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 한빛교회 30주년 기념예배 설교 원고
문익환 목사 한빛교회 30주년 기념예배 설교 "오던 길을 그대로 가자" 원고 (빌립비 3장 16절 "어쨌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오던 길을 그대로 가자 지금까지 달려오던 길을 그대로 달려가자고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권고합니다. 지금까지 달려오던 길이 잘못된 길인데도 그대로 가자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서든지 새 길을 찾든지 해야지요. 오던 길에 주저앉지도 않고 그대로 가자고 하는 까닭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지금까지 살아온 확신을 따라 그대로 앞으로 밀고 나가자”는 말도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그때까지 걸어온 길은 어떤 것이었던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랍비, 선생으로서 존경을 받으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바울은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시밭길, 고생길에 들어섰으니까요. 그는 고린도에 있는 신앙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준한 길이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고후 11:23 상반절). 여기서 그들이란 예수의 직계 제자들이라고 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바울은 “나는 그들보다 고생을 더 많이 했습니다. 감옥에도 더 많이 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11:23 하반절)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가 받은 고생을 열거합니다. 서른아홉 대씩 맞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나 되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를 표류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끝도 없는 여행에 강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라 사경을 헤매었고 헐벗은 몸으로 추위에 떠는 일도 수없이 겪었다고 합니다(11:24~27). 사람들은 저더러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겪은 고생은 바울이 거쳐온 고생에 비하면 약과지요. 거의 호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바울은 계속 그 길을 같이 가자고 합니다. 얼마 전 젊은이들이 저더러 다시는 감옥에 가지 말라고 하기에 저도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그게 무슨 소리야! 갈 일이 있으면 가야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이 그러시는데 안 갈 수 있겠어요? 바울은 그 어렵고 괴로운 길을 가도 기뻐하면서 가자고 합니다. 그는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님과 함께 노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빌 4:4). 이렇게 되면 바울은 제정신이 아닌 거죠. 정말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겠지요. 어떻게 제정신을 가지고서야 그 고생을 좋아서 하겠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제정신을 가지고 그 고생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옳은 일이라는 확신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난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에서 끌 수 없는 기쁨이 솟구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 주신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일이라고 합니다. 등산객이 높은 산정에 다달아서 맛보는 기쁨만이 기쁨이 아닙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타는 기쁨이 더 중요하지요. 산정에 다달아 맛보는 기쁨은 등산의 전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의 절정일 뿐이지요. 지난 2월 12일은 우리 민족사에서도 길이 기억될 날입니다. 10년 체증이 뚫리는 통쾌한 기쁨을 우리 모두 느꼈습니다. 10년 체증이 아니죠. 20년 체증이 뻥 뚫리는 승리를 우리 국민은 한아름 안았던 것 아닙니까? 제 아버지, 어머니 90 평생에도 그렇게 좋았던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사슬에서 이 민족이 해방되던 날의 기쁨과도 견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던 날의 감격도 컸지요. 1978년 총선거에서 이 겨레가 야당에게 1.1% 표를 더 줌으로 해서 집권 정당인 공화당을 불신임했다는 소식을 저는 서울 구치소에서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것으로 퇴진을 강요당한 박 정권은 열한 달을 버티다가 무너진 것 아닙니까? 이번 선거의 승리는 40년 동안 억압받아 오던 민주주의가 칠전팔기해서 독재를 KO시킨 일이 었습니다. 40년 동안 짓밟히기만 하던 민중이 짓밟던 구둣발을 집어 내동댕이친 일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열한 달을 기다릴 것 없이 당장 퇴진해야 합니다. 총투표수의 35%를 차지한 정당이 어떻게 전국구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습니까? 벼룩도 낯짝이 있는데, 창피하지도 않은 가 보죠. 어불성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35%라는 것도 완전히 조작된 부정 아닙니까? 이 땅에서 가장 억울한 것이 농민입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갑니다. 농촌의 처녀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서 고생하는 처절한 모습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최장시간 노동하는 공장에서 온갖 직업병으로 몸을 망치며 일해도 백 명에서 여든다섯은 월 10만원도 못 받으며 기계처럼 소모되어 갑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농촌에 있는 것보다 나은 것이라면, 농촌의 참상이 어떠냐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아요? 그렇게 가장 억울하고 처참하게 고생하는 농민들, 도시민들의 생활 유지를 위해서 완전히 희생당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이 민정당에 표를 많이 던졌다는 것을 믿을 사람이 있습니까? 정말 공명선거를 했다면 민정당은 열 사람도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원천적인 부정 선거요, 완전한 타락 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한민주당은 창당 25일 만에 선거운동다운 운동도 없이 민정당 87석에 50석으로 육박해 들어갔다는 것은 아마도 세계 선거 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민족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것 입니다. 민권 승리가 어떤 것이냐고 묻거든 1985년 2월 12일 한국 땅에서 벌어진 총선이 바로 민권 승리라고 대답하십시오. 이 뜻깊은 민권의 승리를 안고 우리는 한빛교회 3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금번 총선거에서 전취한 민권 승리는 바로 한빛교회의 승리입니다. 왜냐고요? 이번 선거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이 민족의 가시밭길을 한빛교회는 한 걸음도 비켜서지 않고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한빛교회는 온갖 폭력에 항거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수난사의 한복판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실천으로 이 수난사의 한복판을 뚫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평화의 씨앗을 뿌리며 신앙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온 한빛교회 교우 여러분의 확신은 옳았습니다. 그 확신이 옳았고, 그 확신을 굽히지 않고 사느라고 고생도 많았습니다. 고생이 컸던 만큼 오늘을 맞이하는 기쁨도 큰 거죠. 금번 선거의 승리를 기뻐하는 기쁨도 그만큼 더 큰 거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 확신이 옳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확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 확신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앞으로 가시밭길을 헤치며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밭길을 같이 헤치며 나가는 기쁨도 남에게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확신을 따라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그대로 전진할 뿐입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이 확신, 이 승리의 기쁨을 안고 도달해야 할 고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 정부의 수립입니다. 저는 현정부가 진정으로 민주 정부가 되어 준다면, 구태여 퇴진하라고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두환 정권이 민주적인 정권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민주 정권이 되기를 기대하느니 검정 개가 흰 개가 되는 것을 기대하지요. 민주 정부를 세우고 이 나라를 민주화하는 일은 그대로 갈라진 민족을 통일하는 일입니다. 갈라진 민족을 통일하는 일은 온갖 분쟁 요인을 제거하는 일이요,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곧 평화의 왕, 예수의 복음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이제 서른 살을 먹은 한빛교회는 이 엄청난 일을 해내리만큼 자랐고 힘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이 민족이 통일의 관문을 통과하는 날, 한빛교회는 비록 작지마는 또다시 마땅히 할 일을 해냈다는 기쁨을 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확신, 그 기쁨을 안고 또다시 통일된 새 나라 건설에 발벗고 나서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같은 영광스러운 한빛교회 교인이라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다 같이 일어서서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 한빛교회 30주년 기념 예배 설교(1985. 2. 17)
문익환
198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