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전과자가 쓰기를 강요하는 소설
당신께 이달도 다 가네요. 교도관들도 오늘로 겨울옷으로 바꾸어 입었고, 슬슬 겨울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의 의젓한 모습이 내 방에 조용히 들어서더군요. 너무 반가워 손을 덥석 잡았지요. 어찌나 생시 같았던지, 눈을 뜨고 싶지 않더군요. 생시가 아니라 꿈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랄까? 학생 시절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말없이, 발걸음조차 사뿐사뿐 소리 없이 옮기는, 그 육중한 몸으로, 고요하기만 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큰일을 해냈고, 아직도 해내는 것이 그리도 믿음직스러웠죠. 대견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 꾹 참고 믿음직스럽다고 썼죠. 대견스럽다고 하면 너무 얕보고 어리게 보는 것 같아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생각지도 않던 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노자•장자는 無爲를 말했죠. 낙동강이 해마다 범람해서 수많은 수재민을 내던 이야기는 요새 젊은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죠. 그걸 막으려고 여기 댐을 만든 건데, 그 물로 논에 물을 대어 좋구요. 그런데 그게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네요. 그 덕에 여기는 아침이면 안개가 짙거든요. 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일조권이 침해를 당하는 셈이죠. 요새 골프장 인가를 남발해서 국회 국정 감사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 골프장에 비하면야 여기 댐이야 건설적인 거라고 해야 하겠지만. 부시가 한국에서 핵무기를 거두어 가겠다고 발표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민족적인 수모감마저 느끼게 되는군요.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들여왔다가는 내가고 하는 것도 우리의 주권이 유린당하는 일로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한반도의 핵 문제는 우리 정부 주도하에 처리한다고 정상 회담에서 약속해 놓고는, 또 저희가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는 거, 이거 정말 참을 수 없는 수모가 아닐 수 없군요. 그게 만일 노 대통령 유엔 연설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주체적인(?) 태도 표명이 있기를 기다리다가 그게 없으니까 노 대통령이 미국을 떠나기도 전에 그런 발표를 한 것이라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지만요. 아무튼, 한반도의 비핵지대화가 이루어질 모양이니, 천만다행한 일이군요. 이번 미국의 조치가 이제 군수산업으로 나라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본격적인 군축 경쟁에 나선 일이라면, 인류의 이름으로 축하해도 될 일인데, 과연 어떤 것인지? 윤정모님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진정 고맙습니다.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선생님 생각할게요. 하나 아쉬웠던 건 편지 속에 다만 몇 자라도 적어 넣어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선생님 목소리야 작품을 통해서 늘 듣고 있기는 합니다. “빛”,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창비에 연재하는 “들”, 정말 좋군요. 리얼리즘 문학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기쁩니다. 당분간 농민 소설을 계속 쓰실 모양이지요? 기대가 큽니다. 저는 미술 앞에 서면 글자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지고는 한데, 소설을 읽으면서는 시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한계가 탁 터지는 것 같이 속이 시원한 걸 느끼면서, 글자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도 신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가지게 됩니다. 소설 쓰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우리 시인이라는 인종은 게으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선생님이 농민 소설을 쓰려고 얼마나 뛰어다녔을까요? 자료들을 수집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요? 박경리 씨가 『토지』를 쓰려고, 조정래 씨가 『태백산맥』을 쓰려고, 송기숙 씨가 『녹두 장군』을 쓰려고 10년 ~ 20년 준비하지 않았어요? 시인에겐 그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저도 소설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준비한다기보다는 그놈이 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군요. 78년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꿈으로 내 앞에 다가선 젊은 전과자가 저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빨리 내 이야기를 써주세요”라는 소리를 이제 더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될 겁니다. 완성되는 날 우선 우리 윤정모 님께 보여드리고 평을 받아야지. 그 이야기를 쓰려니까, 신문도 뒤져야 하고, 전과자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텐데,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 건가? 역시 나는 소설가가 아니고 시인으로 남아 있어야 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의 “들”을 1, 2는 못 읽었어도, 3, 4만 읽어도 좋군요. 재미있다는 말은 농민들을 모욕하는 말 같아서 좋다고만 표현한 겁니다. 많이많이 써주세요. 늦봄 또 다시 당신께 『옥중 일기』 미국에 있는 서승 씨, 일본에 있는 (민)향숙이, 정경모에게 보내도록. 송우혜 『홍범도』 이야기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완성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화 한 통 부탁. 건강해야 한다고도. 편지 한 장 보내주면 억시게 좋아할 거라는 말도. 북간도 갔던 이야기는 내가 나가서 들어도 되겠지요. 동거우 샘물을 두고 나도 시 한 편 쓸 정도로 가서 마시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는데, 동환이도 흙을 헤치고 그 물을 손으로 움켜 먹을 만큼 그 샘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군요. 어쩌면 그 샘이 나와 동환의 가슴에서 계속 맑게 솟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오늘은 이만. 당신의 늦봄 1991.09.30 아내에게는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을 꿈에서 만난 얘기를, 소설가 윤정모에게는 그의 소설을 읽고 느낀 점과 자신도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표현
문익환
199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