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사형언도를 받으려 나가는 죄수의 기분을 맛보는 듯합니다
한의정 선생님. 그동안도 주안에서 안강하시온지요. 저도 별고없이 할머니의 수고해주시는 덕분에 잘 먹고 잘 지냅니다. 교회도 더 떠러질 수 없이 떠러진 교회이니까. 조곰식 나아갑니다. 교인들이 내년에는 기어히 독주 교회가 되어 보겠다고 야단들입니다. 소식을 기대리다가 답답해서 붓을 들었읍니다. 칠십이 다 된 할머님의 수고는 참 민망합니다. 아시겠지만, 하도 건강하시니까. 이만큼이래도 해주십니다. 하여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주십시요. 가급적 속히 해야 하겠읍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너머 말이 많다고 꺼렸을 뿐이나, 지금은 완젼이 기대리고 있읍니다. 사실 결혼해서 무리한 건강이라면 제 부모가 말릴 것이 아닙니까. 얼마전에도 신경에 나가서 잘아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결혼해서 관계없겠느냐고 물었었읍니다. 실제로 결혼할 수 없는 건강으로 결혼하는 것은 범의 굴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으니까요. 물론 누가 장담 할수야 있겠읍니까. 핑핑하든 사람도 너머지는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궁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으나 사실 급합니다. 교역에도 사실 여간 부자유한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견디고 부자유를 부자유로 조심해 나가면 별 일이야 없겠지요. 가을까지는 외눈통이든지, 코비뚜젱이든지 불구하고 데려와야하겠읍니다. 마음같으면 가서 막 동여오고도 싶으나 그렇게도 할 수 없고. 저도 좀 신경질이 된것 같습니다. 난필로, 되는대로 질서없이 버릇없이 쓴 것을 잘 이해해주시고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너머나 넘을 수 없는 곤란을 지내와서 서로 다리가 피곤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김애신, 김순호 양 전도사의 응원에 퍽으나 힘을 얻었댔지요. 이제 제일 사랑해 주시고 제가 제일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 애써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만나뵈옵고 절을 할 수 있었으면 어린아이처름 손바닥을 치면서 좋와하겠읍니다. 이제 선생님의 진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참말 저도 외눈통이든, 코삐뚜젱이든지 데려올 수 밖에 없읍니다. 사형언도를 받으려 나가는 죄수의 기분을 맛보는 듯합니다. 박계주씨의 순애보를 생각합니다. 내내 주안에서 안강하소서. 5월 5일(동환의 생일날)
문익환
194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