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목사님의 기억과 흔적들을 보내려 합니다”
사료기증 송영섭 목사님, ‘젊음의 흔적’을 통일의 집에 보내는 사연
안녕하세요! 수장고 통신의 박에바입니다. 수장고에 너무나도 반갑고 기쁜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바로 사료 기증 소식입니다! 어떤 사료가 도착했는지 열어보기 전에 박물관에서 기증 사료가 갖는 의미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문익환 통일의 집 박물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익환 목사님 및 가족들의 사료를 보존하고 서비스하는 기관입니다. 이렇게 특정 주제 기록을 아카이빙(archiving, 활용을 위한 보존)하는 곳을 ‘수집형 기록관(또는 매뉴스크립트 기관)’이라고 합니다. 가치있는 사료라고 모두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익환이라는 주제에 맞는 기록물을 선별하여 수집하는 것이지요.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 보존 중인 사료는 문익환 목사님의 아내이자 타고난 기록꾼 박용길 장로님이 자택(현 통일의 집)에 보관하시던 것이 많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사료를 구입, 사본제작, 기증 등의 방법으로 수집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에 입수된 사료 묶음은 제주의 송영섭 목사님이 무상으로 기증해 주신 것으로, 90년대의 신문·잡지 스크랩북과 1989년의 강연을 녹음한 테이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집 이후에는 사료를 자세히 파악하여 정보를 정리하고 디지털본을 만든 다음 보존 봉투에 안전하게 넣을 예정입니다. 스크랩북과 카세트테이프는 사료 유형은 다르지만 기증자가 같으므로 같이 묶여서 보존됩니다.
◇송영섭 목사님의 기증 사료인 90년대의 스크랩북과 강연 녹취 테이프. 그리고 동봉된 편지
이 기증 사료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기증자가 기록을 모으게 된 배경과 문익환 목사님과의 인연, 기증을 결심했을 때의 심경 등을 편지에 자세히 적어 함께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온 듯한 편지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1989년 3.1절 강연회 마이마이로 육성 녹음
▲기록이 생산된 상세한 배경
3.1절 강연 녹취는 1989년 3월 1일에 시흥에 있는 달월교회(당시, 조화순 목사님 시무)에서 열렸던 시흥/안산지역 EYC(기독청년협의외)주최의 3.1절 강연회에서 강사로 말씀하셨던 문익환 목사님의 육성을 녹음한 것입니다. 당시 협의회에서 함께 일하던 제가 개인적으로 선배의 마이마이를 빌려서 강단 우측 떨리는 마음으로 올려놓던 기억이 지금 다시금 설레고 가슴 저리게 느껴져 옵니다.
◇카세트테이프는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되어 활용된다
“지금 제 아내와의 만남도 문 목사님이 주선해 주셨죠”
▲ ‘물품 전달의 인사’를 대신하여 문 목사님께 올리는 편지
선생님! 문익환 선생님! 오늘 이렇게 생전 처음 선생님께 편지를 드려봅니다. 아시지요? 제 생애에서 문익환은 제 마음의 선생님 세 분 중의 한 분이십니다. 늦깎이로 스물여덟 나이에 한신대 학부를 들어가 공부하던 1991년 시절엔 친구들로부터 ‘문영섭’이란 별명으로도 불렸지요. 하도 “문익환” “문익환”하고 다닌다고요. … 말씀드리다 보니 생각나네요. 지금 제 옆에 사는 제 아내와의 만남도 목사님께서 주선해 주신걸 말입니다. 모르셨죠? 그날 저와 반대진영(반 운동권 진영)에 있는 아내를 만나 설득하려고 온갖 고심을 하던 중, 그냥 무작정 (이미 다 읽은, 제게는 마치 부적처럼 되어 있었던) ‘꿈이 오는 새벽녘’ 하나 손에 들고 ‘무조건 전술전략 없이 무조건의 어린아이 순수’로 만나보자했던 것이 마침내 연애와 결혼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그 드라마 같던 제 청춘 시절을 목사님은 미처 모르셨을 겁니다.
“문 목사님 향한 마음은 BTS에 열광하는 팬의 마음”
▲젊음의 흔적을 보내는 기증자의 마음
이제 제가 간직하고 있던 목사님의 기억과 흔적들을 통일의 집으로 보내려 합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마음이지만 저의 젊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흔적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거창할 것 없습니다.
◇몇 해 전까지 기증자의 책상에 붙어있던 문익환 목사님의 코팅된 사진
송영섭 목사님과 통화하면서 편지에는 담기지 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박스를 정리하다가 묶음으로 된 문익환 목사님 자료를 발견했고 집에서 그냥 썩히느니 통일의 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지 모른다는 마음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월간 문익환> 지면을 빌려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송 목사님은 문익환 목사님을 향한 마음이 요즘 BTS에 열광하는 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하셨는데요, 문득 몇 해전 이사하면서 수 년간 팬심으로 모은 스타의 자료를 아무 생각없이 버린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자료일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집안에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자료 컬렉션이 있지는 않은가요? 발견한다면 기증처를 고민해 보시고 주저 없이 연락해 보세요. 아키비스트가 여러분의 기증 사료를 두 손들고 환영할 것입니다. 🤗
늦봄의 웃음, 통일의 웃음
- 늦봄은 통일이다
송영섭
임이여!
당신이 오랏줄에 꽁꽁 묶인 채
그 특유의 어린 아기 함박꽃웃음
활짝 웃을 때,
분단의 휴전선은 이미 휴전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두 손 얽어맬 오랏줄
그 손에 걸리는 순간,
아! 그것은 환희의 꽃다발
겨레의 허리 질끈 동여맨 통일의 허리띠
통일의 아침 밝히는 새 힘찬 승리의 월계관이었습니다.
이제 막 주인의 개막을 기다리는
해방 세상 열어낼
새 희망의 오색 줄타래였습니다.
임이여!
지금도 꿈이 오는 새벽녘 어귀
겨레의 염원 합장하고 서있는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숨결이시여!
— 방북 후 첫 공판에 포승줄에 묶인 채 환한 웃음을 터뜨리던 사진을 신문에서 본 아침, 휘갈겨 끄적였던 낙서 |
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