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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보 <그대 오르는 언덕>, <어둔밤 마음에 잠겨>

    류형선의 문익환 목사 방북 헌정곡 <그대 오르는 언덕>과 이동훈 작곡, 김재준(1,2절)·문익환(3절) 작사 찬송가 582장 <어둔밤 마음에 잠겨>의 악보  

  • 문익환 통일의집 박물관 전시 <월간문익환> 활동 영상

    봉사자들이 만드는 아카이브 기반 콘텐츠 『월간문익환』을 바탕으로 준비한 전시 <월간 문익환>을 기념하여 제작한 활동 영상.  아카이브에서 만난 늦봄의 생애와 제작진들의 활동 모습을 담았다. *전시기간: 2022. 11. 7 ~ 2023. 2. 28 *장소: 문익환 통일의 집 박물관(인수봉로 251-38) *사업회 홈페이지 : http://unification.koreafree.co.kr/main/index.html

  • 『월간 문익환』 2024년 3월호(eISSN 2951-2123)

    <편집장의 커버스토리> 통일의 집 뒷동산을 걸어서 넘어가면 수유동 언덕위에 작은 빌라촌을 만납니다. 걸어서 10분거리 아주 가까운 곳에 그의 둥지가 있습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자택입니다. 우연히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익환 목사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서 일부러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지요.  평생을 홀로 지내며 ‘양심수의 벗’으로 헌신해온 그에게, 늦봄은 동지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오직 양심수들을 위해 열정 가득한 삶을 살아온 권 회장. 병마와 싸우면서도 여전히 ‘분단없는 통일국가’를 꿈꾸며 글쓰기를 쉬지 않는 그를 『월간 문익환』이 만나봤습니다.  <목차> ·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권오헌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2-3면> · [시 속의 인물]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 8인 <4면> · [과거에서 온 편지] '3.1절' 봄길의 편지 <5면> · [이달의 사건] 3.1민주구국선언/평양 방문 <6면> · [그때 그곳] 국립4.19민주묘지 <7면> · [나와 늦봄] 1킬로커피 이상호 대표 <8면>

  •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 생명과 평화 '밥알들의 양심' 전시안내서

    문익환 통일의 집에서 열린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 생명과 평화 '밥알들의 양심'(2023년 11월 24일 ~ 2024년 7월 31일) 미술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 설명서이다.  미술전시 초청작가: 고경일, 권산, 김서경, 김운성, 김진희, LEODAV, 박지혜, 이구영, 이세림, 이하, 임대니, 임의진, 정경숙, 조정태, 최병수, 윤경순, 허윤희  

  • 『월간 문익환』 2024년 2월호(eISSN 2951-2123)

    <편집장의 커버스토리> 한신대 교수시절 문익환 목사는 ‘깐깐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모두가 기피하는 그의 히브리어 수업을 유일하게 신청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간 문익환』 2월호의 주인공 곽노순 목사입니다. 만만찮게 ‘깐깐했던’ 물리학과 전공생은, 신학을 공부하러 한신대에 와서 혼자 늦봄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1대1 수업임에도 출석일수를 놓고 티격태격할 정도로 ‘깐깐했던’ 둘은 얼마 후 성서번역을 함께 하게 됩니다. ‘동료’가 된 후에도 3개월을 매일 다투던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며 의형제 같은 ‘동지’가 됩니다. “문 목사님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순수’ 그 자체야. 100% 순수를 지닌 어린아이가 늙어서까지 순수를 지킨 유일한 케이스야”. 이 한 문장으로 늦봄을 정의한 곽 목사. 그에게 늦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목차> ·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늦봄과 성서번역 곽노순 목사 <2-3면> · [이웃 아카이브 탐방] 선종완 신부 기념관 <4면> · [과거에서 온 편지] '달달한' 봄길의 편지 <5면> · [30주기 헌정만화] 박건웅 작가의 '귀향' <6면> · [이달의 사건] 2005, 겨레말큰사전 편찬위 결성 <6면> · [현장르포] 모란공원 문익환 30주기 기념문화제 <7면> · [나와 늦봄] ‘마지막 수행비서’ 세진음향 임윤호 대표 <8면>

  • 늦봄 문익환 30주기 기념위원회 '한반도평화선언문'

    [한반도평화선언문]    오늘날 지상에 가득 찬 생명의 물결을 교란하는 파탄의 정체를 학자들은 ‘인류세’라는 낱말로 포착한다. 인간은 어느새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지상의 모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많은 존재’로 등극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는 땅과 하늘, 천체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치명적인 말썽거리가 된 것이다.   우리가 바라던 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히려 수많은 희생을 통해 일군 민주주의와 평등, 평화와 공존의 토대가 지상의 모든 곳에서 바탕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더 불평등하고 위험해졌다.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위기가 일상화되었고, 재난의 규모와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기술 문명이 고도화하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확장되며 가상공간이 새롭게 열리고 있지만, 자유는 멀어지고 경계는 더욱 굳건해지며 배제와 고립은 심화하고 있다. 만성화된 위기의 책임은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전가된다. 공론장은 약화 되고, 대의정치는 퇴행하고, 혐오에 바탕을 둔 근본주의는 날로 힘을 얻는다. 서로를 살리고 돌보는 세계로 나가는 속도는 끝없이 편 가르고 공격하고 파괴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인류와 모든 비인간 존재들의 터전인 지구가 내일에도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으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다.   그러나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봄을 꿈꾼다. 너무도 더디게 오고 있어서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이 땅의 봄, 역사의 봄, 모든 생명의 봄을 간절히 꿈꾼다.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고, 그 봄을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봄이 반드시 오고,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음을 알고 있다. 지난 세기,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를 우리와 함께 살아냈던 늦봄의 넋이, 마치 “언 땅속에서 부릅뜬 개구리의 눈망울처럼”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리의 심장을 생명의 봄을 향해 뛰게 하기 때문이다.   문익환 목사는 나라의 분열 상태를 더 이상 끌어서는 안 되며 가까운 시일 안에 민족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 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이 일체임을 천명하였다.   문익환 목사는 남북 사이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대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 군사 문제와 함께 교류 문제도 병행하여 해결해야 하며 남북 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산가족 문제와 경제교류 문제 등 여러 부문에 걸친 회담과 교류가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떠나시고 30년이 지났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민주주의, 인권, 생명, 평화와 통일이 모조리 부정당하고 퇴행하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목사님과 수많은 열사가 목숨을 바쳐 열어놓은 길 곳곳이 벽으로 가로막히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벽을 문으로 알고 박차고 나가”라시던 목사님의 결단과 기개가 간절하다. 이제 우리가 모두 좌절과 분열, 전쟁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푸른 평화의 하늘을 다시 열어야 한다. “벽을 문으로 알고 박차고 나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남과 북, 우리 민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전쟁과 분단 체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 평화의 중심축이자 시금석이다.   세계 평화는 강대국의 패권적 이해관계가 집약되어 있는 한반도가 전쟁 상태를 끝내고 평화 시대로 접어들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분단 체제를 끝내고 평화를 열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남과 북이 될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반민주, 반평화, 반통일 세력에 의해 조성된 긴장과 난관을 이겨내고 평화의 길로 나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30주기를 맞으며 우리는 문익환 목사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밑바탕에는 가장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세계 평화와 남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안의 분열과 차별을 극복하고 목소리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찾게 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든 생명체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고 돌보며, 일상에서부터 작은 평화와 평등을 만들어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30주기를 맞이한 문익환 목사님과 민주주의와 인권, 생명,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모든 열사의 영령 앞에서 ‘민중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민족의 자주적인 연합과 대단결로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는 대장정을 시작할 것을 다짐하고 결의한다.   2024년 1월 13일 늦봄 문익환 30주기 기념위원회   ◇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문익환 30주기 기념식에서 젊은 청년 6명이 한반도 평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권산

  • 문익환 목사 별세 전 마지막 일정 내용이 적힌 팩스

    문익환 목사 별세(1994. 1. 18) 직전 1994년 1월 6일부터 1월 18일까지의 일정이 적힌 팩스로 통일맞이 임윤호 수행비서에게 보냈다. 

  • 『월간 문익환』 2024년 1월호(eISSN 2951-2123)

    『월간 문익환』 2024년 1월호(eISSN 2951-2123) 아카이브 기반 콘텐츠 제작단 '콘텐츠플러스'가 기획·제작하고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에서 사료제공 및 제작을 지원하여 발간한 『월간 문익환』 2024년 1월호(통권 제21호).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으로 13년간 옥고를 치른 이철과 아내 민향숙을 만났다.    <편집장의 커버스토리> 결혼을 불과 두달 앞두고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신랑’ 이철. 그리고 그를 사랑한 죄로 영문도 없이 옥에 갇힌 ‘신부’ 민향숙. 옥중의 민향숙은 이철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문을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이철이 잘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3년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이철을 면회 간 민향숙은 ‘무사’한 신랑의 얼굴을 대하고서야 철망 너머 손을 꽉 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밤마다 피눈물로 범벅이 되는 억장 무너지는 기다림’을 견뎌온 이들이, 무려 13년만에 결혼식을 올릴때 늦봄은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이런 결혼식은 없었다”며 진심으로 이들의 결혼을 기뻐했습니다. 함께 차에 올라 명동 일대에서 카퍼레이드까지 했으니까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현실. 온몸을 옥죄는 그 참혹한 시간을 이 부부는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월간 문익환』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목차> ·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재일양심수동우회 이철 회장, 민향숙 선생 <2-3면> · [과거에서 온 편지] 새해 벽두에 온 편지 <4면> · [시 속의 인물] ‘어느 여성 노동자’ <5면> · [늦봄의 서재] 이철용 『어둠의 자식들』 <6면> · [이달의 사건] 입원과 별세...고난의 1월 <6면> · [사료의 발견] 별세 30년 추모의 기록들 <7면> · [나와 늦봄] ‘평화나무 농장’ 원혜덕 <8면>

  • '늦봄의 편지' 웹포스터

    * 2020년 미래유산 민간단체 공모사업 '편지, 통일의 집에 날아들다' - "문익환 옥중서신, 늦봄의 편지"

  • '늦봄의 편지' 유물 촬영

    사진촬영: 조완웅 * 2020년 미래유산 민간단체 공모사업 '편지, 통일의 집에 날아들다' - "문익환 옥중서신, 늦봄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