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더레코드
그 시절의 디스크립션
정혜지
게시일 2022.02.16  | 최종수정일 2022.03.18

기록은 활동에서 생겨난 산물이니 만들어내거나, 또는 누가 만들어놓은 것을 가져오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기록을 확보하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생산, 수집이라는 용어로 자주 부르죠. 다섯숟가락 아카이브의 기록은 주로 수집된 기록(매뉴스크립트)입니다. 앞서 써두었던 아카이빙 노트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듯이, 처음 아카이브를 구축한 계기가 할머니 댁에서 발견한 사진앨범들이었으니까요. 수집기록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이 기록을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점일 것입니다. 단지 같은 주제나 관계를 공유하고 있어서 가져온 기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정보라도 없다면 기록을 등록할 때 애를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이번 앨범 등록작업을 통해 재미있는 힌트들을 발견했습니다. 사진 속에 최소한의 기억을 남겨두려고 했던 제 할아버지만의 디스크립션(記述, description)을 소개하겠습니다.

 
1.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 정환동이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
 

갓 스무 살이 된 시절의 할아버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낯선 얼굴이었습니다. 사진의 맨 위쪽에 서 계신 젊은이가 바로 저희 할아버지인데요. 1949년 무렵의 우정사진 포즈는 아마도 먼 미래를 함께 바라보고 함께 가자는 의미를 뜻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나 할머니께 여쭈어보아도 너무 어린 시절의 얼굴이라 어느 친구분인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이 사진에는 그나마, 1949년 새해를 맞은 네 친구들의 우정을 남기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메모로 남아 있었습니다.

 
2. 합천국민학교 제29회 졸업기념 단체사진


이 사진은 할아버지의 사진은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동생인 정환두 작은 할아버지의 사진이에요. 당시 합천국민학교의 졸업생들은 50명이 조금 넘는 인원. 거기에서 작은 할아버지는 잠깐의 교편을 잡으셨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헌병대에 입대하셨다는데, 늘 엄격하셨던 얼굴이랑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남겨둔 메모는 이렇습니다. "앞 줄에서 왼쪽편 4째 자리에 있는자가 정환두군이다. 잊지 말 것" 아마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동생의 모습을 기억에서 잊지 않기 위한 다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3. 정환동의 산림경찰 복무 시절 동료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할아버지는 산림경찰로 군 복무를 하셨다고 합니다. 1957년 복무를 마치면서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기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셨죠. 어김없이 그 사진의 뒷면에는 함께 해 온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메모해 놓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많이 지나고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만년필로 적어둔 글자 대부분이 지워진 상태지만, 오랜 시간 군 생활을 함께 한 동료를 잊지 않노라 기억하는 메모가 남아 있습니다.
"전방이 조O철. 앉은 것이 공법용(공짜배기). 공서방 이 놈은 아주 유O한 놈이였다. 아마 그 OO에는 어째서 O지 알아주는 존재가 되리라고 믿는다. 조O철 이놈은 무골호인이였다. OO한 농촌OO가가 되리라. 1957.2.26"


써놓고 보니, 디스크립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메모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몇 마디의 메모로도 이 사진들이 왜 할아버지에게 중요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었는지 알게 되었죠. 게다가 날짜가 정확해서 할아버지의 연대기를 짜맞추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남긴다는 것. 오늘날이야 하루에도 수천 장 찍어내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70년 전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값비싼 필름으로 딱 한 장만 찍어서, 며칠을 기다려 현상을 하고, 그것을 받아 내 보케트*에 간직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남기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었죠.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어서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간직한 기억을 까맣게 잊을 때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사진 뒷면에 남겨둔 메모들은 소중한 순간에 찍었던 사진에 대한 추억을 남기려는 최소한의 디스크립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보케트: 우리 할아버지는 늘 호주머니를 포켓의 일본식 발음인 "보케트"라고 부르셨어요. 중요한 것은 늘 보케트에 여- 놓으라고 하셨죠.

ⓒ 정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