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레전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신아람의 명예를 과연 누가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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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레전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신아람의 명예를 과연 누가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요"
글=정태화 선임기자 cth0826@naver.com 사진=윤관식기자 news@sphk.co.kr

‘체육 대통령’ ‘세계 스포츠계 2인자’. 한때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을 말할 때면 항상 따라붙던 수식어다. 지금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야인으로 돌아갔지만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하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투, 그리고 상대의 내심을 뚫어보는 듯한 안광은 가끔씩 취재기자의 가슴을 찔 끔하게 만들었다. 1시간 30분 이상 인터뷰를 하면서도 정확한 날짜에 상대의 이름까지 막힘이 없고 조금 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는 82세라는 고령의 나이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김 전 부위원장과는 선배 체육기자들과 함께 몇 차례 식사(인터뷰 전날에도 점심으로 냉면을 같이 먹었 다)를 한적은 있지만 인터뷰를 위해 단 둘이 만난 것은 근 20년 만이었다. 이 때가 김 전 부위원장이 대한 체육회장과 IOC 부위원장, IOC 집행위원을 겸하며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세계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이날 인터뷰는 8월 10일 오후 2시 50분 서울 여의도 63빌딩 옆에 있는 라이프오피스텔 김운용닷컴 사무 실에서 이루어졌다. 김 전 부위원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의 ‘신아람 눈물의 1초’에 대한 오심 문제였 다. ▲ 신아람이 1초 오심으로 메달을 놓쳤을 때 많은 체육인들이 김 전 부위원장이 IOC에 계셨다면 이런 일 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 언론에서 그렇게 쓴 것을 봤습니다. 내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연맹에서 주는 표창장, 기념 메달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게 올림픽 메달과 비교가 될 수 있습니까? 아마도 그녀가 우는 모습은 영원히 우리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KOC(대한올림픽위원회)도 나름대로 애를 쓴 것 같지만 뒷북치고 허둥지둥 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KOC가 IOC에 추가 은메달 수여 요청을 했다고 해서 몇몇 IOC 집행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어 려울 것이라고 듣던 참에 IOC의 거절 발표가 나왔더군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도 2억원 만 들어가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다고 했는데 당연히 제소해야지요. 당장 현장에서 경기를 포 기하더라도 제소를 하고 번복을 시켜야지요. 3,4위전에 나가 패하고 난 뒤 국제연맹의 설명을 받아 들이 고 특별상 수여라는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뒤에 신아람 선수가 단체전에 서 은메달을 딴 것으로 상쇄하려는 것 같은데 두 가지 사안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선수의 진정한 명예회복은 누가 시켜줍니까? 이제 신아람 선수가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은 올림픽에 재도전해서 금메달을 따내는 길밖에 없습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심판이 우리 선수에게 경고를 2번 줘서 패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내려 치면서 “저 심판, 당장 퇴출시켜”라고 한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에 IOC 위원은 어디 있고 체육회장은 어느 나라 체육회장이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김 전 부위원장에게 질문할 요지를 꽤 많이 만들어 갔지만 다른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마치 질문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특유의 달변은 계속됐다. “아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피겨스케이팅 페어경기에서 러시아가 선수단을 철수시키겠 다고 해서 러시아와 캐나다 선수에게는 공동 금메달을 주고 쇼트트랙의 김동성 선수가 억울한 실격을 당 하는 바람에 미국의 오노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지금과 비교하는 것 같은데 내용이 전 혀 틀립니다. 뒤에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러시아의 선수단 철수 운운하는 바람에 공동 금메달을 수여해 처리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동성 선수는 진로방해를 한 동영상을 현장에서 대형 화면에 몇 차례나 틀었습니다. 이것을 우리 언론들이 편한 대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선수단을 철수하겠다고 했지만 로게 위원장이 나 국제빙상경기연맹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도 어떻게 할 명분과 권한이 없었습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런던올림픽에서 예년 올림픽과 달리 오심과 판정번복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열 었다. 
“예년 올림픽에는 이번 런던올림픽처럼 판정 불복, 항의 그리고 번복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약물복용 으로 실격은 있어도 경기장에서 내린 판정은 나중에 뒷 교실에서 바꾸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디오 등 첨단기기가 판정에 활용되고 있는 것도 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예전보 다 올림픽에서 국가나 국민들의 압력이 커진 것이 더 큰 원인입니다. 지금 올림픽은 돈 없는 나라는 개최도 못하고 메달을 따기도 어렵습니다. 국가와 기업체가 모두 투자를 합 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국가에서 연간 체육회에 1,000억 이상을 투자합니다. 만약 태릉선수촌이 없다 면 어떤 기업체가 선수를 양성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긴장 속에서 코치들이 선 수들을 훈련시키고 정부의 압력이 증대됐기 때문에 자신들이 메달을 탈취당했다고 생각하는 데서 불복, 항의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IOC로 봐서는 자크 로게 위원장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면서 레임덕이 돼 지도력이 쇠퇴한데다 평온하 게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하는 것이나 IOC 집행위원들의 권한이 약화된 것도 원인이기도 합니다.” 김 전 부위원장이 잠시 목을 축이려 물을 마시는 사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 한때 사마란치 위원장의 최측근이셨는데 사마란치 위원장과 지금의 자크 로게 위원장을 비교하시면 어 떻습니까? = 사마란치와는 30년을 지기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사마란치는 올림픽 운동을 중흥시키고 재정파탄으로 빈사직전인 IOC를 살려내며 황금시대를 열었지만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2001년 IOC 위원장에 도 전했을 때 백인우월주의에 빠졌는지 객관성을 상실한 채 내가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즉흥적으로 규정 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위원들에게 활동비를 줄 계획이라고 한 것을 위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5만달러를 주겠다고 말 한 것처럼 만들어 윤리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반면 자크 로게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면서 직 접 선거운동을 해 주었고 유럽연맹은 로게에게 50만달러를 지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 바람에 결국 선거 에 지고 말았지요. 이처럼 나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됐지만 사마란치는 올림픽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올림픽에 보이 콧을 없애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비밀 사교클럽 같은 IOC를 공개하고 개혁을 추진했으 며 각 나라 수반과도 대등하게 외교와 정치교섭을 했습니다. IOC에 한 명도 없던 여성 위원을 11명으로 늘이고 모든 종목에 여성 종목을 있게 하고 올림픽 참가 여자 선수 비율도 거의 50% 수준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특히 사마란치는 친한파로 서울올림픽을 보이콧 없이 성공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30회 이상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의 대변자처럼 한국을 보호했습니 다. 아마 사마란치가 없었다면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은 아무리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도 불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게는 사마란치와 너무 다릅니다. 측근은 몇 명이 있지만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청소년올림픽을 만들었는데 스포츠라기보다는 문화, 교육, 친목 행사 참가 등 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IOC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나 사람 관리에서도 사마란치에 훨씬 뒤집니다. 입에 발린 말만 믿다가는 냉엄한 사고를 가진 로게에게 이용만 당할 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는 서양식 이 중인격자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최근 IOC 지인들에 의하면 로게는 이미 레임덕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히 “서울올림픽을 가장 위대한 올림픽, 보이콧 없는 올림픽으로 한국과 함께 성공시킨 것은 사마란치이지 로게가 아니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그럼 후임 위원장 후보는 누구인가요? = 지금 세 사람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부위원장인 독일의 토마스 바흐와 싱가포르의 세르미앙 능,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의 리쳐드 캐리온이 새로운 위원장 후보입니다. 바흐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이고 캐리온은 사마란치 위원장의 사위입니다. 능은 나하고도 친한 사이인데 지금은 로게의 측근이 되었지요. 아마도 바흐가 가장 유력할 겁니다. 그러나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듯이 또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올림픽의 비대화와 상업화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 올림픽이 너무 상업화, 비대화되었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올림픽 상업화는 TV 중계권 등도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IOC에서 라디오, TV 분과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신 건 아니신가요? = 내가 라디오, TV 분과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IOC에 다른 수입원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게 유일한 수입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틀립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수천만 달러씩 냅니다. TV와 스폰서에서 올림 픽 때마다 들어오는 돈이 30억 달러가 넘습니다. 올림픽 입장권 가격만 해도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이제는 돈이 없으면 올림픽 경기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이러한 재정적인 안정은 운동선수들의 삶을 풍요 하게 해 줍니다. 그나마 이것 덕분에 세계태권도연맹도 IOC로부터 1천만달러씩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모 든 것이 지나치면 안되듯이 상업화도 지나치면 독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비대화는 IOC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올림픽에는 정식종목이 26개가 있는데 앞 으로 이들을 더 넣고 빼고 하는 식으로 조정은 할지라도 종목 수를 늘이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야구에 여자종목이 없다고 해서 소프트볼과 합쳐서 올림픽에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IOC 는 먼저 세계야구연맹과 세계소프트볼연맹을 합친 뒤에 다시 논의하자는 식이죠. 올림픽 야구종목 이야기가 나온 김에 태권도 퇴출 문제를 거론하려다 잠시 숨을 돌리는 뜻에서 스포츠 외 교 쪽으로 질문을 바꾸었다. ▲ 우리나라가 런던올림픽에서 목표 이상의 성과는 거두었으나 스포츠 외교에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 스포츠 외교는 실리와 확증으로 하는 것이지 공상과 이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 도 아닙니다. 국제대회를 많이 유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스포츠 외교의 성공입니까? 이제는 지방자치단체 들이 앞다투어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풍조도 사라져야 합니다. 지금은 아마추어 선수들까지 돈을 주지 않으면 출전하지 않습니다, 프로선수는 당연하고요. 이게 비로 지 나친 상업화입니다. 이 때문에 돈없는 나라들은 국제대회 유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유치해서 대회만 한번 달랑 치르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스포츠 외교는 세계 스포츠를 움직이는 IOC에서 당당히 발언권 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국제경기연맹에 많은 체육인들이 임원으로 선출돼 다양한 인맥을 쌓음으로써 스포츠 전체에 두루두루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태권도의 경우를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1971년에 내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은 뒤 2년만인 1973 년에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1981년에 월드게임 창설 회장을 맡았고 1984년에 국제경 기단체총연합회(GAISF) 부회장을 한 뒤 1986년에 IOC 위원을 하면서 GAISF 회장까지 겸했습니다. 이 때 모두 태권도를 종목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런 일들을 할 때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 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태권도는 세계연맹이 2개가 있었는데 IOC에서는 두 개 세계연맹을 통합해야만 올림픽 종목으로 넣어 주겠다고 했지만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고 난 뒤 통합하겠다고 밀어 부친 덕택입니다. IOC 부위원장으 로 나름대로 IOC나 국제경기단체에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래서 태권도는 올림픽 때마 다 몇 개씩 금메달은 가져 오는 효자종목이 됐지요. 이런 것이 바로 스포츠 외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는 그런 걸 할 사람이 없지요.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문대성 국회의원이 IOC 위원으로 있지 않냐 고? “안 그래도 문대성 위원이 런던에 간다고 인사를 하러 왔었습니다. 문 위원은 선수 대표로 IOC 위원이 됐 으니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나이도 젊어 하는 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이 바쁜데 스포츠 쪽에 얼마나 신경을 쓰겠습니까? 몸도 불편한 것 같고…” 대화가 어색한 것 같아 얼른 대화를 태권도로 바꾸었다. ▲ 이번 런던올림픽에 태권도가 처음으로 전자호구를 도입하고 경기장 규격도 줄이면서 경기가 공격적이 돼 재미있다, 아니다 지나치게 발만 사용해 재미없다는 식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태권도가 다음 올림픽에 퇴출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 전자호구는 올해 처음 도입되었으니까 과도기라고 봐야지요. 여러 가지 개선할 것이 많을 겁니다. 전자 호구는 몸통에만 적용되는 거고 얼굴 가격은 심판이 판단합니다. 아마 IOC에서 선수, 관중, 심판 등 다방 면에서 검토해 판단을 할 겁니다. 현재 올림픽 정식종목은 모두 26개인데 IOC는 이들 종목들을 A부터 D, E까지 등급을 나눠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영, 육상 이런 것들은 A 등급이지요. 이 가운데 최하등급에서 퇴출을 결정하게 되는데 태권도 는 트라이애슬론, 근대5종과 함께 최하등급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트라이애슬론은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 고 있는데다 국제연맹회장이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의 아들로 현재 IOC 위원이자 집행위원이고, 근대5 종은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을 부활할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종목입니다. 또 지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들어 오기 위해 노력을 하는 종목들이 야구와 소프트볼, 우슈, 가라데, 스쿼 시 등이 있습니다. 결국은 힘있는 단체가 살아 남게 되겠지요. 이게 바로 스포츠 외교와 직결되는 문제이 기도 합니다. 다시 스포츠 외교로 말이 돌아간 김에 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 혹시 IOC 위원으로 이런 분이 되면 좋겠다는 우리나라 인사가 있는가요? = 이 사람, 저 사람 다 IOC 위원 욕심 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모두 재벌 회장, 기업체 오너들이에 요. 이런 사람들은 모두 안됩니다. 사업하기 바쁜데 언제 스포츠를 위해 뛰겠어요. 그냥 IOC 위원 명함만 갖기 원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스포츠에 헌신하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필요합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현재 경기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5명이나 되는 기업가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으나 여기 서 그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칫 실례가 될 것 같아 부득이 생략한다. 화제가 너무 국제 쪽으로 많이 흐른 것 같아 슬며시 국내 쪽으로 돌렸다. ▲ 대한체육회장과 IOC 위원을 하시면서 스스로 공과를 평가 해 주시죠. =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만 나와도 좋은 시기였습 니다. 일본에 밀리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북한에게까지 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뛰었지요. 서울올림 픽을 유치하고 1985년에 노태우 위원장 밑에서 부위원장을 맡았는데 정부나 외부에서 일체 간섭이 없었 습니다. 당시만 해도 IOC에는 조정위원회가 없어서 바로 지시가 나에게 내려오는데 아무 간섭도 없이 처 리했습니다. 그렇게 믿어주니 고마웠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덕분에 반쪽 난 올림픽을 동서화합 의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고르바쵸프 러시아 서기장이 서울올림픽 덕분에 동구권이 민주화되는 계기가 됐다 면서 감사 표시도 했습니다. 그 뒤 IOC 부위원장이 되고 대한체육회 요청에 따라 회장이 되었지요. 대한 체육회장을 하면서도 IOC 총회와 GAISF 총회 등을 우리나라에서 열어 세계 스포츠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 해 노력했고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굵직한 국제대회도 유치했습니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남북공동입장도 성공시켰고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자부합 니다. 이번에는 좀 아픈 부분을 찔러 보았다. ▲ 국회의원을 한 것이 최대 실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는데 여당에서 내 인기를 가지고 가고 싶어서 강요를 하는데 거절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스스로 2004년 1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속사정을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2003년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하는데 사마란치 위원장이 “이번 엔 벤쿠버다. 한국은 2위를 지켜 다음을 노려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IOC 내부에서 어느 정도 결정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마란치 권고대로 부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IOC 총회에 참석해야 되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번에는 안되니 참석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체육계와 언론 에서 ‘부위원장 자리와 평창동계올림픽을 바꾸었다’고 했는데 이는 절대로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유치 실패를 책임질 희생양이 필요했던 겁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유 치 실패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 씌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聆?거지요. 더구나 그들 이 IOC 위원 사퇴를 요구했을 때 못 들은 체하니 잡아 넣은 것입니다. 결국 구치소에 있을 때와 병원에 입 원해 있을 때 당시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사표를 받으러 와서 두 번 써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내가 버텼으면 지금도 IOC 위원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정부가 사표를 강요하면서 나를 몰아 붙였고 IOC 는 그걸 빌미로 내 위원직을 정지시켰습니다. 우리 정부나 IOC가 똑같이 내 불행을 이용한 겁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2건의 자료를 내 보였다.
첫 번째는 2005년 UN 인권위원회 연차보고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자이며 IOC 부 위원장인 김운용씨는 양심수의 대표로 지칭되며 2003년 실시한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의 희 생양으로 재판을 받았다”며 “그가 돈을 왜 어떻게 사용했는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을 못했다는 이유로, 그가 공금을 개인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2005년 1월 14일 대법원은 판결을 결론 지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지난 6월 12일 세계에서 각 분야의 탁월한 인물을 찾아 인명사전을 발간하는 세계 3대 인명 사 전 중의 하나인 미국인명정보기관(ABI)이 주관하는 ‘세계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약 범죄 사실이 있다면 UN이나 세계적인 기관에서 인정해 줄 일이 있겠느냐?”는 김 전 부위원장 의 목소리가 약간은 떨리는 듯한 것은 취재 기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이야기가 무겁게 돌아가 이번에는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에리사, 문대성 의원 이야기 로 화제를 돌렸다. ▲ 국회의원 선배로 후배 체육인 국회의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 체육인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가야지요. 체육인으로 들어갔으니 잘 하겠지요. 최근에 이에리사 의원이 선수들이 술이나 담배 광고를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하는데 시의적절한 법안입니다. 아마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가 술 광고에 나가는 모양인데 IOC 윤리규정에도 선수가 술이나 담배 광고에 나오지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매니嗤廊?회사에서 몰라서 한 짓 같은데 이 사람들이 더 나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자기와 직접 이권이 있는 분과위원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나도 외교 통상위에 있었고요. 내가 민주당 국회의원을 해서 그런지 지금 새누리당이나 통합민주당에 아는 국회의원 들이 많습니다. 원로로 대접도 해주고.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니까 양쪽이 다 잘해 주더라구요.(웃음) 문대성 의원은 개인적으로 사퇴하면 안됩니다. 당연히 지역구에서 당선됐는데 사퇴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 요. 지금 일일이 검증하면 그런 논문 안 쓴 대학교수나 국회의원 몇 명 되겠습니까? 당초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친 김에 한가지 더 미묘한 질문을 했다. ▲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대한태권도협회장을 하고 여러 대통령을 거쳤습니다. 어느 대통령께서 체육에 관심과 지원을 가장 많이 해주셨습니까? = 이래저래 박정희 대통령부터 6명이나 거쳤네요. 아무래도 체육에 관심과 지원을 가장 많이 해 주신 분 은 전두환 대통령이죠. 사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올림픽 유치에 대해 논의를 2번이나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78년에 최초로 국제대회인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치르고 난 뒤 자신이 생겼는지 박 대통 령이 올림픽을 유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때 김택수 대한체육회장,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 등 몇 사 람이 모여 의논을 했는데 박 회장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죠. 그 러다가 박 대통령이 서거해 흐지부지 되었다가 전두환 대통령이 다시 지시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 유치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나고야와 대결해 52대 27이라는 큰 차이로 승리해 서울올림픽을 치르게 됐지 만 80년대 우리나라 경제력으로는 다소 벅찬 일이라 준비하는데 정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동구권 국가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 상태여서 교섭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스포츠계와 인연이 있는 내가 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 원장을 맡으면서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 조직위원장이 나에게 전권을 맡겨 주지 않았다면 무사히 치러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서울올림픽 관련 이야기는 몇 날 며칠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며 1990년에 저술한 ‘위대한 올림 픽’과 2002년에 발행된 ‘세계를 향한 도전’ 2권을 주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할 시간도 되고 해서 국내 체육계 문제로 질문을 돌렸다. ▲ 내년에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비롯해 각 경기단체 회장단 선거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체육발전 을 위해 어떤 분이 좋을까요? = 우리나라 체육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체육인들이 힘들게 일궈내 지금까지 그 토대 위에 세계 강국의 반열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 기업들의 지원이 힘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체육 인 스스로 일궈낼 시기가 되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체육은 정부의 지원이 대부분입니다. 기업은 프로구단을 육성하거나 체육을 후원하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스포츠의 메시지가 크니까 기업도 후원하 는 거지 IOC가 예뻐서 돈 내겠습니까? 대한체육회는 엘리트 체육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여가 활동에도 신경을 쏟아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체육은 옛날처럼 힘이 세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분야가 아닙니다. 충분히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체육 분야만이라도 기업은 후원하는데 그치고 체육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히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국장, 차관, 장관을 체육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하고 월드컵 사무총장 하다가 동계올림픽 사무총장 하는 이런 인사로 체육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묶을 수 있겠습니까? 체육회 사무총장이 과장에게 도 쩔쩔매서 무슨 체육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는 “지금 대한체육회 이사진 명단을 보면 체육인은 없고 대부분 기업인입니다. 도대체 기업인들이 체육 회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런던올림픽에서 열정과 온 힘을 다해 대한민국 체육의 자존심을 지켜 준 선수들이 자랑 스럽고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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