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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를 찾는 기쁨을 주는 한겨레 신문

    송건호 선생님께   저번엔 바쁘신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서 찾아와 격려해 주신 일, 무어라고 고마운 말씀 다 드릴 길 없습니다. 신문 지면과 붓을 박탈당하고 거리를 떠도시던 자유 언론 투사 동지들이 신명을 다 바쳐 만들어 내는 「한겨레 신문」에 쏠린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컸었느냐는 건 120억 원 모금이 너끈히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간 가판에서 「조선일보」를 누르고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는 건 쾌거 중의 쾌거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 선생님과 함께 남산 지하실에 갇혀 조사를 받던 80년이었습니다, 민중 신문의 꿈을 궁글리기 시작한 것이. 그 후 86년 청주교도소에 있을 때 신문에 관한 책을 읽어가며 좀 더 생각을 진전시켜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와서 여러분이 신문 창간을 위한 구상을 굳혀 가는 걸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때도 시대정신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겨레 신문」이 없었다면, 이번에 제가 얼마나 외로운 고전을 했겠습니까? 명동 땅값에 비할 수 없는 그 비싼 지면에 저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 전문을 실어 주셨으니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라는 일 아니겠습니까? 또 이번에 저의 시집을 격찬하며 소개해 주셔서 뭐라고 고마운 말씀드릴 길이 없군요. 이종옥 시인에게 한 가지 항의하고 싶은 건, 시인다운 시인이 드문 시대라고 한 점입니다. 너무너무 좋은 시인, 우러르고 싶은 시인이 너무 많은 시대인데, 어찌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민족정신이 詩정신으로 폭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라성 같은 대시인들의 행렬에 꼽사리로나마 낄 수 있다는 게 저로서는 그냥 황공할 따름입니다. 한편 황공하면서도 한편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의 시의 총주제가 ‘통일’이라는 것,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는 진실이라고 봐주신 이종옥 시인의 지적은 맞는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참’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참’을 추구하는 마음, 그 ‘참’ 때문에 목숨을 내대고 죽을 수 있는 마음이 저에게 있어선 ‘양심’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는 ‘양심’을 좀 끈질기게 추구해 보았습니다. 저는 요새 날마다 「한겨레 신문」의 활자들, 사진들, 그림들에서 시를 찾는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하루도 저에게 시를 보여주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만인보(萬人 譜)」를 쓰신 고은 선생에게 모든 사람이 시라면, 지금 저에게는 모든 날이 시라고 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온 민족이 시를 살아가는 시대, 아프고 쓰리면서도 그지없이 감격스러운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며칠 있으면 저는 법정에 섭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사고 빌고 싶은 마음 바다 같습니다. 꼭 하느님께, 부처님께 빌어야 기도겠습니까? 산을 쳐다보며, 돌을 가슴에 품고, 풀 이파리를 잡고, 젖먹이의 눈을 들여다보면서라도 심혼을 쏟아 통일을 빌어 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겨레 신문」 동지들, 건투를 빕니다.   통일염원 45년6월20일  익환드림   영혜야,   졸업을 축하한다. 이제 하늘이 너에게 준 그 무엇을 활짝 꽃피우는 새날에 들어서는구나. 좀 흥분되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아빠가 오는 날 같이 와 주렴. 꼭 안아줄게. 자유, 그렇다. 자유가 좋은 거다. 네 마음이 모든 얽매는 것에서 풀려 활짝 자유를 향해 날개를 치는 거다. 너의 자유로운 마음의 아름다운 표현이 너의 생의 전부다. 바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보고 싶구나. 큰 아버지   당신께,   꾸밀 줄 모르는 진실 덩어리, 세 분을 접견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오늘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오. 행복감마저 느꼈다고 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어요. ‘북한 23일 판문점 개방’이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내일 신문에는 ‘남한 23일 판문점 개방’이라는 기사를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어제 정성모 장로에게 쓴 편지는 정경모에게 복사해서 보내주시오. 졍경모 씨에게 나의 책들이 몇 권 없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나온 책들을 한 부씩 다 보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어지나가 오는 날, 안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오늘 우리 방 앞 들꽃과 함께 들어온 44신, 45신이 들어왔어요. 성근의 편지도. 이만 총총.    사랑 1989. 6. 20   한겨레 신문이 방북사건을 긍정적으로 보도해준 데 대해 감사하며 신문에서 시를 읽는 기쁨을 표현. 조카의 졸업을 축하.  

  • 개인의 승리가 아닌 민족의 승리

    어머님께 어머님의 맑은 얼굴, 그렇게도 환히 빛나는 걸 생전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맑은 목소리라니. 어제는 6.25 서른아홉 돌을 맞아 온종일 가슴을 앓았는데, 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이승만의 흉탄에 가신 지 마흔 돌이어서 또다시 슬퍼졌었는데, 어머님의 힘찬 목소리에 부쩍 힘이 났습니다.  김구 선생이 가신 날, 저를 그 법정에 세워주신 하늘의 뜻, 역사의 뜻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일본놈들 앞잡이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가 죽은 날이 이등박문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진 날과 같은 날이라면, 그게 또한 그냥 우연일 수가 없는 것처럼, 오늘 저도 그냥 우연히 법정에 서게 된 게 아니죠. 오늘 기사를 읽으면서 정경모가 눈물을 글썽이며 “섭리”를 읊조리던 모습이 눈에 환합니다.  40년 전 흰눈 즈려 밟고 가시던 님의 발자국들이 푸른 하늘 울리던 총성에 붉은 피 흥건하더니, 오늘 제 발바닥에서 끈적끈적 묻어나는 걸 느꼈습니다. 오늘 법정에서 만난 얼굴들,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 저에게 너무나 뜨거운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늘 법정에 같이 앉아서야 유원호 선생이 누구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의 사명으로 투철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새 기계들이 들어와서 이제 사업이 궤도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걸 내팽개치고 저의 수행원으로 북에 갔다 왔습니다. 겸허하게도 나의 수행원으로 분단의 장벽을 깨는 데 한몫하겠다는 정치인다운 사명, 그것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를 사업을 초개처럼 여기게 했습니다. 오늘도 그가 말했지만, 그는 이 역사적인 여행에 동참하게 된 걸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먹지 않고 배부르다는 걸 또다시 경험합니다. 이번 법정에서 저는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요. 그러나 중요한 건 제 개인의 승리가 아니죠. 민족의 승리가 이제 막 눈앞에 보입니다.  이 확신으로 내일도 모레도 살아갑시다.  아들 익환 올림  방북사건의 첫 재판을 끝내고 느낀 소감과 수행원이었던 유원호 선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 내 가슴에 안겨 우는 기완이 누님

    닉환이 형님이 기완이 아우에게   기완이를 아우라고 부를 용기를 준 건 기완이가 늘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완이 누님이 나를 정말 큰오빠처럼 가슴에 온몸 허물어져 왔기 때문이었소. 온몸 허물어져 가슴에 안겨 우는 기완의 누님! 그건 영락없이 내 동생이었소. 그때처럼 기완이와 같이 평양에 오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한 때가 없었다오. 기완이! 누님은 기완이보다 더 젊어 보이더군. 단단하고, 손은 일을 많이 한 손이었고. 지금은 연금을 받아 산다고 했는데, 남편과 같이 그날도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다가 당에서 부르기에 가봤더니, 나를 만나러 평양으로 가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소. 남편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못 물어봤구먼. 아이가 낳는 대로 죽었는데, 마지막으로 낳은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지금 같이 산다더군. 지금 나이가 열여섯 살이라니까 마흔다섯쯤에 낳은 셈이지요. 어머님이 세상 떠나신 게 언제라고 듣기는 했는데, 녹음 테이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그걸 못 가지고 들어왔구먼. 거기는 그게 있을 텐데. 그걸 믿고 적어 두지 않았거든. 누님은 신문에 나는 동생의 기사를 모두 오려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에 말했던가 보지. 나더러 만나겠느냐고 해서 만나고말고 했더니 오게 했던 거였소. 마침 원담이 출판한 『꿈을 비는 마음』 한 권이 있어서 주면서 이건 기완의 큰딸이 낸 나의 시 집이라고 했죠. 또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를 주면서 발문을 기완이가 쓴 거라고 했더니 기뻐하더군. 마침 내가 가지고 간 사진들 가운데 계 선생과 나와 셋이서 찍은 것이 있어서 그걸 주었지요. 아마 잘 때도 가슴에 품고 잘 거로구먼. 다음 8·15에 북쪽에서 보내 주었으면 좋을 텐데.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르지. 아니, 그럴 게 아니라 「한겨레 신문」에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고하라구. 저쪽에 분명히 전해질 거라고. 거기에 이번 8·15에 서울 오라는 말도 쓰고. 그래서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박(형규) 목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요새 내 몫까지 하느라고 목이 다 잠겼다면서? 그만하면 건강이 좋아진 것 아닌가 싶어서 다행이구먼. 비나리 묶음 『해방 통일』 출판을 환영. 아무리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나한테 한 권 보내야 하지 않아? 말 한마디면 될 텐데. 또 무크도 냈으면 보내 줘야지. 내 시집도 곧 나올 모양인데, 「넋두리 아닌 넋두리」,「45년이라니」 읽었으면 평이라도 써 보내 달라고. 누구의 평보다 기완이 동생 평이 제일 정확하고 무섭다는 걸 잘 아니까. 건투, 건투, 건투.   당신께   오늘에야 공소장이 전달되었군요. “문익환 등 밀입북 사건” 이렇게 되어 있구요. 유원호 씨가 주범이고 내가 종범이고, 이건 희극인데. 정경모 씨가 북쪽 공작원인 걸 아무 증명 없이 전제하고 “반국가 단체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통신하여 연락하고” 이런 식이에요. 그가 북쪽 공작원이었다면, 호박 쓰고 돼지 굴로 들어온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거죠. 성근이 말로는 왜설물 이외에는 무엇이나 된다는 교정국장의 말인가 본데, 내일까지 기다려 봐야지요. 건강에 관한 집필을 곧 시작하겠는데, 유태우의 고려수지침 책이 빨리 와야겠어요. 이철용 의원에게 말해 보든지, 기독교회관에서 5가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작은 의학 서적 책방이 있는데, 거기 들러 사 오든지. 강종건의 부인 이문희는 남민전 사건에 걸렸던 사람인가요? 유시춘의 뜨거운 편지, 손이 델 것 같군요. 내가 통일을 못 볼지 모르지만이라고 썼더군요. 내가 왜 통일을 못 봐? 물론 1995년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분단 50년을 넘긴다면 우리 다 죽어야지. 전경선 목사 딸의 편지도 감격스러웠구요. 통일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 정말 좋구만요. 내가 얼굴이 좀 길다 뿐, 너무너무 닮은 것 같아, 우리 둘은.    사랑, 1989. 6. 9.   백기완의 누이를 평양가서 만난 얘기와 공소장을 받았다는 얘기  

  •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쓰는 회고록

    당신께   미국이 또다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나서는 게 심상치 않군요. 떨어지는 부시의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 한 건 올리려는 낌새군요.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정세군요. 집권층이 민족의 주권과 생존권에는 관심이 없고, 제 앞 차리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이 역사를 어디로 끌고 갈 건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없어야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군요.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가 거듭되는 역사의 교훈인데, 권력을 잡고 보면, 그런 역사의 교훈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어지니…. 앞을 가로막는 이 가시밭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나? 그 생각을 하면 회고담을 쓰는 손, 맥이 탁 풀리네요. 그래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써야지요. 75년에서 시작될 나의 회고담. 그 17년 세월 가운데서 가장 암담했던 때가 87년 대선에서 어이없는 좌절을 겪었을 때였지요. 야당 대통령 후보를 국민이 결정해야 했는데, 그게 우리에겐 첫 경험이었죠. 80년에는 그 일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5.17로 뒤엎이고 말았구요. 전에는 정치인들이 가위바위보로 결정해 주면, 국민들은 투표장에 나가 투표만 하면 되었죠. 그런데 80년에도, 87년에도 정치인들이 그걸 할 수 없이 되었거든요. 그리되면 국민이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없었거든요. 선례가 없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비지(비판적 지지)다, 단일화다, 단독 후보다, 하며 세 갈래로 갈라져서 삐걱거리다가 일을 그르쳤잖아요? 입속이 온통 소태같이 쓰기만 했던 그 암담한 경험 속에서 나는 회고록을 남겨야 한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것은 결코 내가 옳았다는 걸 후세에 남기고 싶은 자기중심적인 심정에서가 아니었다구요. 그게 아니라 나를 위시한 우리 모두의 실패담을 남기려는 거였죠. ‘이렇게 하다가 우리는 실패했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했어,’ 라는 걸 후대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 해야겠지요. 회고록을 쓰려는 건 다음번에는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죠. 나는 이미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어요. 김영삼 씨의 비극을 보면서 그때의 일을 돌아보며 내가 보고 느낀 대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죠. 나는 그 회고담에서 그가 대통령병에만 걸려 있지 않은 순수하고 좋은 인간성이 있다는 것도 내가 느낀 대로 썼죠. 그리고 그가 결국은 민족의 지도자로 부활할 것을 바라는 심정으로 썼지요.   『가슴으로 만난 평양』도 나에게는 꽤 중요한 회고록이죠. 정경모 씨나 유원호 씨가 쓰면, 훨씬 더 객관적인 회고록이 될지는 몰라도, 김 주석과 단독 회담한 내용은 나와 김 주석밖에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죠. 평양에 갔다 온 선례는 세 번 있었죠. 김구 선생, 김낙중 씨, 이후락 씨. 김구 선생은 판문점을 거쳐 갔다 오셨고, 갔다 오신 후 암살을 당했지만, 의법 처리되지는 않았지요. 나는 김낙중 씨처럼 임진강을 헤엄쳐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지요. 박철언 씨도 나보다 먼저 갔다 왔군요. 김낙중 씨의 회고담은 정말 우리를 가슴 뜨겁게 해주는 회고담인데, 난 사실 그 책을 갔다 와서 안양교도소에서 읽었거든요. 당신의 늦봄 1992.02.11    회고록에서 87년 대선 실패의 실패담과 89년 방북이 가장 중요한 회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    

  • 박용길이 정경모 내외에게 보내는 붓글씨 서신 연습본

    박용길 장로가 통일의 집에서 정경모 부부에게 보낸 붓글씨 서신 연습본. 8순을 축하하고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 적혀 있음. 정경모는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한 인사

  • 백배 천배 소중한 사이

    어머님께   76, 77, 79, 80, 81, 82, 86, 87, 89년 이렇게 아홉 번 감옥에서 생일을 맞았습니다. 누구는 저를 비극적인 풍운아라고 합니다만, 저는 천하에 없는 행운아입니다. 오늘 그렇게도 태연하게 저의 감옥살이를 받아주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우는 할아버지의 뜻을 예술로 표현해 주었구요. 무엇보다도 저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시원이 “우리 할아버지 문익환이다” 이렇게 시원에게까지 자랑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면, 저야 행운아 중의 행운아죠. 안 그렇습니까? “나를 위해서 부모 처자를 버리면 백배나 더 얻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 또 생각했습니다. 뭐 아버지가 백이 되고, 어머니가 백이 되고, 아내가 백이 된다는 말이 아니죠. 백배나 서로 소중하게 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어머님이 저에게 전보다 백배나 소중하게 되었거든요. 저도 어머니에게 백배나 소중하게 된 거구요. 우리 모두 모두, 심지어 시워나까지 서로서로 백배나 소중하게 된 거죠.  정경모도 이번 저와 동행하면서 수도 없이 눈물을 보였지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글썽이는 눈망울, 벌겋게 충혈된 눈,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정경모와 나 사이도 그렇게 백배나 서로 소중한 사이가 된 겁니다. 체제연합을 구상하다가 제가 평양에 갔다 온 것 때문에 국가연합으로 후퇴한다구요? 민족의 대사를 그렇게 심통이나 부리는 감정으로 다룬다면, 애당초 국사를 논할 자격마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오셨던 여러분의 얼굴 하나하나 떠오르며, 그분들과 저 사이도 서로서로 백배 천배 소중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행복감을 가지고 자리에 들렵니다. 어머님도 잘 쉬십시오. 내일은 동환이네가 올 건가요?   아들 익환 올림   71회 생일을 맞이하며 가족간의, 친구들간의 소중함을 표현  

  • 섭리로 함께 한 정경모와 문익환

    [1989.06.17]  당신께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읽고 울음을 터뜨렸다고요? 그럴만하고도 남는 일이죠. 누가복음 18장을 읽어보세요. 억울한 과부의 끈질긴 요구 앞에 뒤로 물러서는 악한 관원의 모습을 오늘 이 땅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요새 북의 자세는 통일에 총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인상이군요. 어쩌면 이번 나의 방북의 최대의 성과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북이 통일에 전력투구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이. 올해 정초 KBS 여론 조사에서 전 국민의 85%가 89년에 남북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는 답이 나왔었는데, 그게 빗나간 듯했었는데, 그게 이제 맞아떨어지게 된 것 같군요.   사랑 1989. 6. 17.   [1989.06.18]    정성모 장로에게   경모 형님이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선언한 말을 듣고 좀 놀랐지요. 20일 동경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먹으러 나가려는데, 형은 내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자는 것 아니겠어요? 나도 놀랐지요. 기도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신에 “고난받는 당신의 아들딸들의 이름으로 빕니다”로 끝냈을 때는 경모 형이 놀랐지요. 하느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를 거절 못 하는 까닭은 그가 고난받는 당신의 아들딸들의 하나이기 때문이거든요. 기도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면서 경모 형은 “난 요새 섭리를 믿게 되었습니다”고 고백했습니다. 39년 전 동경에서 우연히 만났고, 옛 연인을 만나 고민하는 걸 도와주고, 결혼 주례를 서주고, 퍽 개인적인 관계였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남북문제를 푸는 역사적인 일에 같이 어깨를 디밀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냥 우연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죠. 20일 비행기로 떠나야 하는데 동지들은 중간평가 때문에 못 떠난다고 하고, 그래서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20일 아침에 중간평가 연기가 발표되고, 민족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고 외쳐 대던 사람이 그 일을 하러 평양에 도착한 다음 날이 부활절이었고 등등, 이런 건 다 우연이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우연이 그냥 우연이 아니고 개인의 생애나 역사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신앙인은 그걸 섭리라고 합니다. 섭리라는 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걸 역사적인 필연이라고 부르는 거고. 역사가는 수많은 우연이 모여서 역사적인 필연이 이루어진다고 하겠지만, 신앙인은 그걸 수많은 작은 섭리가 모여 큰 섭리가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나와 경모 형의 이번 평양 방문은 태아가 머리로 골반을 밀고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필연으로 느꼈어요. 섭리를 느꼈다고 해도 되는 거죠. 나의 방북이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나의 자리에 있었다면 옴짝달싹 못 하고 갔다 왔을 거예요. 난 요새 시대정신이라는 걸 느껴요. 이걸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학생들은 북으로 간다고 아우성이고,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기둥으로 치솟고, 황석영, 리영희 씨도 간다고 그러고, 나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경모 형도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렇게 되면 시기의 선택 같은 건 도도히 흐르는 대하(大河) 속 바위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더군다나 어제 신문을 보고 시기는 오히려 썩 잘 선택된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모 형은 북이 연방제를 제안했을 때, 무력 통일 포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했더군요.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해야겠죠. 통일원 장관은 별로 이에 동의할 생각이 없는가 보지만. 1960년 4·19 이후에 민주당 정부를 향해서 연방제 통일을 북쪽에서 제안하지 않았어요? 이건 사실 무력 통일을 실제로 포기하는 제안이었거든요. 4·19 때야말로 북이 무력 남침을 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무력 남침을 않고 연방제 통일을 제안했던 것 아닙니까? 그 후에 79년 12·12 때는 땅굴이 아니라 지상에 한 사단 병력이 지키던 공간이 텅 비었는데 남침을 안 했고, 80년 5월에도 안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80년 8·15에 연방제 통일을 통일의 완결체로 제안하거든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무력 남침의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면서 제안한 것이 연방제 통일안이니까 경모 형의 판단은 정확한 거죠. 요새도 안 선생님과 왕래가 있겠지요. 두 분이 만나면 나의 방북을 두고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세요? 편지를 주든지 한번 와서 이야기를 나누든지 하세요. 부인은 요새도 바쁘신가요? 호주에 가 있는 딸에게서도 좋은 소식이 오겠지요. 건강을 빌면서.   함께 방북했던 친구 정경모의 동생에게 그와 함께 방북한 것이 섭리라는 생각을 전함   

  • 시집을 추천해줄게요

    호근에게   난 이번에야 겨우 『토스카』가 어떤 작품인지 알았다. 난 귀가 나빠서 오페라를 가 보아도 음악이나 즐기지, 가사를 못 알아들으니까 줄거리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거든. 관심을 가져 봤자였다. 그러다가 이번 토스카의 줄거리를 읽어보고 이건 이태리판 논개구나 하고 무릎을 쳤단다. 성악가로서 은숙의 수명이 절정을 넘은 게 아닌가 싶어 몹시 마음을 쓰고 있었다. 건강 때문에.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게 드러나서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도 썼지만, 인륜이 천륜이요, 천륜이 인륜이라는 동양 철학이 그 둘은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는 서양 철학보다 바른 세계관이다. 그건 사람의 몸에서 확인되는데, 몸의 생리와 마음의 생리가 하나라는 말이다. 그것은 몸의 생리의 본질도 기쁨이요, 마음의 생리의 본질도 기쁨이라는 말이다. 사실 기뻐하는 것은 몸이거든. 마음은 몸의 기쁨을 몸이 인식하는 거라고 해도 되겠지. 몸이 기뻐하는 걸 기뻐하는 게 마음이라고 해도 되고. 그게 최근 의학계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으로 증명되었지. 엔도르핀은 기쁨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거든. 엔도르핀이라는 화학 물질이 몸을 기쁘게 해줌으로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마음의 기쁨이 엔도르핀이라는 화학 물질을 충분히 내게 해서 몸을 기쁘게 해 주고. 은숙이 백발이 성성하기까지 그 타고 난 목소리가 예술적으로 더욱더욱 원숙해지도록 네가 힘이 되어 주어야 해. 그것이 너에게 지워진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 아니겠니? 성경에 있는 탤런트 비유가 단순히 내가 받은 재능만이 아니라는 걸 지금 깨닫게 되는구나. 은숙이 성악가로서 더욱더욱 원숙해지도록 하는 책임도 우리의 탤런트가 된다는 말이다. 그 일은 은숙의 음악을 도와주는 일보다도 은숙의 건강을 보살펴 주는 일이 더 근본적인 거지. 그리고 그것은 은숙이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고. 그 점에 있어서 이번 은숙이 무대에 서던 날 점심에 네가 손수 스테이크를 구워 대접하는 그 심정이면 다 된다. 은숙의 음악은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해야겠지. 네가 전주에서 했다는 강연 재밌게 읽었다. 난 이미 대강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전주의 청중들에겐 퍽 신선한 충격이었겠지. 그걸 읽고 나서 서양 민중 음악사를 나의 『히브리 민중사』 정도의 책으로 만들어 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압하는 지배자의 가슴에 칼을 꽂은 토스카가 지배 계층이나 즐기는 음악으로 전도된 걸 바로잡는 책 말이다. 임진택이쯤 한국 민중 음악사를 자매 편으로 만나면 그 또한 좋은 일이고. 그런 음악사라면 나도 단숨에 읽을 거야. 서양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음악만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그릇된 음악관도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을 거고. 틈틈이 글을 써서 모으는 거지. 여기저기 기고도 하고. 나의 건강과 인생에 관한 책은 11월 중순까지는 초고가 끝나지 않을까 싶구나. 끝난 다음 다시 써야지. 첫 단계에 들어갈 것이 둘째, 셋째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고, 셋째 단계에 들어갈 것이 첫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고. 쓰는 가운데 새로 발견한 것도 있고 해서. 아무튼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책이 되지 않나 싶다. 기뻐해다오. 건투를 빈다.  아빠 씀   정성모 장로님   가슴 아프군요. 또 몸에 칼을 댔다니, 그 약한 몸에. 기어코 재기한다는 굳은 결의 좋습니다. 우선 마음이 병에 꺾이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 투지에 기쁨이 합세를 해야 합니다. 고요히 찬송을 많이 부르세요. 투병을 기쁨으로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상구 박사의 『한국인의 건강』이라는 책을 꼭 사서 읽으세요. 기쁨이 왜 건강에 절대적인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생수를 마시고 신선한 채소 과일 주스를 많이 마시고요. 손발을 주물러 주는 걸 생활화하세요. 아침저녁으로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발을 장딴지까지 담그세요. 약하진 기가 경락으로 활발하게 돌아가도록 해줄 테니까요. 기분 좋게 평상시보다 조금만 깊게 숨을 쉬는 것도 생활화하세요. 장로님! 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시란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게 없습니다. 진솔한 목소리면 됩니다. 뜨거운 애환에 찬물을 살짝 끼얹어 쓰는 겁니다. 좋은 시집들을 많이 읽으세요. 난해한 시들은 집어 던지세요. 고은의 『만인보』를 읽어 보세요. 신경림의 시들도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김규동 씨의 『깨끗한 희망』도 추천하고 싶군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또 창비사에서 나온 김장섭의 『겨울 달』도 지금 정 장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시집들이죠. 너무 시집이 많으면 중압감을 느낄 테니까, 한두 권 사서 읽고는 또 한두 권 사서 읽는 식으로 하세요. 고은의 『만인보』는 한 권만 읽으세요. 시란 읽고 읽고 또 읽을수록 좋으니까 시집에 치이지는 마세요. 시상이 떠오르거든 적어 보내 주세요. 내가 도와 드릴 테니까. 몸을 잊어버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으니까, 시의 세계에 푹 빠지는 게 좋지요. 또 하나,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 장로에겐 지금 약해진 기를 도와주는 게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밖에 있다면 해드리는 건데. 동경 형님께 전화할 일이라도 있으면, 나는 아주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고, 그리고 창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전해주세요. 정 장로와 자주 글을 주고받는 기쁨을 맛볼 것 같은 기대에 난 지금 가슴이 부풀어 있어요. 내 시집들 가운데 가지고 있는 게 무언지 집에 알려주고, 없는 걸 보내 달라고 하세요. 정성모의 시들을 기다리면서. 안동에서 익환 1991.10.31    아들에게는 서양 민중 음악사를 쓸 것을 권유하고, 정성모 장로에게는 건강을 걱정하며 시를 쓸 것을 권유하는 편지 * 정성모: 문익환과 함께 방북했던 정경모의 동생  

  • 아랫물을 맑게 함으로 윗물을 맑게 하는 민주주의

    당신께   여기서 지내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언제 시간을 내서 쓰기로 하고, 어제오늘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것 두 가지를 우선 적어야 하겠구먼요. 어제 아침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장을 읽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하느님의 지식에 도달하고 보면 그 지식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제일 큰 게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군요. 오늘 아침에는 예레미야서 8장을 읽다가 “아무리 귀를 씻고 들어 봐도 당연히 할 말을 하는 놈 하나 없다”(6절)는 말에 이르러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어요. 이철용 의원의 유명한 하느님 정의가 얼마나 정확하냐는 걸 확인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하느님이 뭐야?”, “하느님은 양심이야”, “양심은 뭐야?”, “양심은 상식이야”라고 한 그의 명담.  그러기에 우리는 대단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예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든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든지, “과부라야 과부 설움 안다”든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든지 이거 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소? 그러고 보니 속담 책을 읽어 보고 싶어졌군요. 이기문 씨의 『한국 속담 연구』를 사 들여보내 주세요. 지난 16일 자 「한겨레 신문」을 보면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을 정말 실감할 수 있었군요. ‘현대정공 등 기업, 병원, 정부 연구소 125곳 폐수 쏟아 상수원 오염’(11면) 이거 정말 무서운 이야기군요. 이것이 어찌 당연한 이야기일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 당연 앞에 ‘지(至)’자가 붙어 지당한 말씀이 되면 당연의 변태가 되기 일쑤거든요. 그리되면 “밀고는 미덕이다”라는 말도 지당한 말씀이 된단 말이죠. 당연한 건 어디까지나 그냥 평범하게 당연해야지, 그게 ‘지’자로 강조되면 당연의 모욕이요, 부정이 되는 거죠. 과불급(過不及)이란 이걸 말하는 거죠. 105=95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말이죠. 100이어야 하는데 5 지나친 것은 5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거든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도 그런 데서 생기는 거죠. 공경하는 것도 당연하게 알맞게 해야지 지나치면 욕이 된다는 말이죠. 말끝마다 “위대한 수령”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평양에서 정경모 씨가 하던 말이에요. 예수가 참사람이라는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군요. 그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누구나 당연히 품어야 할 마음을 지니고, 해야 할 생각, 말,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신 분이라는 뜻이겠지요. 그의 사랑도 뭐 유별난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니고 행동해야 마땅한 사랑이었다는 말이죠.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가셨으니까 한 지아비로서 지어미를 사랑하는 당연한 사랑의 길을 살아 보이지 못했지만, 아들로서, 형제로서, 벗으로서, 민중의 하나로서, 사회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사람이면 당연히 살아가야 마땅한 그런 삶을 살아 보이신 거죠. 당연, 그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인 거군요. 이웃을 위해서, 겨레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몸을 희생의 제단에 바치는 것이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거죠. 남이야 죽든 말든 저만을 위해 사는 것이 결코 사람으로서 마땅한 삶일 수 없다는 거거든요. 오늘 「한겨레 신문」에 농촌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사진과 이야기,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과 눈물겨운 이야기가 한 면 가득히 실려 있지 않아요? 다른 데는 장세동의 사진도 크게 실려 있어요. 여기서 사람으로서 당연한 삶을 사는 건 장세동이 아니라 농촌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라는 말이죠. 당연한 상식이 꼭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 일도 있군요. 앞에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들어 당연한 인간사를 표현한 거라고 했는데, 인간사에는 그런 면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면도 있거든요. 인류의 정치사에서 윗물이 맑아 본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권좌의 윗동네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걸 가리켜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민주주의의 길은 아랫물을 맑게 함으로 윗물을 맑게 하는 길이 아닐까요? 무슨 그런 억지 논리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그게 마냥 억지 소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아요? 푹푹 썩어가는 혼탁한 이 사회를 맑게 하는 샘물줄기는 청계천에서 터진 거거든요. 전태일과 그를 따르는 젊은 노동자들의 함성이 이 사회를 맑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삶이 당연한데, 그걸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알고 살아가는 데 인류의 구원, 사회의 구원이 있는 거죠. 오늘은 이만.    늦봄 1989. 7. 18.   성경을 읽고 예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현  

  • 젊은 전과자가 쓰기를 강요하는 소설

    당신께    이달도 다 가네요. 교도관들도 오늘로 겨울옷으로 바꾸어 입었고, 슬슬 겨울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의 의젓한 모습이 내 방에 조용히 들어서더군요. 너무 반가워 손을 덥석 잡았지요. 어찌나 생시 같았던지, 눈을 뜨고 싶지 않더군요. 생시가 아니라 꿈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랄까? 학생 시절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말없이, 발걸음조차 사뿐사뿐 소리 없이 옮기는, 그 육중한 몸으로, 고요하기만 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큰일을 해냈고, 아직도 해내는 것이 그리도 믿음직스러웠죠. 대견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 꾹 참고 믿음직스럽다고 썼죠. 대견스럽다고 하면 너무 얕보고 어리게 보는 것 같아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생각지도 않던 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노자•장자는 無爲를 말했죠. 낙동강이 해마다 범람해서 수많은 수재민을 내던 이야기는 요새 젊은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죠. 그걸 막으려고 여기 댐을 만든 건데, 그 물로 논에 물을 대어 좋구요. 그런데 그게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네요. 그 덕에 여기는 아침이면 안개가 짙거든요. 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일조권이 침해를 당하는 셈이죠. 요새 골프장 인가를 남발해서 국회 국정 감사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 골프장에 비하면야 여기 댐이야 건설적인 거라고 해야 하겠지만. 부시가 한국에서 핵무기를 거두어 가겠다고 발표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민족적인 수모감마저 느끼게 되는군요.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들여왔다가는 내가고 하는 것도 우리의 주권이 유린당하는 일로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한반도의 핵 문제는 우리 정부 주도하에 처리한다고 정상 회담에서 약속해 놓고는, 또 저희가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는 거, 이거 정말 참을 수 없는 수모가 아닐 수 없군요. 그게 만일 노 대통령 유엔 연설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주체적인(?) 태도 표명이 있기를 기다리다가 그게 없으니까 노 대통령이 미국을 떠나기도 전에 그런 발표를 한 것이라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지만요. 아무튼, 한반도의 비핵지대화가 이루어질 모양이니, 천만다행한 일이군요. 이번 미국의 조치가 이제 군수산업으로 나라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본격적인 군축 경쟁에 나선 일이라면, 인류의 이름으로 축하해도 될 일인데, 과연 어떤 것인지?   윤정모님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진정 고맙습니다.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선생님 생각할게요. 하나 아쉬웠던 건 편지 속에 다만 몇 자라도 적어 넣어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선생님 목소리야 작품을 통해서 늘 듣고 있기는 합니다. “빛”,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창비에 연재하는 “들”, 정말 좋군요. 리얼리즘 문학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기쁩니다. 당분간 농민 소설을 계속 쓰실 모양이지요? 기대가 큽니다. 저는 미술 앞에 서면 글자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지고는 한데, 소설을 읽으면서는 시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한계가 탁 터지는 것 같이 속이 시원한 걸 느끼면서, 글자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도 신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가지게 됩니다. 소설 쓰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우리 시인이라는 인종은 게으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선생님이 농민 소설을 쓰려고 얼마나 뛰어다녔을까요? 자료들을 수집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요? 박경리 씨가 『토지』를 쓰려고, 조정래 씨가 『태백산맥』을 쓰려고, 송기숙 씨가 『녹두 장군』을 쓰려고 10년 ~ 20년 준비하지 않았어요? 시인에겐 그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저도 소설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준비한다기보다는 그놈이 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군요. 78년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꿈으로 내 앞에 다가선 젊은 전과자가 저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빨리 내 이야기를 써주세요”라는 소리를 이제 더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될 겁니다. 완성되는 날 우선 우리 윤정모 님께 보여드리고 평을 받아야지. 그 이야기를 쓰려니까, 신문도 뒤져야 하고, 전과자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텐데,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 건가? 역시 나는 소설가가 아니고 시인으로 남아 있어야 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의 “들”을 1, 2는 못 읽었어도, 3, 4만 읽어도 좋군요. 재미있다는 말은 농민들을 모욕하는 말 같아서 좋다고만 표현한 겁니다. 많이많이 써주세요. 늦봄    또 다시 당신께   『옥중 일기』 미국에 있는 서승 씨, 일본에 있는 (민)향숙이, 정경모에게 보내도록. 송우혜 『홍범도』 이야기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완성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화 한 통 부탁. 건강해야 한다고도. 편지 한 장 보내주면 억시게 좋아할 거라는 말도. 북간도 갔던 이야기는 내가 나가서 들어도 되겠지요. 동거우 샘물을 두고 나도 시 한 편 쓸 정도로 가서 마시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는데, 동환이도 흙을 헤치고 그 물을 손으로 움켜 먹을 만큼 그 샘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군요. 어쩌면 그 샘이 나와 동환의 가슴에서 계속 맑게 솟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오늘은 이만.  당신의 늦봄 1991.09.30    아내에게는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을 꿈에서 만난 얘기를, 소설가 윤정모에게는 그의 소설을 읽고 느낀 점과 자신도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