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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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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3.11.13  | 최종수정일 2023.12.04

 

‘시인’이라는 두 글자로는 부족한

고정희(본명 고성애, 1948~1991)는 문인입니다. 시(詩)를 주로 썼으니, 시인으로 ‘분류’되지요. 그러나, ‘시인(詩人)’이라는 두 글자로는 그의 문학과 43년 삶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27세 때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합니다. <전남일보> 기자와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크리스천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와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역임했지요. 고정희는 모교인 한국신학대학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대학생 문화에도 참여했으며,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여성운동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1984년 시작된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서의 활동을 토대로, 1988년 창간된 <여성신문>의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지요.
1975년 등단 이후 격동의 1980년대를 거치며, 고정희는 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서 시와 여성주의를 결속시켰어요. 여성으로서의 시선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형상화했습니다. 문학의 장르 중 시(詩)는 가장 ‘예술’에 가까운 형태이지요. 즉 암울한 시대, 복잡한 사회, 비루한 현실에서 저 너머의 아름다운 세계로 도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들이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정희의 시는 현실도피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민중과 여성에게 가혹하던 1980년대, 민족과 민중 그리고 여성의 해방과 자유에의 갈망을 차갑고도 뜨겁게 담아냈거든요. 
고정희는 198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입니다. 기독교 정신을 형상화한 문인이기도 하고요.

 
[노래] 고정희 시 - 하늘에 쓰네(2001)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기록물로 이동합니다.
 
그가 받은 상, 그가 남긴 상

고정희는 43년의 짧은 삶 동안, 27세에 등단한 이후 16년 동안 총 10권의 시집을 내놓았습니다.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부터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여성해방출사표>(1990), <광주의 눈물비>(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까지. 그리고 사후에 출간된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까지 총 11권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 <초혼제>로, 1983년 고정희는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전라남도 광주 북구에 위치한 광주문화예술회관에 가면,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이 새겨진 '고정희 시비(詩碑)'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정희 사후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이 매년 그의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부터 매년 고정희기념사업회와 해남여성의소리가 주최하고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등이 참여하는 ‘고정희문화제’가 열립니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에서는 고정희의 생애와 작품세계,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고요. 사단법인 또하나의문화는 2000년 ‘고정희상’을 제정해, 여성예술 분야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한 이들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