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리홍 작가의 신문 기고 글

초목의 탄식을 들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자오리홍(赵丽红
 
병무년 여름에 한국제주도의 한국노인이 상해로 와 만자자고 했다. 노인의 이름은 성범영, 스스로 한국의 농부라고 소개했다.
성범영의 이름은 인터넷에 가득 올라있다. 그는 한국 제주도 분재원인 '생각하는 정원'의 주인으로서 세계적인 전기인물이다. 60연대에 벌써 서울에서 성공한 기업인이었지만 사업을 놓아버리고 집을 떠나 혼자서 황량한 제주도로 왔다. 그는 몇 십 무의 땅을 샀는데 이 땅은 돌멩이와 잡초투성이었다. 그는 천막집을 짓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을 옮기고 풀을 제거하고 묘목을 옮기었다. 현대인들은 개척초기 그가 겪었던 고난에 대해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는 원시사회 야만인처럼 풍찬노숙을 했다. 서울의 한 친구는 제주도로 그를 보러 왔다가 그가 정신병에 걸린 줄로 오해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와 그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아내는 그를 이해했으므로 그가 꿈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영의 꿈은 황무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그를 이해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뒤에서 힘이 되어주었다. 그는 제주도로 와서 남편의 옷을 세탁하고 밥을 지으면서 뒷바라지를 했으며 남편과 함께 돌을 캐고 옮기었다. '생각하는 정원'의 구석구석에는 그들 부부의 땀방울이 스며있다.
성범영은 끝내 꿈을 실현했다. 수십 년의 고심한 경영 끝에 비할 바 없이 미묘한 분재화원을 만들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희귀한 돌과 나무들을 수집해 그의 정원에 정성들여 재배하고 교묘하게 배치했다. 옛날의 황폐한 들은 어디로 가고 천하에 둘도 없는 정원이 되었다.
여름밤에 나는 성범영과 함께 상해 서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제주도 사람들이 입는 흙빛의 누런 베천으로 지은 농부차림을 하였는데 풍상고초를 겪은 얼굴과 순박한 웃음, 소박하고 간단한 모습이 잘 어울렸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옛사람들의 격언을 떠올렸다. “큰 지혜는 큰 어리석음에서 나오고 뛰어난 솜씨는 우직한 마음에서 나오며 뛰어난 언변은 어눌함에서 나온다." 그는 나에게 그의 저작 생각하는 정원을 주었다.
생각하는 정원을 읽으면서 성범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 분재예술원의 테마는 '평화'. 세상의 시끄러운 풍파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꿈이 피어나는 고요와 사색의 정원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돌과 물이라는 자연의 짝꿍들이 모인 분재예술원은 사람을 위한 장소다. 그러므로 우리 분재예술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행복을 주기를 바란다."라고 쓰고 있다. 이는 그의 분재예술원의 건립이념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세계 만물은 모두 생명이 있고 화초수목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감각이 있고 좋고 나쁨을 가릴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이 잘 대해주면 만목이 너도나도 잘 자란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움직이고 가지가 설레는 것은 나무의 탄식이다. 성범영은 분재원에서 조용히 거닐며 귀를 기울이면 나무들의 희로애락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수십 년간 나무를 가까이하면서 화초를 연구한 경력은 성범영으로 하여금 진정한 전문가가 되게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나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곤 한다. 그는 차에 앉아 베이징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길가의 가로수 배치가 적당하지 않더라고 했다. 나무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햇빛을 가리기 때문에 나무들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천안문광장에서 그는 나무에 채색등이 걸려 밤을 밝히는 것을 보고 몹시 우려했다. 이렇게 되면 나무들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온 밤 불빛을 보면 잠들기 어려운 것처럼 나무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2개월 후 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나는 성범영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제주도로 갔다. 성범영은 여전히 베천의 농부차림을 했다. 그는 나를 안내해 화산암으로 형성된 바닷가의 기이한 풍경을 구경시켜주었다. 함께 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성범영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읽을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전시돼있었는데 그 중에는 중국지도자와 찍은 그의 사진도 있었다.
해질 무렵, 나는 그의 분재예술원을 방문했다. 정원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철 빛의 돌로 높이 쌓은 담장에 매료되었다. 성범영은 이 돌 하나하나는 모두 그가 개척초기 황막한 들에서 주어낸 돌이며 이것을 담장건축의 재료로 사용했다고 했다. 돌들은 표면에 구멍들이 가득 뚫려 있었는데 검붉은 색이었다. 정원의 높은 담장은 거칠면서도 정교하여 아마도 세상에 유일무이한 화원담장이 아닐까싶다. 이는 창업개척자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성범영은 나를 '생각하는 정원' 문으로 안내했고 아들 성주엽이 정원으로 인도했다. 성주엽은 '생각하는 정원'의 황색작업복을 입었는데 우아한 젊은이었다. 정원 내의 완곡하게 곡선을 그은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분재마다 걸음을 멈추고 특점을 설명했다. 화분에 담긴 분재는 키가 두자 남짓했지만 형태는 하늘을 찌르는 거목처럼 창연했고 수 천 년 동안 천지의 정화를 응집한 고목인 듯 숙연했다. 형태가 기괴하고 색채가 다양한 돌들이 분재들 사이에 우뚝 솟아 십만 기봉의 화신이 축소돼 있는 듯 기품이 있었다. 분재에 우주가 담겨있고 손바닥에 천지가 담겨있다는 말이 있다. 이 분재들이 그런 듯싶다. 이 분재들은 모두 성범영이 정성들여 만들어낸 것이다. 머리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모두가 풍경이지만 걸음마다 풍경은 달랐고 똑같은 풍경이 중복되는 일은 없었다. 가지가 완연하게 휘어든 오래된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자태가 우아한 고인이 길옆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하다.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는 농밀한 녹음을 이루고 섰다. 정원의 맑은 못에 벼랑 턱의 기이한 나무와 하늘의 구름이 비껴있고 그 사이로 아롱다롱 색깔이 예쁜 잉어들이 노닌다...
 
한 분재의 앞에서 성주엽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직이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뭘 보셨나요?"
화분에는 잎사귀가 한 잎도 없는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굵지도 않은 가지에 커다란 귤빛 과일이 달려있었다. 귤같기도 하고 오렌지같기도 하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정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성주엽은 웃으면서 나를 대신해 대답했다. "가을을 보셔야지요. 이 나무에는 가을이 남아있답니다."
성주엽의 시와도 같은 대답이 이 정원에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정원 자체가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이기 때문이다. 성주엽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어린시절을 서울과 제주도 사이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방학이 되면 제주도에 왔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번화한 도시를 떠나 왜 이처럼 황막한 곳에 와있는지 몰랐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창업과정을 바라보면서 점차 성범영이 직접 두 손으로 이뤄내는 정원의 윤곽에 매력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는 제주도에 와 '생각하는 정원'의 관리를 맡고 아버지의 유능한 조수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관점에 동의했다. 천지의 생물은 모두 평등하다. 사람과 동물 또는 대지의 일초일목은 모두가 마음과 영을 주고받는 친밀한 친구여야 한다. 성주엽은 분재와 괴석을 바라보았다. 철학가와 같은 표정이 그의 양미간에 어렸다. 이는 성범영의 표정과 너무 흡사했다. "저는 경이로운 풍경을 창조해 보이고 싶습니다."
 
 맛있는 식사는 그의 아내가 직접 해서 올렸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청초한 용모를 가진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성격이 명랑하였고 '생각하는 정원'의 황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생각하는 정원'을 떠날 때에 성범영의 가족은 키 높은 돌담 앞에 나와 나에게 손을 저었다. 미묘한 정원, 꾸준한 원예사, 잊을 수 없는 성씨네 가족, 초목이 탄식하는 정원에 깊이 어려 있는 생각,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며 깊은 곳으로부터 이 글의 구절구절을 떠올려주었다.
귀국 후 나는 '생각하는 정원 예찬'을 썼다. 지금 이 글의 마지막 두 단락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이곳은 워낙 돌멩이가 가득 박힌 황막한 땅이었다. 이곳에 정원을 일궈온 성범영 씨는 황폐한 땅에 꿈을 심고자 풍찬노숙을 하면서 수백 번 구상하고 수십 년간 심혈을 기울여 왔다. 천하의 기암괴수를 모아놓고 세상의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옮겨 심고 열심히 보살피고 자식 키우듯이 정을 쏟아 키워냈다. 주인은 나무와 함께 좋은 친구가 되어 연인마냥, 가족마냥 정을 나누었다. 진심을 쏟아 부었더니 하늘이 메아리로 화답했다. 나무는 영이 있고 야생초는 본성이 있고 돌은 혼이 있다. 꽃 한 가지, 나무 한 그루에도 우주가 담겨져 있어 춘하추동이 흘러가며 아름다운 풍경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황혼이 내리자 저녁놀은 붉은 색에서 자주 빛으로 물들었다. '생각하는 정원'의 분재와 꽃나무는 점차 고요와 어둠속에 녹아버려 형용할 수 없는 신비 속으로 잦아들었다. 우리는 정원의 조용하고 널찍한 로비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요화제는 '생각하는 정원'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하는 정원'은 아직도 확장공사 중이며 이미 이웃의 땅을 샀다고 했다. 내가 확장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다 만든 다음 와서 보시면 아시지 않겠습니까? " '생각하는 정원'에 들어서면 사색에 심취하게 되니 생각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 생각하며 얻는 것은 인생의 정도이리라. 세상변화의 참뜻과 창업의 간고함, 아름다운 꿈이 현실로 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천지에는 삼라만상이 서로 어울려서 산다. 태어나면서부터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 주고받아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고하고 인생의 참뜻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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