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뉴욕 대학생 총회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동환에게 숨 맥히는 듯한 공기 속에서 조국 재건을 위해서, 교회의 사명 완수를 위해서 싸우는 이들의 푸로필이 Film처럼 지나간다. 그동안도 나라에도, 교회에도, 집에도, 친구들 중에도 다 별고들 없는지? 15일, 17일 두 번 편지는 22일 한거번에 받았다. 이번 편지에는 교섭이 성공 되었기를 기대하고 있다. Board Smith씨에게 귀환 여비를 좀 도아 달라고 청원했더니, 현지 선교부의 청원 없이는 안 된다는 거절 편지가 왔다. 어제는 New York에서 대한인 학생회 정기 총회가 있다고 해서 경연 군을 만나고 싶고해서 박 목사와 가치 올라갔다가 밤 늦게야 돌아왔다. 철손, 경연 군은 오지 않았고. 김준성 선생만은 만나서 오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어찌나 파리해지고 늙었는지 참으로 놀랐다. 젊었을 때의 불꽃이 튀는 듯하던 눈도 어두운 색 안경을 낀 빛을 잃은 무기력한 눈이었다. 오는 일년은 기어히 PH.D를 마쳐야겠기 때문에 학생회 회장을 사퇴하시고 New York에서는 없어지겠다고. 지금 옛 글씨쳬로 가루쓰기 Typewriter 인허를 정부에 청구했는데 그것만 되면 아마 괜찮을 모양. 오후에는 Metropolitan Museum에 들어가서 약 세 시간 반을 구경했는데 참으로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 만큼 유익하고 훌륭한 것이 많았다. B.C. 3000년 전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동서양의 모든 역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호흡할 수 있었다. Azsyria 궁궐 앞에 있던 사람 머리, 짐승 몸 가진 석상을 통과해서 4000년 전 애굽의 고분 속에 들어가서 미-라를 구경하는 것 등. 퍽 감격적이었다. 앞으로 좀더 공부해 가지고 하루 품내서 자셰히 보고 싶다. 박 목사는 Emperor state Building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서 어린애처럼 떼쓰는 것을 Museum으로 갔더니 박 목사도 퍽 감격했었다. 김준성 선생의 보고대로 지낸 일년 동안에는 참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건너왔다는 것은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배표나 비행기표는 G.I로 살 수 있는지를 잘 알아 보아라. 아현동에는 양 씨의 $100_00을 보낸다고 편지를 했다.(집으로) 그동안 $70은 Chesan에 넣었고, 소포(셋)근 약 $70 먹었기 때문에 엄에게서 온 것은 남을 것이 없고. 여비 중에서 여유 있다고 생각된 것은 Board에 다 도루 바친 셈이 되어 버렸고, 모든 것이 예상과는 달라졌다. Scoville 목사의 $350_00와 양에게서 온 것 중에서 $50_00 해서 $400_00을 보낸다. 더 필요한지, 지금 우편국에서 목강영삼랑(木岡英三郞) 선생을 만났다. 오늘은 기숙사마다, Club마다, 교실 Buletin Board에 조선 두 신학교의 사진으로 번창하다. 어찌나 기뿐지 조신 앞에서 찍은 사진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 보았고 사무실에서 찍은 중에서는 장하구, 박봉랑, 김관석 등 그리운 얼굴들을 보았다. 며칠 전 하루 갑자기 추었는데 박 목사와 나만 Coat 없이 Club에 갔더니 Club의 President가 자동차로 데리고 가서 $40_00짜리 Coat $3_00짜리 장갑 한 벌식 사주어서 어찌나 미안한지. 만주서 가지고 나온 Coat가 40000원이면 60000원은 갈 것이다. 지난번 창세기 일장 Hebrew 시험도 만점을 맞아서 이기양양 시험은 12월 10일부터 시작인데 벌서 한 학기가 다 지냈구나. 이렇게 가면 2년도 어느새 지내는지 모르고 지낼 것 같다. 지낸 목요일은 Thanksgiving day 였는데 California 친구들 dinner에 손님으로 박 목사와 가치 가서 Turkey 등 dinner를 대접받았고, 저녁에는 중국 선교사의 아들의 가정에 중국 목사와 가치 초대를 받아서 Aeyslu를 먹었다. 이 사람은 Pyengyang에서 Highschool을 마치고 지금 English Bible Teaching Fellow로서 퍽 좋은 사람이요, 그 부인은 남장로교의 선교사의 딸로서 조선말을 좀 하는 사람이다. 그적게는 처음으로 밤에 몸이 좀 얼었고, 오늘 처음으로 눈이 온다. 나무잎은 대개 다 떨어졌으나 잔디가 그대로 푸르고 있으니, 퍽으나 조선보다는 더운 모양이다. 호근의 돌날에 수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었으니, 퍽으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제 저녁에는 조선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서양 음식에 비해서 원시적이요 거칠어서 부드러운 음식만 먹던 배가 탈이나 날 줄 알았더니 무사하니 안심이다. 지지미, 김치 등 마음 놓고 잡수시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려라. 사실 혼자서 좋은 것으로 잘 먹고 지내니 늘 집식구 생각이 난다. 최인규 집사가 조선 음식 생각이 나서 혼났다는 것은 나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말인가 한다. 전일은 Scoville 목사에게서 Shirts 여섯 벌이 와서 박 목사에게 두 벌을 드리고 네 벌은 내가 입는다. 친구들에게 문안해라. 털실(中細) 한 폰도에 $6_00 주면 살 텐데 그렇게라도 사는 것이 좋을지, 곧 알려라. 돈을 보내려고 Adams와 가치 은행에 나왔다가 그런 제도가 없어서 못 보내고 편지만 보낸다. 이곳 여행사에 돈을 넣고 표를 그곳에서 받던가. Board에 저금하고 조선 선교사에게서 Cheque을 받으면 현금과 꼭 가치 표도 살 수 있고 하니 어느 길이던지 속히 알리면 처리하겠다. 28일 주일 월요일
문익환
1949.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