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3월 <시인 문익환>

🈷️ 기록으로 살펴본 늦봄의 시

아카이브 숲에서 만난 손때 묻은 원고들

 
 
💌 [편집자주] 이 글은 시인으로서의 문익환 목사를 보여주는 늦봄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시인’으로서의 행적과 더불어 그가 남긴 시와 관련된 대표적인 기록들을 통해 늦봄의 사랑과 생명을 느껴보는 3월이 되기를 바란다.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에 대한 인식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투사로, 민족통일운동의 선구자로, 또는 시인으로, 목사로, 신학자나 신학대 교수로 그를 만난 사람들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이처럼 다양한 인식은 그분의 활동 영역이 얼마나 광범위했고, 그분의 삶이 얼마나 실천적이요 역동적이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이해동 1999).
 

“구약을 번역하려니 동주가 옆에 없어 아쉽더군요”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

문익환 목사는 생전에  『새삼스런 하루』(1973), 『꿈을 비는 마음』(1978),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1984), 『두 하늘 한 하늘』(1989), 『옥중일기』(1991)등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저는 윤동주 앞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시와는 관계가 없이 신학이라는 산문의 세계를 저의 세계로 알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시가 40%인 구약 성서 번역 책임이 제 어깨에 지워졌습니다. 그때처럼 동주가 옆에 없는 것이 아쉬워진 때가 없었을 겁니다. 구약의 시를 시답게 번역 못 할 바에는 구약 번역에 손을 댈 수 없다 이거였지요. 저는 궁지에 몰린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시를 열심히 공부하고 습작으로 긁적거려 본 것이 그런대로 시가 된다고 해서 출판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겁니다(문익환 1989).


 1968년부터 시작해 1976년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끝을 맺지 못했던 성경 번역 활동을 위해 문익환은 열정적으로 시를 공부하고 시인이 되었다. 릴케의 시를 번역해 책을 내고(68년), 한국 시를 공부했으며 다양한 습작을 생산하며 드디어 73년 첫 시집인 『새삼스런 하루』를 출판했다. 
 
 

◇문익환이 번역한 릴케 시선 표시(왼쪽). 오른쪽은 감옥으로 반입했던 표식인 도서열독허가증이 부착되어 있는 모습.


내 서가에 『현대시학』이 3호부터 있는 것을 보니까, 내가 한국 시에 머리를 처박은 것이 1969년 6월이었던 것 같군요. 그 후로 약1년 반 동안 한국 시를 무던히 읽었죠(문익환 1973).

  

◇’시인’ 문익환의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1973).

 

날마다 아침이면 마당을 거닐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적 감성

첫 시집이 출판된 이후 그는 실험을 끝낸 마음으로 성서 번역에 몰두했지만 한편으로 시적 감성을 계속 닦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날마다 아침이면 마당을 거닐며 얻은 시상을 원고지에 옮겼다(문익환 1989). 이 시가 89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발표된 연작시 <열두 달 아침>으로 신경림 시인은 이 시를 두고 문익환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 한편으로 꼽았다(신경림 1999). 그의 이런 노력은 작고하기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삼월의 아침

난무하는 바다
서릿발 날리는 칼날 수억만 창 끝을
날으듯 밟으며
햇살을 섞어 쏟아지는 눈발을 희롱하던
바람 이제사 추위를 타나
개나리 펼쳐지지 않은 꿈자락을 파고든다 
<열두 달 아침>


 

옥중편지 한장에 원고지 27장 분량 ‘깨알’ 글씨


▲편지에 실려나온 시 

1976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삶 속에서 <꿈을 비는 마음><잠꼬대 아닌 잠꼬대> 등 문익환 목사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주옥같은 시들이 탄생했다. 그는 10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 있으면서 807통의 편지를 써서 세상으로 보냈다. 가로 19, 세로 30센티의 크기인 봉함엽서에 한 달에 한통밖에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엄혹한 상황 탓에 주소를 쓰는 공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면이 빈칸 없이 깨알같은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1977년 10월 14일자 옥중편지 한 장에 담긴 글자가 총 3,412자인데 이는 원고지로 26.8장에 해당된다. 이 편지에는 그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아 지은 <꿈을 비는 마음>이 담겨져 나왔고 띄어쓰기조차 쉽지 않았던 탓에 시를 쓸 때 띄어쓰기 대신에 ‘슬래시’를 사용하고 있다. 
 
 

◇1977. 10. 14 옥중서신(왼쪽), 오른쪽은 늦봄의 대표작 <꿈을 비는 마음>  

 
 

스승 김재준 목사 소천 소식에 쓴 <큰 스승이시여>


▲스승이시여, 큰 스승이시여
1987년 1월 29일에서 2월 10일 사이에 쓴 두 통의 옥중편지는 스승인 김재준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쓴 것인데 이 편지 안에 조시 “큰 스승이시여”가 담겨 나왔다. 원래 이 편지는 모두 네 통인데 김재준 목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조시와 가족에게 보내는 위로를 담은 편지를 급히 쓰셨다가 며칠 후에 정리해서 다시 보내면서 내용적으로 중복된 편지가 쓰여지게 되었다. 이 시는 네 번째 시집인  『두 하늘 한 하늘』에 실려있고 평소 남편의 글을 정성껏 붓글씨로 써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곤 했던 봄길 박용길 장로가 쓴 붓글씨로도 남아 있다.
 
 

 ◇1987. 1. 28-29일자 편지에 실려 나온 조시를 박용길 장로가 붓글씨로 정서한 자료. 총 7장으로 되어 있음


 

미발표 원고-습작 노트 등 늦봄 아카이브에서 디지털전환 

 

▲아카이브 숲에 있는 미 간행시들

문익환 목사 별세 후 간행된 문익환 전집(1999년 도서출판 사계절 간행)에는 두 권(1, 2)에 걸쳐 늦봄의 시집 5권 모두를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집에는 없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된 시와 미발표 원고 중 선별된 것들도 함께 실었다. 하지만 전집이 출판될 때 출간위원회는 "미발표시는 거의 대부분 습작 수준인 것으로 판단해 몇 편의 시를 제외하고는 전집에 수록하지 않았다(문익환 전집 출판위원회 1999)"고 밝히고 있어 추가된 것은 극히 일부로 파악된다. 
 

문익환 전집 구분 간행물 비고
1
: 시집1
1부 새삼스런 하루 새삼스런 하루 1973년 간행
2부 꿈을 비는 마음 꿈을 비는 마음 1976년 간행
3부 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4년 간행
2
: 시집2
1부 두 하늘, 한 하늘 두 하늘, 한 하늘 1989년 간행
2부 옥중일기 옥중일기 1991년 간행
3부 통일은 다됐어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된 시, 미발표 원고 중 선별

◇문익환 전집 중 시집 수록 현황

 

아카이브에는 시집으로 탄생한 것의 초고 성격인 것들로 보이는 원고들과 미간행시로 예상되고 있는 것들이 남겨져 있다. 이들은 대개 누렇게 바랜 원고지와 메모, 다양한 노트에 담겨 있는데 현재 약 두 개 분량의 아카이브 상자에 원고와 노트 유형으로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지난 해 늦봄 아카이브에서 사료정리사업을 통해 이들에 대한 목록화와 디지털화가 일부 진행되었고 온라인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늦봄의 노트들. <출처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늦봄의 시 원고들. <출처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시들의 정체가 파악되려면 간행된 시와의 비교작업이 시급하다. 하지만 초고나 수정이 이루어진 흔적, 시와 관련된 메모를 비롯해 시가 담겨 있는 편지 등 관련 기록들은 늦봄의 생생한 필체를 담고 있다는 자체만로도 간행된 시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늦봄의 숨결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늦봄의 습작 원고와 노트는 그의 시가 탄생되는 과정을 폭넓게 이해하고 심화시킬 수 있게 해주는 늦봄 아카이브만의 소중한 사료들이다.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과 봄길의 기록에 빠진 지 삼년 된 아카이브 하는 사람입니다



 

※ 늦봄 문익환(1918-1994)과 봄길 박용길 장로(1919-2011)의 손때묻은 기록들은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한신대 신학대학원 장공도서관 2, 3층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임시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통일의 집’에 전시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이 곳 수장고 28평 남짓한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디지털작업을 마친 자료들은 2020년 12월부터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 에서 온라인으로 누구든 언제나 찾아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경림 1999. 『문익환 전집 1권』  시집 1. 사계절출판사.
이해동 1999. 『문익환 전집 12권』  설교.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1989. 『두 하늘 한 하늘』 창작과 비평사 
문익환 1977. 10. 14 옥중편지
문익환 1987. 1. 29 – 2. 10 옥중편지

월간 문익환_3월 <시인 문익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