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귀녀라는 식모애가 그저께와서 집일 좀 하니까 모두 제 일들로 돌아갑니다
오빠께 Dec. 18. 이상한 시각에 오빠 편지를 읽었읍니다. 오늘 대학원 seminar에 1년만에 갔었읍니다. 나와 같이 입학한 학생 논문(석사) 발표 있다기에 갔었죠. 중간에 웬 사람이(실은 Paul입니다) 잠간 다녀 갔었어요. 눈 한번 마주치고, 그의 놀란 "아-"하는 소리외엔 나눈게 없었는데 난 집에와서 온통 짜증부리고 결국 영금이 곁에서 참지 못하고 터졌읍니다. 흐느낌, 그건 막으려면 더 커지는게 아닙니까? 잠깐이라도 그를 본 날이면 꼭 울고 마네요. 뭐라고 설명할수 없는 상태. 난 꽤 똑똑해지고 내 식대로 살아갈만큼 강해진것 같다가도 정말 어쩜 이렇게 못나고도 약하게 나를 무너뜨리는지 모르겠어요. 환상 같은데 잡혀 있는 거지도 모르는데 벗어나고 싶은데. 이건 슬픔인지 아픔인지 괴롬인지 그렇지 않음 melancholy? 어쩜 생이란 이런 겔가요? "나"를 잊어야, 배가 차야, 그리고 뭔가 지저분하게 머리를 맴돌아야 살기 쉽다니-또 그렇게 살아야 건강한 것이라니-. <집보고>. 어머님은 일어나셨읍니다. 16살짜리 귀녀라는 식모애가 그저께와서 집일 좀 하니까 모두 제 일들로 돌아갑니다. 어머니와 가끔 제가 애들일로 충돌하지만 서로 이해되지 않은채(난 어머닐 이해한다지만 설득하려 들지 않으니 피차 노력않긴 같죠) 지냅니다. 형님 식모 없어 바빠 편지 못하셨을거예요. 나같이 울일이 있으면 우는 소리나 할텐데 오빠를 위해서 울고 싶은 이야긴 하지 않겠죠. 적은 돈으로 오르는 물가, 애들 뒷바라지로 살림살기 어렵죠. 호근인 밖엘 너무 나가 있읍니다. 내가 내 일을 잊고 있을때면 그애에게도 여유를 보여주지만 신경이 곤두설때면 모두들에게 가슴 아프게 굽니다. 결국 그래서 의근이와도 가까울 기회를 만들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 저녁에도 들어오니까 방이 춥다고 온통 이불펴놓고 영금인 누워서 전화하고 있고 의근, 호근이 아랫목에 앉아 신문을 봅니다.발들여 놀 틈도 없고 짜증이 나니까 "너희들 왜 다 이방에 와 있니?" 하고 싫은 소릴 하고 말았어요. 곧 후회했지만 정말 영금이가 어질러 놓는데 나는 짜증도 번번이 참지를 못합니다. 결국 의근인 조금후에 나가고 호근인 그냥 앉아 있어서 옷 갈아입겠다니까 결국 나갔어요. 모두 모여들때 짜증내면 호근인 나가지 않고 의근이만 나가곤 한답니다. 할수 없는 내 상태때문에 난 그 애들을 다치는게 정말 싫어요. 미안하구. 영금, 의근 어제 YMCA 합창공연 했어요. 지난 여름 오빠랑 앉았던 자리쯤에 형님과 앉아봤어요. 영금이 진단을 위해 severance에 갔더니 만날 의사가 오후엔 안본다고 해서 못봤지요. 방학되어야 갈 것 같은데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안경을 잃어서 오늘 contact lense를 할가 갔더니 생각보다 값이 많아 그냥 돌아왔읍니다. 0.3인네 lense끼면 1.5가 되니 좋긴 할 것 같읍니다만. 안과에 더 알아보고 할 생각입니다. 성근인 퍽 좋와졌읍니다. 어른들이 조금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읍니다. 애들도 인격자로 동등하게 대한다는게 얼마나 필요하고 또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주 명랑하고, 건강하고, 신경질도 줄었읍니다. 입시가 끝났으니 말이지 시험 열흘 쯤 전에 온 친구와 부딛혀서 빗장뼈가 부러져 기브스하고 체능은 던지기외에는 기본 점수만 받았답니다. 아직도 기브스 떼지 못했어요. 오빠 걱정하신다고 말하지 않은 건데 제가 약속어기네요. 창근, 태근은 아주 잘 자랍니다. Faye 16일 결혼 기념이였는제 가 보지도 못했어요. 몇일전 루미를 만났읍니다. 23일 또 만나기로 했죠. 꽤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았읍니다만 그리 건전한 것 같지는 않았읍니다. 위가 나빠서 얼굴에 코만 남도록 마르고. 요즘 몇일 아주 추웠읍니다. 16일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얼굴이 얼었어요. 따끔따끔하고 빨개져서 아픕니다. 너무너무 추워하니까 어머니께서 한복 고쳐주셔서 집에서 입습니다. Severance 소아마비 재활원 애들의 발표회에 형님과 갔다가 총장 만났어요. 형님께 미국가시지 않는냐고 물으시겠죠? 조선출 목사님, 지동식, 서남동 목사님들 모두 문안하시데요. 형님 코쓰모쓰 편물은 여전합니다. 참 작은 삼촌 대사관 사람과 울릉도에서 일년 계획으로 영화 찍는다고요(documentary) 그 사람 미국 가는 일도 도와줄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실습이 될게 아닌가 해서 예학일이 결정되지 않은 채 그 사람 만난 모양인데 그 후 소식 모릅니다. 나도 이젠 강의 끝났으니 내 준비를 톡톡히 해야겠읍니다. 오기형선생 시간에 Programmed Instruction을 했는데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제 들으니 그 선생님 딴 사람들에게 내 논문 제목을 그것이라고 하신대요. 될수 있으면 9월 전에 하겠는데 될지. 오빠 공부건은 오빠가 정하실 일이지요. 허지만 집에 오시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정하진 마세요. 자주 편지 해드리도록 하고 말이죠. 또 편지 하지요. 그럼 이만 씁니다. 은희
문은희
196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