파장이 일었다.
• 7월 23일
- 제3호 태풍 페이가 한반도 남해안으로 상륙했다.
- 14만4천 톤급 유조선 '씨 프린스' 호가 전남 여천군 소리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많은 양의 기름이 유출되면서 남해안 지역에 심각한 기름 오염 피해를 입혔다.(씨 프린스호 좌초사고)
• 7월 24일
- 중앙재해대책본부는 태풍 페이로 인한 사망자가 16명, 실종자 27명이라고 잠정 집계하였다.
- 한러문화협회가 설립되었다.
• 7월 25일
- 북한 평양방송은 안승운 순복음교회 목사의 월북 사실을 보도했다.
- 외무부 대변인은 열흘 전 실종된 안승운 목사가 북한 공작원에게 강제 납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1995년 8월
• 8월 2일: 서석재 총무장관이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의 4천억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했다.
• 8월 4일
- 김영삼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가명계좌 보유의혹 발언을 한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사표를 수리하였다.
-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시행되었다.
• 8월 7일: 김영삼 대통령은 새 총무처장관에 김기재 전 부산시장을 임명하였다.
• 8월 8일: '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8월 11일
-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김대중이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사실상 정계에 복귀하였다.
- 법무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최장기수 김선명과 정주영, 김근태 등 3,169명을 사면/복권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교육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 8월 12일
- 외무부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측의 외교공한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 제6차 범민족대회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개최되었다.
-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 남측행사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개최되었다.
- '1995 세계한민족축전'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막되었다.
• 8월 14일: 한총련은 기자회견에서 인천대생 정민주와 가톨릭대생 이혜정이 판문점 민족통일대축전 참가를 위해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고 발표하였다.
• 8월 15일
- '8.15 광복 50주년 기념 중앙경축식 및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 철거식'이 서울 경복궁에서 거행되었다.
- 범청학련 중앙위 제1차 회의가 판문각에서 개최되었다.
- 한총련 소속 학생 1만 8천여 명은 판문점 8.15 민족공동행사 참가가 저지되자 서울 구파발 및 고양 삼송검문소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8월 17일: '민중 경제학자' 박현채 교수가 세상을 떴다.
• 8월 18일
- 1993~94년 당시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두 차례 지폐유출 사건이 일어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 MBC가 위성방송사업단을 발족했다.
• 8월 19일: 김명호 한은 총재가 부산지점 지폐유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 8월 21일
- 경기도 용인군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나 37명이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유조선 '제1유일호'가 부산 남형제도 인근 해상에서 좌초되어 예인 도중 침몰되었다.
• 8월 23일
- 이날부터 8월 25일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 설상가상으로 집중호우가 끝나자마자 제7호 태풍 '제니스'가 북상해 한반도 중부를 관통하면서 또다시 많은 비를 뿌렸다.
• 8월 26일: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중서부지방 호우로 인한 사망자를 38명, 실종자 12명, 이재민 1만 여 명, 재산 피해 660억 원으로 집계하였다.
• 8월 28일: '정치개혁시민연합 발기인대회'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9일: 중앙고속도로 칠곡-안동, 제천-원주, 홍천-춘천 구간이 2차선 형태로 개통되었다.
• 8월 31일
-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총 470억 원에 인수하였다.

❚1995년 9월

• 9월 4일: KBS1에서 <세상은 넓다>가 첫 전파를 탔다.
• 9월 5일: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가 정식으로 창당되었다.
• 9월 6일: 정보연대 SING 등 12개 통신운동단체를 주축으로 한 '진보통신단체연대모임'이 발족되었다.
• 9월 12일: KEDO와 북한은 경수로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 9월 14일: 정부는 대한해협의 영해 폭을 3해리에서 6~12해리로 확대한다고 결정하였다.
• 9월 18일: <사우르스 팡팡>이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9월 20일: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 9월 28일: 동아일보사가 시사주간지 를 창간하였다.

❚1995년 10월
• 10월 1일
- 교육부는 1996년부터 '책가방 없는 날'을 중/고등학교에까지 확대하도록 결정했다.
- 경찰청은 경찰 근무복을 진청색 양복형 복제로 바꾸었다.
• 10월 2일
- 디지틀조선일보가 설립되었다.
- 제74회 전국체전이 경북 포항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3일: 한총련 대표 정민주와 이혜정 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였다. 이들은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 의해 구속되었다.
• 10월 4일: 국방부는 국군 공병대대 188명을 앙골라 유엔평화유지활동에 파견하였다.
• 10월 5일
- 정치개혁시민연합은 창립대회에서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 부산 ~ 라진 간 정기 컨테이너 직항로가 개설되었다.
• 10월 12일: 한국경제신문사가 인터넷 신문서비스를 실시하였다.
• 10월 13일
- 해운항만청과 러시아 극동해운공사는 부산과 러시아를 잇는 정기 카페리항로의 연내 개설에 합의하였다.
- 한국 정부가 국제핵공급그룹에 가입하였다.
• 10월 15일: 동아일보사가 월간지 를 창간하였다.
• 10월 16일: 국회는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과의 늑약에 대한 일본의 정확한 역사인식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10월 18일: 민주자유당은 일반사면 대상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41개 범죄도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 10월 19일
-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의장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노태우 비자금 4천억원이 일부 분산된 채로 예치되었다는 주장을 폭로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 건설교통부는 2001년까지 전국 한나절 생활권화를 위한 기간교통망 계획을 마련했다.
- 정부는 1996학년도부터 전국 6대 도시를 상대로 초/중/고 신체검사 시 약물반응 검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한국자유총연맹은 '북한 인권개선 촉구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 한글재단이 세워졌다.
• 10월 21일: 대법원이 67년간의 서소문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동으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 10월 22일
- OB 베어스가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롯데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1995년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MVP는 김민호가 선정되었다.
-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검찰 수사에서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에 통치자금 일부를 관리했다고 진술했다.
- 국립부여박물관 발굴단이 충남 부여군 능산리 유적지에서 백제 창왕의 사리함을 발견하였다.
• 10월 23일: 김영삼 대통령이 UN 50주년 기념 정상회의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 10월 24일
- 충남 부여군에서 2인조 무장공비가 발견되어 1명은 생포, 1명은 사살되었다. 그러나 장진희 경사를 비롯한 경찰관 2명이 교전 도중 총에 맞아 순직하였다(부여 무장공비 침투사건).
- 삼성그룹이 '삼성언론재단'을 세웠다.
• 10월 25일: 한국과 라오스가 단교 20년만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0월 26일: '5.18 학살자 처벌법 제정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7일
- 노태우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5천억 원의 통치자금을 모금한 것에 대해 인정하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하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연히 국민들은 이런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1992년 14대 대선 당시 노태우로부터 비자금 20억 원을 받았다고 시인하여 '14대 대선자금 문제'가 수면에 떠올랐다.


❚1995년 11월
• 11월 1일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서울 대검청사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 교육부는 1997년 영어의 국교 정규교과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초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 11월 2일: 지존파 멤버 6명과 온보현 등 흉악범 19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 11월 4일
-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을 비롯한 국내 40여개 재벌그룹 총수들이 노태우 비자금 제공 혐의로 이날부터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었다.
- 국내 5대 자동차업체 노조를 주축으로 한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음악가 윤이상이 독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떴다.
• 11월 6일: 조선 중종 때 생존했던 정온의 시신이 경기 파주군 금촌읍 금릉리에서 미라로 발견되었다.
• 11월 7일
- 삼성항공이 F16 제트기 5대를 국내 최초로 조립 생산하였다.
-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세워졌다.
• 11월 11일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발족되었다.
- 데라우치 초대 조선총독이 수집한 김정희, 한호, 황희 등의 보물급 친필 135점이 국내에 반환되었다.
• 11월 15일: 수도권 전철 5호선 왕십리역 ~ 상일동역 구간이 개통되며 2기 지하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11월 16일
- 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 디지틀조선일보가 조선일보/스포츠조선 인터넷신문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11월 17일
- 국회는 음반사전심의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음비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 유조선 호남사파이어호가 전남 여천공단 부두에 침몰해 원유가 유출되었다.
• 11월 20일: 듀스 전 멤버 김성재가 솔로 데뷔공연 뒤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
• 11월 22일: 서울신문사가 인터넷신문 사이트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을 개설하였다.
• 11월 26일: 서울지검은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하였다.
• 11월 28일: 한국MS가 한글 윈도우 95를 정식 출시하였다.
• 11월 30일: 대검은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1995년 12월
• 12월 중: 국내 최초의 청소년 인권운동단체 '중고등학생복지회(이하 학복회)'가 PC통신 하이텔 내에서 만들어졌다.
• 12월 1일: 오리온카툰네트워크 산하 애니채널 투니버스가 정식 개국되었다.
• 12월 2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공 청산을 '정치탄압'이라 주장하며 김영삼 대통령을 공격한 뒤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고향인 합천군으로 내려갔다(골목선언).
- 벤처기업협회가 세워졌다.
• 12월 3일
- 검찰은 소환을 거부한 전두환 전 대한민국 대통령을 구속영장을 집행해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했다.
- 전노협이 5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해산하였다.
• 12월 4일: 민주당과 개혁신당이 통합을 선언하였다.
• 12월 5일: 민자당이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변경하였다.
• 12월 9일: LG상남언론재단이 세워졌다.
• 12월 1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 11개를 지하 수장고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 12월 12일: 가나기획이 광주지역 일간지 <광남일보>를 창간하였다.
• 12월 13일: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율곡사업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 12월 15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되었다.
• 12월 16일: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이 발족되었다.
• 12월 17일: 산악인 허영호가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 등정에 성공하였다.
• 12월 18일: 김영삼 대통령은 새 국무총리직에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을 임명하였다.
• 12월 19일: 국회는 '5.18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은 11개 부처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7명을 갈아치워 개각을 단행하였다.
• 12월 21일: 대법원은 노동쟁의 기간 중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유효하다고 판결하였다.
• 12월 22일: '전국민주화학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25일: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의사가 세상을 떴다.
• 12월 31일: 수인선 협궤열차가 고별운행을 하고 영업중지했다. 이후 전철로 부활하기까지 19년을 기다려야 했다.


* 출처 : 나무위키,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