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歷史)와 사회(社會)> 교과서

성범영 원장의 이야기가 실린
중국 9학년 <역사(歷史)와 사회(社會)> 교과서의 표지와 내용
[의무교육 교재·중국 인민교육출판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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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으로 본 문화의 힘
 
한반도에서 한국의 국토면적은 약 10만 평방킬로미터이며, 1945년 당시 인구는 1600만 명이었다. 자연 자원이 부족 하여 원유와 석탄 등을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일본 식민지 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국 경제는 상당히 어려웠고,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20세기 60년대부터 한국은 불과 20여년 만에 단숨에 일본의 뒤를 잇 는 동아시아 제2의 공업국가가 되었으니,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에 있어 문화는 종합국력 발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국인은 교육을 숭상하여, 이를 국가발전 의 기본 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해 한국의 문맹률은 최고 78%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노력 끝 에 문맹률은 19584%로 내려갔다. 교육투자에서 1984년 한국의 교육비는 정부 전체 재정지출의 13.3%를 차지했고, 1993년에는 22.3%에 이르러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훨씬 뛰어넘어 선두를 차지했다. 한국은 국민교육에서 특히 민족정신 선양을 중시한다. 성범영의 업적은 한국 민족정신 배양의 모범이다.
 
성범영은 예전에 서울의 한 셔츠회사의 사장이었다. 1963년 그는 처음으로 제주도에 발을 디뎠다. 일본 식민통치의 약탈과 착취가 남 긴 황량한 민둥산을 바라보며 그는 도시 생활을 버리고 제주도를 개간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돌이 많고 흙이 적다. 물 도 전기도 없는 초라한 거주 여건 하에서 성범영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었다. 20여 년 동안 그는 모두 15만 톤의 돌과 흙을 운반했다. 나날이 다달이,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면서 1992년 마침내 전체 면적 3만여 평방미터의 정원을 열었다.
 
문화 또는 문화 역량은 종합적인 국력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넓은 의미의 문화는 과학기술, 국민교육, 문화사업, 인간의 관념의식, 도덕규범, 문화전통, 민족정신 등을 포함한다.
 
성범영은 일개 농부의 역량으로 오랜 생명의 시간을 들여 분재원-생각하는 정원을 조성했다. 그의 다년간의 시간을 소비해 분재원-정원을 만들었다. 그가 분투노력하던 역정은 공교롭게도 한강의 기적과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성범영이 라는 이름은 한국인의 개척진취(開拓進取: 개척정신과 진취력)’, ‘견인불발(堅忍不拔: 굳센 신념과 완강한 의지력, 끈 기)’, ‘자강불식(自强不息: 자주의식과 근면성, 쉼 없는 자강력)’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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