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2주기

코로나가 끝나면 원하는 모두에게 술을 사겠다

2023년 4월 28일(금),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에서 있었던 故이채관 선생 2주기 추모식. 그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1. 아카이브한 사진 일부 영상 전시


본행사 시작 전, 그동안 수집된 사진 중 일부로 제작한 이채관 선생의 영상을 보며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했습니다. 문화판에서 항상 그 자리를 빛내던 이채관의 모습들이 잊혀져가는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그때 그와 함께했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고 이채관을 영상으로 만나본 시간



 

2. 공연1: 동료의 추모공연


송준민대표는 작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올해도 춤을 준비했습니다. 멋진 공연을 위해 사전 공간답사에 무대 리허설까지 열심히 연습해 솔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갖고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힘듦과 절망, 무력감이 주는 감정의 과정과 결과를 모두 긍정하며
지금 내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해보자. ‘도망가자.’


 

제이콥스플래닝앤디자인 송준민 대표



 

3. 토크: 이채관 어디까지 아니?


 

1) 故이채관과 나, '톨스토이학교 교사 워크숍'을 중심으로


이채관 선생은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톨스토이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톨스토이를 좋아했으니 톨스토이를 이해하면 어쩌면 이채관이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고영직 선생의 톨스토이학교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안성 너리굴에서 진행된 <톨스토이학교>에서 처음 만났던 이채관 선생. 톨스토이학교 주임교수인 레미조프 교수를 비롯 몇 분을 이채관 대표가 운영하는 시월에서 초대하고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한 워크숍이었다. 국내 초등교사, 예술교육자들과 2박3일간 진행된 매우 훌륭한 예술교육 워크숍이었다. 당시 이채관 선생과 인사 정도 나눈 사이였고, 특별한 교류는 없었지만, 그 워크숍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이채관 선생은 문화의 힘을 신뢰했고, 예술적 상상력의 개입과 실천을 중시하는 기획자였다. 무엇보다 '사람'을 신뢰하는 기획자이길 바랐던 것 같다. 3년 전인가, 장사는 안되겠지만 톨스토이학교 같은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럽시다!" 고 약속했는데 기약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2) 밥은 묵었나?


다사리문화기획학교 멘티로 만나 이후 바이소셜 등 프로젝트를 함께한 제자 양다연이 자신이 실패할 수 있도록 지켜봐준 채관쌤의 이야기와 본인에게 남겨진 의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채관쌤은 저와 사업기간동안 1주일에 한번씩 만나곤 했는데요, 회의 시간은 고작 20-30분이었고, 채관쌤은 제가 괜찮을까요?, 이래도 괜찮을까요? 라고 불안해 하면 큰 줄기에 대해서만 짤막한 피드백을 하신 후, <됐다. 밥이나 묵자.> 며 밥을 사주시곤,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별다른 말없이 함께 햇빛을 쬐다가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라고 해봤자. 재밌나? 재밌으면 됐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채관쌤은 그렇게 실패를 무서워하는 제가 이번만큼은 끝까지 실패할 수 있도록 아무 말씀도 안하셨습니다. 그저 제가 끝까지 실패할 수 있게 지켜봐주셨습니다.
...(중략)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텐데 그걸 다 참고 정말 다 책임을 지셨다는게요. 제가 그렇게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채관쌤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여느때와 같이 밥과 커피를 사주면서 또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해볼 생각이 없냐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채관쌤에게 말했죠. 제가 보고서를 엉망으로 써버린 거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채관이 한 말은 고작 선배는 후배들이 잘 놀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라고, 그게 선배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사람이 어떻게 대책없이 다른 사람을 믿어줄 수 있는 걸까요?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론적인 믿음이라는 거.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갑니다. 망해도 괜찮다. 망쳐버려도 괜찮다. 이채관이 내뱉어 버린 그런 말들은 어쩌면 제가 평생 기다려온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이렇게 이채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따지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무 말없이 그렇게 의문만 남기고 가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채관이 남기고 가버렸을 의문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 제자 양다연




한 분씩 이채관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토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4. 이채관의 책 선물


짧지만 이채관 선생이 직접 쓴 글이 수록되어있는 '안티 젠트리피케이션(신현방 엮음)' 과 '도시기획자들(글 은유)' 을 추첨을 통해 총 10분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안티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서는 '영욕의 도시, 홍대 앞: 지킬 것인가, 불태울 것인가' 를 주제로 홍대 앞의 변화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기획자들에는 이채관 선생이 생각하는 문화기획자와, 절망을 끊임없이 희망으로 바꿔내야했던 내용의 글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선물추첨하는 강구야



 

5. 공연2: 초청공연


고구려밴드는 국악과 락을 결합한 아리락의 창시자로 올해 17년차를 맞이하였습니다. 한국적인 서정적 정서가 풍부한 곡들로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하죠, 추모의 의미를 담은 '가랑비 세우야' 로 시작해 이채관 선생이 생전 좋아하시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로 분위기에 취하게 한 뒤 정선아라리가 녹아있는 '아우라지뱃사공' 으로 피날레를 장식하였습니다.
 

가랑비 세우야 우지 마라
오시는 내님, 가람에 슬피 운다 우~~

 - 고구려밴드, 가랑비 세우야 中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주고 눈물주고 꿈도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곳에

 - 김추자, 님은 먼곳에 中


 

우리 집에 서방님이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 다리 곰배팔이 노가지 나무 지게 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니 팔자냐 내 팔자냐 네모 반듯 왕골 방에 샛별같은
놋요강 발치만큼 던져놓고 원앙금침 잔 벼게에 앵두 같은 너를 안고

 - 고구려밴드, 아우라지 뱃사공 中


 

고구려밴드 리드보컬 이길영



 

고구려밴드 드럼 이종훈



이 분위기 그대로 체부동 잔치집으로 옮겨 막걸리를 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날의 회포는 2차, 3차까지 밤새 이어졌다고합니다... 그래서 가장 궁금하셨을, 술은 누가 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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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관쌤을 대신하여 아들인 성민군이 사셨습니다. 고맙습니다!!
 

Yeah~!!!


 

  • 주최/주관: 문화연구 시월
  • 공동기획: 최정한, 이영범, 강원재, 손동유, 양인정
  • 스태프: 김영훈(사진촬영), 정종미(행사보조)
  • 고마운분들(가나다순): 강병인(포스터글씨), 고영직(토크), 김규원(포스터그림), 김세종(홍보), 김승민(장구대여), 송준민(공연), 양다연(토크), 양현미(후원), 이길영(공연), 이성민(후원), 이유미(후원), 이종훈(공연), 이채윤(후원), 이현진(후원), 홍기원(후원), 기타 이채관이 보고싶어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