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박선생. 나의 영원한 코쓰모쓰! 맹세하리다
재작일(*그제) 편지를 받았읍니다. 몇번 회답을 썼다가 중지하고 오늘 많이 생각하든 끝에 붓을들었읍니다. 저도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을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읍니다. 제 고려의 중심점도 "하나님의 뜻"이었읍니다. "성립과 결렬" 이 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 인간은 이것을 결정지을수 없을것이나마. 결ㅎ고 숙명론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않겠읍니까? 아버님의 의향. 어머님의 유언(거게 아무리 큰사랑이 있다해도) 기[그] 이외 수인의 반대를 하나님의 뜻의 대행으로 생각해야할 근거가 대체 어데있는지? 제에게 있는 이 의혹은 그리 쉽사리 풀릴것 같지않습니다. 서로사랑하면서 더욱히 같은 사명을 가지고 같은 다름박질마당을 달릴 두사람이 서로 갈린다는것이 대체 외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될 것인가? 불효가 자식된 도리로서 견델수없는 일이긴 하겠으나 새시대 새사람이 부모를 위해서 희생되는것은 결ㅎ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잖겠읍니까? 이렇게 엄히 말할수있는 것은 박선생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난국을 관철해서 살어야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할때, 우리는 주위의 인간의 소리를 하나님의 뜻 대행으로 생각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원리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할것이아닙니까. 거게서 참길을 찾을수 있다면 그길은 모든 난국을 관철해서 살수있는 길이 아니겠읍니까? 주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서 주의 뜻을 들어낼려는 무언한 참싸움이 전개될 것이 아니겠읍니까? 냉정해질려니까 어느새에 신학생의 버릇이 또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그리 흥분한 것도아닙니다. 어덴지 모르나, 참으로 결렬이라는 것은 상상에 지내지 않는 것같기 때문입니다. 과거, 여러번 결렬이라는 것을 생각도 해보고, 말도 해봤으나, 결국 한번도 뱃속 깊은데서는 승인해본 일이 없읍니다. 박선생. 나의 영원한 코쓰모쓰! 맹세하리다. 불의의 변이 아닌한 어머님의 유언의동의를 성취해 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읍니다. 피차의 이해와 노력으로 싸워보지않으렵니까. 이것은 동시에, 주를 향한 충성이기도합니다. 아버님의 의향, 경제문제, 지금까지의 제 쩗은 경험으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길" 이외에 없는가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읍니까. 이 두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찾는 길이 아닙니까. 주위의 강압을 하나님의 뜻으로 숙명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것이겠읍니까. 어머님의 유언과 아버님의 의향을 관철해서살고 또, 그 유언과 의향을 향해서 그것에 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들어내는 생활, 이것이 이상과 같은 생활이오, 하나님의 뜻이 아니쟎겠읍니까? 이것이 좋은 길이오 십자가의길이 아니쟎겠읍니까? 용서하십시요,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을. 그러나 박 선생이 주위의 강압 때문에 정신을 채리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깨우쳐 드리려는 심산임을 알으소서. 지금까지 잘 싸우셨으나, 이제 주저앉으면 참말 공든탑이 무너지겠읍니다. 할머니는 말끝마다, 잔채 준비 이 얘기만하시다가 어제 오늘 왼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계십니다. 모-든 싸움을 박 선생에게만 마껴버리지 않으면 않될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으나 어떻게 하겠읍니까. 다시 일어나서 싸워 주십시요. 우리집에서 의합하지 않는가 하는 점은 조곰도 염려하지 마십시요. 김애신 전도사님의 추천도 있었고. 조곰도 이의가 없읍니다. 경성에서 「건강의 파산자」라는 저 자신의 선언은 확실히 실언이었으나 자신있는말을 할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통 부모 이상의 이해를 가진 제 부모가, 결혼문제를 급히 내몰 정도의 건강이라면 피차의 이해와 협력으로라면 자신있는 말은 못할망정 어머님의 유언의 동의를 성취할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웃지 마십시요. 이렇게 자신으로 자신을 추천한다는 일이란 가소로운 일이지만. 내어머니, 내아버지가 아니니까 이렇게 말할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인간의 근저에 있는 자기 중심주의가 발현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로서는 이 이외에, 다르게 생각할수 없읍니다. 박선생.. 문익환 씀 오늘은 그믐입니다. 백모님(어머니의언니) 회갑에 갔다 왔읍니다. 기도합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소서.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다시쓰고 싶은 생각도 있으나, 믿고, 그대로 내렵니다. 쪼각 달은 삼가서. 얼마전에 붙인 편지는 받았는지요.
문익환
194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