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현장
아르코미술관 특별전 리뷰: 주름은 결국 아카이브로 지나간다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4.02.13  | 최종수정일 2024.02.14

 
아카이브 현장은 아카이브와 아카이브 활용사례를 소개하거나
아키비스트를 인터뷰하는 콘텐츠입니다.
아카이브 문화를 여러분이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읽어줍니다.


아르코미술관 50주년기념 특별전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
 


아르코미술관 특별전 리뷰:
주름은 결국 아카이브로 지나간다


<주름이 어디로 지나가는가>  전시는 1974년에 미술회관으로 시작하였던 아르코미술관의 개관 5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전시입니다. 아르코미술관은 보통 미술관 전시구성위원회에서 작가를 선정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역대 운영자문위원과 내·외부 학예사에게 ‘아르코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작가’에 대한 의견을 모아 작가들을 초청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초청된 작가들을 대상으로 같이 교류하고 싶은 다른 세대의 후배들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직접 대면한 적 없는 작가부터 선후배로 알고 지냈으나 작업을 같이 한 적은 없던 작가, 사는 지역이 다른 작가 등 각기 다른 관계성을 지닌 9개의 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후배 작가 중 80% 이상이 처음 아르코미술관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미술관-작가, 선배-후배의 교류를 통해 전에 없었던 새로운 네트워크, 접점으로서 ‘주름’을 형성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만들어진 교류 네트워크는 아르코미술관이 추구하는 교류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공간의 흐름, 아카이브와 전시의 결합

 
특별전 포스터(사진출처:아르코미술관)


전시 공간은 크게 본관 전시와 아카이브 섹션으로 나뉘어 있으며, 본관 전시는 1층 제1전시실과 2층 제2전시실을 사용하여 전시 공간을 꾸몄습니다. 제1전시실에는 5개 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비디오, 빔 프로젝션 스테레오 사운드 등의 멀티미디어 전시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2층 제2전시실은 3개 팀과 작고 작가 3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캔버스와 콜라주, 오브제가 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2전시실을 나서면 아르코미술관에서 현재 운영 중인 아카이브를 마주하게 되는데, 아르코미술관에서 수집해 온 방대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실을 지나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공간열림에 마련된 아카이브 섹션이 있으며 1개 팀의 작품과 아르코미술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비치되어 있는 아카이브 자료들은 미술관 전시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미술회관으로 시작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아르코미술관이 되기까지, 분산되어 있던 아카이브 사업들이 통합 관리되며 미술관의 정체성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지요. 

전시 공간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공간의 여백이었습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여백이 커서 공간을 넓게 사용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시를 관람할 때 여유롭게 작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다음으로 전시 작품의 표현 방식이 다양했는데요. 캔버스와 조각부터 AI를 활용한 멀티미디어와 복합미디어 전시까지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현대미술의 트렌드와 변화를 반영했습니다. 

 
1층 제1전시실 전경(사진출처:아르코미술관)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개관 50주년을 맞이한 아르코미술관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카이브”가 등장하였고 아카이브에 전시가 결합하여 기념전시로서의 본질이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기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근간이 되는 아카이브와 전시가 결합하며 아르코미술관의 역사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던 이들의 접촉과 접점: 주름


아르코미술관은 예술인들과의 접점을 계속 만들어오며 50년간 대한민국의 미술사에 깊은 주름(흔적)을 남겨왔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있었고 작품의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현대미술도 시각예술 중심에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개관 이래부터 미술관 운영 방식과 프로그램의 변화 등, 아르코미술관의 역사적 맥락을 아카이브로 수집한 것도 주름의 결과물입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를 시작으로 이번 특별전이 구성되었습니다. 전시의 이름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을 곱씹으며 전시를 관람하면, 크고 작은 주름은 결국 아카이브로 지나갑니다. 미술관의 비전인 ‘교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아카이브가 지속해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미술관은 50년의 역사를 지닌 채 오늘날에 이르렀고 현재는 ‘국내 대표적 공공미술관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실험적 예술 활동을 지지하며,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예술 활동을 통해 소통함으로써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 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리플렛 문장 일부 발췌)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던 작가들이 접촉하는 순간, 작은 주름이 만들어집니다. 두 명 혹은 세 명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일 주제를 여러 형태의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작은 주름들이 모여서 맥락을 이루고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구축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작가를 초청하고, 접점을 만들어가며 교류하고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여러 모양으로 나타내는 일련의 전시 과정들은 아카이브에서 구성원들이 기록물을 수집하고, 자료의 맥락을 이해하며 분류하고 아카이브에 저장하는 과정과 닮아있습니다. 제2전시실의 고 김차섭 작가의 세션에서는 전시 작품과 별개로 작가의 작품노트가 복본으로 제공되어 있어서 관람객이 직접 펼쳐볼 수 있습니다. 작품노트 속에는 작가가 적은 낙서부터 짧은 글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작품노트 중 전시된 작품과 연관된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표기하여 관람객이 쉽게 작품과 노트를 비교하며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듯한 체험이 가능합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계지도를 남북 거꾸로 돌려놓은 것은 신성한 태양이 모르는 동쪽을 위로 돌려 놓기 위함이다’ 라는 글과 <휴전선과 삼팔선> 작품을 한눈에 담으면서  작가와 관람객도 접촉하여 주름을 만들어갑니다.
 
고 김차섭 작가의 작품노트와 <휴전선과 삼팔선>


제2전시실을 빠져나오면 자연스럽게 아르코미술관에서 현재 운영 중인 아카이브를 마주하게 됩니다. 전시 공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한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를 잘 접하지 못했던 관람객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아카이브와 관람객,  관람객과 미술관의 접점, 곧 주름이 됩니다. 아카이브에는 아르코 미술관이 수집해 온 문서, 사진, 포스터, 작가의 작품, 굿즈(MD)까지 크고 작은 주름의 매개체와 결과물들이 모여있습니다. 아카이브로 시작하여 아카이브로 끝맺는 이 거대한 맥락은 아르코미술관이 공공미술관으로서 50년간 지켜온 예술의 공공성, 역사성을 극대화합니다.
 
아르코미술관 아카이브실 앞 서고(직접 촬영)
 


| 맺으며


공공미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아르코미술관이 아카이브실을 운영하며, 전시에 아카이브를 차용한 점은 미술관이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아르코미술관의 50년 역사 속에서 생산되었던 기록물을 아카이브로 잘 구축하여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훌륭하게 표명한 것입니다.
아카이브 섹션이 참고자료 처럼 전시 말미에만 등장하여 아쉽습니다. 제2전시실에 위치한 고 김차섭 작가 작품의 경우 작가의 작품노트를 복본으로 구현하여 작가 머리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전시 세션에서도 작가들 간 새로운 교류의 장을 만들었던 과정이나, 작가들의 교류, 작품 구성과 설치 과정에서의 맥락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록물들이 작품 옆에 함께 표현되었다면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중들이 좀 더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카이브와 전시의 결합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운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