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어쩌면 한신대를 Resign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은희에게 보낸 편지 읽었읍니다. 한 해의 새로운 경험을 감명깊게 출발했음을 축하합니다. 즐거운 한 해가 될 줄 믿읍니다. 학교 일에 대해서 두어 마디 소식 전하겠읍니다. 연대 고대 등등 문제 교수들이 자퇴하고 학교들이 정상화됐지요. 처리된 교수 김성식에, 이학령, 김경돈, 서석순, 이국찬, 황산덕, 김기선, 이한구, 김성환, 양주동, 정범석 등입니다. 김삼수, 김윤경, 황성모, 양호민 교수는 두루 구제가 된 모양, 미처리 교수가 한신대의 전경연, 대구대의 박삼세, 청주대 조윤제, 김경광 교수입니다. 신문, Radio 보도에서 연고대 교수 처단이 끝나고 개교했을 때 남지 교수는 묵과하겠다는 보도가 나기에 문제가 그쯤하고 끝나는 줄 알았는데 문교부가 계속 강압적으로 나옵니다. 우리 이사회는 근신 정도의 처벌로 문제를 무마할려고 했는데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사회에서 다른 학교의 예에 따를려는 경향으로 움지기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는 경우 나 자신 Resign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장님 나의 눈치를 몹시 봅니다. 우리 둘의 태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일간 교수회가 열릴 것입니다. Give in or close up의 choice입니다. 다시 소식 전하지요. 제 느낌으로 일 년쯤 close up한 대야 이것이 영광스러운 일이지 학교에 minus가 되지 않은 줄 압니다. 다시 소식 전하지요. 먼저 내 Resignation만 내겠읍니다. (만일의 경우) May God bless us all. 아우 오빠께 9.24 주체도 못하면서 질질 끌려 살고 있읍니다. 오빠가 이곳에 계신다면 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몹시 쓰고 싶었는데 선수를 오빠께 뺏겼네요. 등록은 했고, 총장 취임 1주년(9월22일) 되는 날 개강이여서 tea party를 도왔읍니다. 대학원 강의는 내주에 시작할 모양인데 별로 기대하지는 않읍니다. 또 한 번 거액 등록금을 내고 나니까 부모님께 미안하고 안타깝군요. 그런데 어제 학교 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박 군을 만나고 나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내가 또 한 번 계산을 잘못한 것이 아가 싶군요. 자살 소동(?) 벌린 지 꼭 반 년. 정말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였어요.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꼭 살아야 한다면 똑똑해져야겠는데 어제 내 꼴을 보곤 이곳 생활이 힘들 것 같습니다. 미국에 간다고 쉬운 게 아니지만 아무튼 지금 가는 길 이외의 길을 가볼 수밖에 없지 않을가 싶습니다. 영희 아버지가 그 청년 데리고 포도 잡수러 오셨었어요. 그런데 이름은커녕 성도 기억 못 할 만큼 관심두려 하지 않았나봐요. 다음에 어느 하루 만나고 싶다기에 억지로(?) 나갔었읍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하는 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좀 자기에게 덜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였어요. 다음 만날 약속을 주지 않고 헤어졌읍니다만 아무튼 언제가는 대답을 명확히 해야겠지요. 그저 남들 같이 적당히 "결혼해야 한다"는 식으로 한다며 무난할 지 모르겠읍니다만 아직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내 불행 비슷한 처지에 또 한 사람을 끌어드려선 안 될 게 아니겠어요. 내가 주역하는 비극에 조력해 달랄 수는 없지요. 그는 그의 생의 주인공일테니까요. 내가 자라온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못하지만 내 신랑감은 학자나 예술인을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 말이예요. 한국 청년들에게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은 사회 불안정 때문이겠죠. 제 전공을 살릴 분야에 취업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이번 학기는 울면서 지내더라도 마치겠읍니다. 미국엘 가던지 시집 가던디 아니면------. 어떻게 되겠죠. 형남이와 선옥 편지가 오빠 것과 같이 들어왔는데 형남이 나를 위해 기구해 주겠대요. 제 기구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신대나요? 오빠도 기도해 주세요. 저도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기도의 말이 되질 않습니다. 떼거지 쓸 수도 없구요. 아무튼 하나님께서 마음 속을 알아주시길 바라고, 혼자의 중얼거림에 끝나고 맙니다. 그래도 가슴 속의 공허는 여전합니다. 오빠 죽엄 이후의 길은 모르기에 더욱 두려운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무섭도록 고독할 그 길이 지금의 생보다는 나을 것 같은 건 어린애 같은 생각인가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내 손으로 끊어선 안된다지만 주신 talent를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대로 유지해 갈 의의가 있을 거냐 말예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오빠 그외 내 이웃들을 생각하고 계속할 것을 재촉합니다만 결국 도서관 앞에서 박을 만난 것은 내 이웃 아닌 나 혼자였던 걸요? 허지만 노력해 보겠어요. 제 걱정을 하시진 마세요. 하신 대도 별 수 없고요. 내가 너무 지나치게 쓴 모양입니다. 편지엔 너무 지꺼리는 습관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씁니다.<은희> PS.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시편(독어) 책 빌리셨다는데 어디 두셨는지 찾지 못해 못 전했읍니다. 김정준 박사 재촉하십니다.
문동환 문은희
196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