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경식과 요셉의원 이야기

3. 환자들이 쉽게,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도록

'요셉의원 개설추진모임'을 결성하다.

  1986년 여름,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하 난협)의 김혜경, 신림동 <사랑의집>의 이경하, 성남 <만남의집>의 정옥희 수녀, 성남 <메리놀공동체>의 최영호, 선우경식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난협은 김혜경(당시 가톨릭서울대교구 산업사목위원회, 현 노동사목위원회 소속)의 주도로 신림동 난곡지역에 설립된 조합으로, 1986년 4월 총회에서 조합원을 위한 병원 설립을 합의했다. 병원 설립 계획에 신림동 <사랑의집>, 성남 <만남의집>, 성남 <메리놀공동체>가 뜻을 함게 했다. 이를 위해 모인 활동가들은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에는 병원 업무에 대한 실질적 이해가 있고 의료진을 이끌 수 있는 전문가 필요하다고 보고 당시 방지거병원에서 진료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신림동 <사랑의집> 주말진료에 참여하고 있던 선우경식을 모임에 초대한 것이었다.  

  병원 이름은 자선병원으로 이해하기 쉽게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성가정의 수호자이며 임종하는 이와 노동자들의 수호자인 요셉의 이름을 붙여 '요셉의원'으로 정하였다. 모임 구성원들의 요청에 따라 선우경식이 요셉의원의 상근 원장직을 맡기로 했다. 이들은 '요셉의원 개설추진모임'을 결성해 요셉의원 정관, 건립 자금 모금, 운영 예산, 개원일자 등을 논의했다.

  조합이 주체가 되어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은 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부설의료기관으로 승인받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여기에는 당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지지와 도움이 컸다. 

 
요셉의원 개설 안내문
 
요셉의원 개설 안내문


 
신림동에서 개원 준비를 하다.

  1987년 5월, 병원을 열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냈다. 신림동 관악종합시장 수퍼마켓 건물 2층으로 낡고 허름한 공간이었지만 금액과 위치가 적당했다. 선우경식은 패널로 초대받은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
환자들이 어려운 일을 하기 때문에 좋은 병원에 가게 되면 상당히 위축되죠. 환자들이 편리하게 찾아올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고... 쉽게, 자유롭게 찾을 수 있도록 시장을 택했습니다."
(1995년 평화방송 <사랑이 머무는 곳에>)
 
 
관악종합시장 수퍼마켓. 요셉의원 개원을 위해 건물 2층이 내부 수리 중에 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관악종합시장 수퍼마켓 건물


  병원 건립을 위한 자금으로 난협 조합원 기금 500만원, 김수환 추기경의 희사금, 호주 사업가의 기탁금을 비롯해 각 지역 천주교회, 수도회, 교구단체, 개인 등이 보내온 금액을 합쳐 총 1억 866만원이 모금되었다. 진료실, 검사실, 입원실, 약제실, 방사선실 등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부수리가 필요했다. 업체에 맡기면 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선우원장의 부친 선우영원 옹과 봉사자들이 3개월간 직접 수리했다. 환자 진료를 위한 검사도구와 의료장비는 강남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강릉 갈바리병원, 대구 파티마병원 등에서 기증받기도 했다.   

  진료는 선우원장이 내과를 담당하고 자원봉사 의료진이 요일별로 소아과, 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정신과, 치과 등을 나눠 담당하기로 했다.    


 
내부 수리 중인 신림동 요셉의원
 
 
내부 수리 중인 신림동 요셉의원
 
 
소식지 <요셉의원> 창간호에 실린 선우경식 원장의 기고문과 개원 당시 협력상황(우측 하단)


 
1987년 요셉의원 문을 열다.

   8월 29일,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관악종합시장 수퍼마켓 옥상에서 강우일 주교와 가톨릭중앙의료원 원장 김대군 신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회장 최선웅 신부의 공동집전으로 개원미사가 거행되었다. 강론에서 강 주교는 "비록 작은 규모에 최소한의 의료장비만 갖춘 작은 의원이지만 수천 평 규모의 대형 종합병원보다 오히려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요셉의원 개원식 초대장(표지)
 
요셉의원 개원식 초대장(내지)
 
개원 미사를 집전하는 강우일 주교, 김대군 신부(맨 왼쪽), 최선웅 신부
 
 
개원식 날, 신림동 요셉의원 입구
 
   
그러나 바로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료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개원미사 후 두 달 여가 지난 11월 11일에야 첫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 

 
 
선우경식 원장(왼쪽)과 산부인과 봉사의 이진우 선생, 수술실에서
 
치과 유닛 체어
 
1987년 11월 11일, 요셉의원 첫 환자 진료


  '원장실을 별도로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작은 방 하나가 필요에 따라 원장실도 되다가 진료실로도 쓰였다. 진료실이 모자랄 때에는 아예 원장실을 다른 의사에게 내어주고, 그 시간에 원장은 병원을 둘러보거나 환자들의 애로사항이나 질환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장면이 매일 반복되었다.
  각 과별로 진료실을 따로 둘 수 없는 상황이어서 1진료실, 2진료실 표찰을 붙여 놓고 내과 의사가 진료할 때에는 내과 진료실이 되고, 외과 의사가 진료할 때에는 외과 진료실로 쓰이며 방 하나가 두세 개의 용도로 활용되곤 했다.'
                                                                                                                                     «요셉의원 30년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