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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문익환』 2025년 10월호(ISSN 2951-2115 eISSN 2951-2123)

    아카이브 기반 콘텐츠 제작단 '콘텐츠플러스'가 기획·제작하고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에서 사료제공 및 제작을 지원하여 발간한 『월간 문익환』 2025년 10월호(통권 32호, ISSN 2951-2115 eISSN 2951-2123). '작은 박물관'를 주제로 작은 것이 가진 큰 힘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편집장의 커버스토리>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문익환 목사님의 말처럼, 작은 박물관들이 모였을 때 각각의 외침이 뭉쳐 큰울림이 되었습니다. 8개의 박물관은 조금씩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만, 식민지배에 맞서고, 독재에 저항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온몸으로 저항한 피맺힌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없었다면 그저 평범했을 사람들. 하지만 일상이 무너지고 시대에 휘둘린, 그리하여 작은 박물관에 남겨진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들의 ‘한’의 조각들이 결국 오늘날 우리를 면면히 이어준 씨줄과 날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역사의 교훈. 작은 박물관을 순례하며 얻은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목차> ▲작은 박물관 스탬프투어 <2-3면> ▲[현장탐방] 5.18묘지와 전남대 순례 <4-5면> ▲[2025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 칼럼] 김사강 <5면> ▲[늦봄의 말과 글] ‘큰 어둠, 작은 빛’ <6면> ▲[보존연구실 601호] 작은 아카이브의 출발 <7면> ▲[늦봄의 서재] 김남주 『사랑의 무기』 <7면> ▲[나와 늦봄] 이현아 숨 부여교회 목사 <8면>   [🔗pdf 다운받기]  

  • 19920522 [호근] 광주항쟁 기념행사도 열지 못하는 민예총

    5월 22일 352신 아버님께 광주항쟁 기념 주간인데도 민예총에서는 아무 행사도 꾸미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읍니다. 우리 운동의 지도부들이 사업 배치의 균형을 이렇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그러던 차에 작가들은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심정에서 작가회의 청년위원회 주최로 조촐한 5월 문학의 밤을 열었습니다. 참 한심하드군요. 돌이켜보면 2년 전 항쟁 10주년 기념 때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적어도 만여 명 관중과 함께 시와 노래로 소리 높혀 기리던 그 광주가 어째서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일인데도 기껒 40~50명 문학인들의 풀죽은 목소리로 변해 버리고 말았는지요. 이기형, 김남주의 낭송 조차도 빛을 잃고 자신감이 보이지 않고..., 오직 광주에서 올라온 고규태의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광주가 소멸되어 감을 일깨우는 소리만이 귀에 남을 정도일까요? 단 한 사람의 내객도 없는 이 광주항쟁 기념 문학 행사에서 읽혀진 성명서는 5공 주역과의 화해를 규탄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성명서가 국민 대중의 귀에까지 전달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뒷풀이에서, 김명식 시인의 섭섭해하는 말과 박용수 선생의 온 몸을 흔들어내는 "노래", 그리고 몇 잔의 술로 그날의 행사를 마감했습니다. 균형 감각, 그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당대 대중의 관심의 흐름에만 따라다녀서는 절대 안됩니다. 대중의 표면적인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마음 속에는 간직되어 있는 법, 그 하나하나를 지도부는 늘 살펴주어야 합니다. 대중 스스로는 잊고 있더라도 그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간결한 주기도문은 빠질 것 없이 꽉찬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이만 쓰겠습니다. 맏이 드림  

  • 19920612 [호근] 지선과 가까워진 것이 이번 여행에서 즐거운 점

    아버님께. 6월 12일 373신 12일 광주에서의 "평화실현 학생연맹 발족식"은 초라한 행사였습니다. 광주 5개 대학(이 중 셋은 전문대학) 발의로 구성된 이 "연맹"은 통일을 향해가는 과정상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평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활동해 나가자는 취지인데, 반전, 반핵, 민족자주의 성격을 강하게 띄는 것이었습니다. 지선을 위시한 몇 사람 어른들의 격려사에서 모두 학생조직의 분열, 중복 내지는 혼선을 염려하고 있었고, 이를 의식한 듯 남총련 의장이 나서서 지지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광주 운동권이 지자제 실현을 위한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전남대에서는 시험이 겹쳐 있는데, 학생 1~2백 명 모여서 시작되는 이 "연맹"이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아직 "평화"라는 주제가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선도적으로 부각시켜 내려 한다거나, 전문대생들을 보다 대중적으로 조직해 내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선과 가까와진 것이 이번 여행에서 즐거운 점이었습니다. 행사 후 몇몇 문화 관계 인사들과 술자리에 같이 앉게 되었거든요. 따져보니 46년 같은 개띠였습니다. 우리 시대 같은 개띠들, 김남주 윤정모, 김용태 등등과 "개판"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는가 얘기하고 웃었습니다.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당과도 연대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연합을 하면서 너무도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끝내 분열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해 이제는 거의 짜증스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지요. 전국을 좁다고 뛰어다니면 열정적으로 대동단결을 외치는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광주를 떠나기 위해 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서 광주 가로수의 잎을 몇 개 따서 주머니에 넣고 왔는데, 이렇게 보잘 것은 없지만 편지에 보냅니다. 어머님이 꽃을 눌러서 아버님께 보내드리는 마음이 이제 이해가 되는군요. 광주의 희망을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건강하시기를 맏이 드림

  • 19920809 제주에서의 통일 열기

    당신께 제431신 1992. 8. 9(주일) 오늘 성일을 잘 지내셨어요. 정말 처음으로 주일을 길에서 지내게 되었군요. 아침을 제가 대접을 하고 김남주, 안치환, 유금심, 김영남, 노태훈, 저 여섯 사람만 제주도로 떠났읍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구름, 섬들이라니 정말 꿈같이 아름다웠읍니다. 제주대학에 당신과 같이 갔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유엽도가 빨갛게 핀 길을 지나서 제주대로 갔읍니다. 김 시인의 친구분이 저를 희숙 님 집으로 인도해 주어서 반가히 만나고 제주시 연동 252-4 양충헌 장호연 아들 양석민 양석진 딸 사위 아들들 만나서 사랑을 많이 받았읍니다. 모두가 성당에 나가면서 아이들은 미사를 드리는 일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그 집 차로 희숙 님과 같이 공연장으로 갔읍니다. 멀리 떠러저 있는 곳인데도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통일 열기를 더해주었읍니다. 제주에서 준비를 하고 우리 쪽에서는 순서를 돕는 형식이었는데 신나는 한마당이었읍니다. 문 목사가 문익점 선생 25대손이라고 하였더니 모두 웃으며 재미있어하더군요. 이야기하고 노래 부르고 호근이가 안 와서 당신이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노래를 직접 듣고 또 치환 님도 그 곡을 불렀읍니다. "그대 오르는 언덕"은 예쁜 여학생이 불렀읍니다. 뒷풀이까지 하고 12시에나 희숙 님과 사위와 같이 집에 도라와서 석진이 침대에서 하루밤을 쉬었읍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당신을 생각하며 제주도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를 꿈속에라도 선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빌겠읍니다. 용길 드림

  • 19920119 박순경 박사 설교 듣고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낌

    당신께 제229신 1992. 1. 19(일) 오늘 교회에 가서 박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어려운 일들을 한번도 어렵다고 말하지 않으시는 당신 생각을 하면서 착잡한 시간을 지냈읍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 이겨나가시지만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합니다. 일찍 집에 도라와서 어제 온다던 "새누리"를 기다렸는데 그동안의 기사들과 편지들을 다시 뒤적이게 되었지요. 방매륜선생과 통화하고 다행이" 뜨거운 마음"과 261장이 있어서 보내기로 했읍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니까요. 박 박사가 당신께 보내드리는 편지를 오늘 보내드리지요. 저녁에 은숙이가 "해피앤딩" 이라는 영화를 가지고 와서 보는데 당신이 좋아하시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앳된 모습으로 나와서 반가웠읍니다. 성수가 중고등부 부장을 맡았는데 일찍 교회에 나가서 참여하고 교인들의 자녀들이 본교회로 나와야 된다는 것도 지적하면서 광고말씀을 잘했어요.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읍니다. 동봉할 것 때문에 호근이 편지 여백을 실례, 오늘 예배 잘 드리셨겠죠. 안녕하세요. 영미가 제 옆에 앉아서 예배드렸어요. 용길 [장남 문호근의 편지] 아버님께 1991. 1. 20 박순경 박사님의 설교가 좋았습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게 만드시는 분이기는 한데, 그 정직함, 순결한 정직함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분을 대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에 반하여 희망한다"는 내용, 글쎄요. "안 될 줄 알면서 희망한다."고 풀어야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이 예수에게로 와서 완성되고, 그것이 한민족의 단군에게로, 민족을 위한 선열들에게로, 또 오늘날의 어머니들에게로 똑같은 신앙이(또는 의미가) 넘어온다는 말씀은, (어딘가 선뜻 이해되기 어려우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전우주적으로 보게 하는 단서라고 할까요? 이건용이가 어렵게 어렵게 민족음악협의회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저와 공동으로 맡으려다가 회원들의 반발로 (저에 대한 반발) 이건용이 단독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부분적으로 섭섭한 뜻이 좀 있습니다 우선 회원들이 제가 그동안 해온 일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못함에 대한 섭섭함이요. 민음협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맘대로 못하게 됨에 대한 섭섭함입니다. 그러나 이건용이 그동안 어느 정도 기회주의적으로 활동해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민족음악"건설에 나서 주었다는 것이 고맙고, 기쁘고 합니다. 그리고 민음협을 위해 순수하게 뛰는 몇 사람의 동지를 재발견한 기쁨이 큽니다. 저는 이제 민예총, 민음협으로부터 상당히 자유스러워져서 "제일"을 해 나갈 수 있게 됨도 기쁘고요.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의 후원, 협찬으로 한국음악극연구소의 시낭송연구모임(공연)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고은의 "조국의 별",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 정희승의 "저문강에 삽을 씻고",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신동엽의 "금강"(또는 신경림의 남한강) 이렇게 다섯 시집을 대상으로 하여 2월10일부터 5주간, 매주 월요일 저녁에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연습에 들어갑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산맥을 향한 오솔길에 첫발을 내디디는 기분입니다. 즐겁고 보람있는 나날이기를 기도합니다. 맏이 드림  

  • 19900217 8번 버스 타고 총회 열리는 연세대로

    당신께 제280신. 1990. 2. 17(토) 오늘은 견우직녀처럼 만날 수 있었군요. 당신을 뵙고 도라오는데 총회 시작시간까지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안 박사님께 들렀었지요. 2층으로 쉬라 올라가셨다고 하여 당신께 면회가실때 뵙기로 하였지요. 박 선생이 "지금도 매일 편지 쓰시죠?" 하며 봉투와 이 편지지를 주시는군요. 초대를 받고도 시간때문에 못 가니까 미리 들른 거지요. 8번 bus로 연세대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군요. 총회에는 대전, 전주, 광주, 원주, 부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회의장을 가득 메웠는데 이것은 그만큼 많이 들어가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당신이 아프신 덕에 시작된 환자들의 문제가 실제로 사례보고에 나오게 된 것이 큰 성과인데 앞으로 치료 문제에까지 손이 미쳐야 되겠지요. 저는 개회선언을 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소선 여사는 아주 연설가가 되셨어요.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 많으신 까닭이겠죠. 오늘 서준식 님은 딸을 얻으셨고 김남주 시인은 한 달전에 아들을 보셨는데...제왕절개로...너머 찾아볼 데도 많으니 다- 못 다니겠어요.광주분들이 다음에 면회가신다고 합니다. 시원이 네 돐이여서 의근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두고 영금이와 도라왔읍니다. 차성환 군은 장가를 들었지요. 그 어머니께서 특별문안을 하십니다. 그럼 오늘 밤도 편히 쉬시고 성일을 맞으십시요. 어머님께 전화로 문안드렸읍니다. 용길

  • 19860704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열린 민족문학의 밤

    당신께 1986. 7. 4 오늘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고 1500명 인사가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 목사님, 배준목, 오복림 권사, 정경희, 박순덕집사 *심방 오심* 오늘 저녁에는 민족문학의 밤이 오래만에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열려서 갔다 왔읍니다. 김병걸 교수님의 "구원의 문학” 이란 강연이 있었고 성내운 교수님은 김남주 시인의 시를 암송이 아니라 낭송을 하셨읍니다(교육, 어머니) 전에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참석했던 일을 되새겼읍니다. 형린 할아버님네 할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오셨다고 전화가 왔었는데 주일에는 만나 뵐 수가 있겠지요. 초대면인가? 합니다. 제직회가 있는데 점심 대접하고 오후 교회로 가려면 좀 바쁘겠읍니다. 몇일 못 만나 뵈었는데 어떻게 지내십니까? 독서, 요-가 운동, 명상, 편지쓰기, 아직은 독서의 계절은 아니지만 당신만은 독서의 계절을 맞으신거죠, 뭐 서대문 쪽으로 안가니 무엇 하나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인데 주일 지나 책 넣으러 가겠어요. 부디 안녕 용길

  • 19860730 김포공항에서 시댁 식구 전송

    당신께 1986. 7. 30 어머님 모시고 김포공항에 갔읍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머님께 햄버거와 커피를 대접했읍니다. 당신과는 대면 못한 앤드루와 폴, 엄마 이모, 외할머니를 전송하고 시간 때문에 일찍 도라왔읍 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담은 모임을 가지려다가 ····· 그래도 저는 힘껏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합니다 4.19 묘지에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잡아채듯이 얼얼한 뒷맛이 오래 가시지 않았읍니다. 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전연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전혀 모르고 있고 하는 것을 느꼈읍니다. 오늘 하루의 가지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당신의 반가운 글월과 신문을 뒤적이다가 잠이 듭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용길 [시 필사 <길> 김남주] 길 길은 내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을. 이 길의 길이 와 길이를 이 길의 역사를 나는 알고 있다 이길에서 어디쯤 가면 비탈로 바위산이 있다 이길어디쯤가면 가시로 사나운 총칼이 있다 이길 어디쯤 가면 여기가 너의 장소 너의 시간이다 여기서 네 할일을 하라! 행동의 결단을 채찍질 하는 고독의 검은 섬이 있다. 하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언젠가는 누군가는 이르러야할 길 가자. 가고 또 가면 이르지 못할 길이없나니 가자 이 길을 가고 오지 말자 남의땅 남의것으로빼앗겨 죽창들고 나섰던 이길 제나라 남의것으로 빼앗겨 화승총 들고나섰던 이길 다시는 제 아니가고 길만 멀다 하지말자 다시는 제 아니가고 길만 험타 하지말자 주려 학대 받은자 모든 것의 주인 되는길 오 해방이여! (김남주)

  • 밤이 깊어 간다

    아내의 편지마저 없는 신문 없는 날 김남주의 「사랑의 무기」를 이열치열삼아 읽으며 옆 옆 옆 옆 옆 옆 옆 옆 옆 방 아홉 사람 열 사람씩 들어앉아 땀을 흘리는 스물세 찜통을 생각하며 상대적인 더위를 견디다가 식구통 열고 그 앞에 드러누우니 이건 에어컨 저리 가라구나 멀리 열차 지나가는 소리에 밤이 깊어 간다 새벽을 향하여 <1989. 7. 31.>

  • 늦봄 故 문익환 목사님 겨레장에 부쳐

    김영환이 문익환 목사의 겨레장을 위해 지은 추모시 <우리가 늦봄이 될께요>. 그동안 그가 행했던 일들에 대한 회상과 자신이 그의 죽음을 듣고 행한 일들과 느낀 기분에 대하여 적혀 있음 우리가 늦봄이 될께요 -늦봄 고 문익환 목사님 겨레장에 부쳐 김영환 목사님 지금 어디쯤 계신가요 삶의 끝, 죽음의 언덕 위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가요 그토록 보고 싶던 금강산 두만강 다 보이시나요 말 달리던 북만주 벌판, 용두레 우물가 밤새 소리 그대로인가요 푸른 숲길, 맑은 시냇가 거닐고 계신가요 윤동주, 장준하, 전태일, 성래운, 조영래, 김병곤 형 모두 나와 반겨 주셨나요 6월 항쟁 때 연세대 이한열 장례식에서 애절하게 부르시던 열사님들 모두 함께 계시고요 이름 없이 해방의 길 쓰러져 간 독립군들, 의병들, 농민군들, 광주 영령들 모두 만나보셨나요 목사님 지금 훠이훠이 어딜 가고 계신가요 "가슴이 아파, 가슴이 답답해"하시더니 이제는 편안하신가요 "통일은 다 됐어. 통일 맞을 준비를 해야 해" 밤잠 설치시며 숨가쁜 나날들 하루같이 일구시던 목사님 죽음의 문 활짝 열고 삶과 죽음 통일하셨나요 꼿꼿이 서서 훌쩍 죽음의 출렁다리 건너가신 목사님 참으로 당신답게 훌훌 털고 가신 건가요 당신은 알고 계셨지요 다가오는 죽음, 얼마 남지 않은 이승에서의 삶 그래 부랴부랴 통일맞이 준비하신 게지요 종로3가 사무실 마지막으로 열어놓고 가신 게지요 나머지 몸에 남은 기 김남주 시인께 넣어주시고 지금 그곳에서도 쉬지 않고 남주 형 살리려고 생명의 침 놓고 계시지요 "남주가 살아날 것 같애, 남주가 살아날 것 같애" 목련꽃처럼 부시게 웃으시더니 먼저 가셨군요 통일맞이 40대 실무자 구하셨구요? 북쪽이 가진 자주성과 남쪽의 민중성을 결합하면 "통일조국 멋진 나라, 멋들어진 민중의 나라가 될거야" 하시더니 모세처럼 통일의 그날 저 앞에 있는데 못 보고 가셨군요 아니 그곳에서 보시려고 높이 올라 터잡고 계시지요 구름 한 점 없는 차가운 밤이었어요 목사님 떠나신 그날 밤 "민족의 별 하나가 떨어졌다"고 택시 기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나뭇가지조차 헐벗어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요 며칠 동안 당신 없는 밤과 낮은 눈물로 보냈습니다 당신 없는 도시에 햇살이 나리고 우리들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땅도 치고 소리도 지르고 가슴속에 화톳불 잠재우려 쓴 소주도 털어넣어 보았지만 가슴을 훑는 이 외로움 가눌 수가 없더군요 목사님 계신 군부독재 시절이 차라리 그리워집니다 목사님 함께 계시다면 지나간 분단의 시절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잠들던 교도소의 그 먹방 검정 이불이 그리워집니다 목사님 따뜻한 손길 등에 토닥토닥 나리던 저임금,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봄이 왔네 봄이 왔어 부르시며 어깨춤 추시던 그 가난의 밤, 후미진 솔밭집 풋고추, 된장찌개가 좋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의 가슴에 박힌 사금파리 뽑아주시고 손 꼭 잡아주시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민통련 시절 걸핏하면 연행,투옥,연금되던 그 지긋지긋한 지난날이 당신 없는 지금 그리워집니다 대통령 선거 패배의 그날도 그립습니다 구로구청 포연이 쌓인 그 부정선거 싸움터 이제는 두렵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 고통스런 지난날조차 당신이 계셨으므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나의 꿈 나의 희망, 우리들의 행복이 모두 당신을 딛고 서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우리는 당신이 누워 죽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당신을 우리는 북한산 인수봉으로만 알았습니다 눈보라 비바람에 언제나 도시 한편에 웃고 서 있는 아니 그저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天池인 줄만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남과 북이, 노인과 아이가,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왜 모두가 조국의 흙이 되고 왜 모두가 조국의 들풀이 되고 왜 모두가 조국의 꽃씨가 되어 한라산으로 백두산으로 묘향산으로 다니는지 천둥처럼 일깨워주셨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보십시오. 한반도에 흐르는 통곡 소리를 남과 북에 나부끼는 輓章과 한숨 소리를 마른 나뭇가지 헐벗은 풀잎조차 길가에서 떨고 있습니다 어제는 지리산 피아골에서 언 땅을 뚫고 얼음버섯이 솟아올랐답니다 그 대밭에서 나뭇잎 심하게 떨고 있었고요 오늘은 오대산 하진부리 방아다리 약수터 가는 길 고구려 장수 닮은 나무가 새벽녘부터 잡목 더불고 심하게 떨고 있답니다 누가 그러는데, 목사님 묘향산 단군굴에 이끼들이 파랗게 일어나 앉아 있다 합디다 강물들도 아침부터 바다로 모이기로 했답니다 오늘 목사님 우리 곁 떠나 겨레의 큰 길 가시는 날 단숨에 죽음을 넘고, 단숨에 분단을 넘고, 단숨에 분열을 넘고, 단숨에 노쇠한 심장 벗어버리고 통일 기관차 갈아타기 위해 멀리 떠나시는 날 북한강가 모란공원 양지바른 곳 옷가지 육신은 흙 속에 묻고 훨훨 날아다닐 그 계획으로 벌써 마음 바빠지셨지요 벌써 목사님 계신 그 동산 웃음꽃 피셨지요 밤마다 민주 영령들 모여 도란도란 우리 얘기 하실 거죠 소리 없이 축구 시합 응원하듯 민주주의 응원하실 거죠 통일 열어제껴라, 통일 열어제껴라 박수 치실 거죠 분열하는 우리, 돌아앉는 우리 두 손 끌어다 맞잡게 하실 거죠 소외된 이웃들 따뜻하게 감싸안으려고 뵈지 않는 손길 우리에게 보내주실 거죠 이제는 과로도 심장마비도 교통체증도 없는 세상에 가셨으니 얼마나 바빠지실까 목사님, 우리 문익환 목사님 우리가 이제 늦봄 될게요 목사님께서 윤동주 시인 장준하 선생님 길 가셨듯이 목사님 우리에게 윤동주예요 목사님 우리에게 장준하예요 목사님 열어제낀 그 길 내쳐 우리가 가겠어요 민주주의 완성의 길, 통일 조국의 길 더욱 뚫고 넓혀가겠어요 봄과 여름 사이 우리도 지지 않는 꽃이 되겠어요 풀이 되겠어요 목사님처럼 조국의 흙이 되고 그리하여 역사가 될게요 목사님 남겨주신 眼球 칠천만 겨레가 박고 초롱초롱 살아가겠어요 저기 가고 있는 아이를 보니 거기에 목사님 계세요 가끔 입맛 다시며 싱긋이 웃는 창 밖으로 폐타이어를 두른 다리 잘린 사람이 동전 바구니를 들고 기어갑니다 누가 그의 찬 손을 감싸쥐네요 아 저 손, 목사님 손이에요 들녘의 억새풀 하나 낙엽 한 잎 늘어뜨린 겨울나무 가지들 내리는 저녁 햇살 모두가 목사님 몸짓 아닌 것 없네요 이제 됐군요 우리 모두 당신이 될 것 같네요 목사님 놓아주어도 되겠군요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목사님 평안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