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7월 <늦봄과 민주주의>

[이달의 기억, 기록]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장례식 추모 연설 후 시청 행진

[7월의 문익환]   

▲1948년(31세)
7월 7일 김천에서 딸 영금 태어남. 이 시기 가족은 김천에 거주했고, 늦봄은 서울에서 한신대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구미교회 전도사, 을지교회 전도사 등을 지내고 있었음

▲1960년(43세)
「사월혁명의 느낌 몇 토막」, 『기독교사상』에 기고 (사월혁명으로 새하늘 새땅이 열리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없는 하늘과 땅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한국기독교가 스스로를 정화하고 참회해야 함을 말함)  

▲1980년(63세)
7월 4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수사 결과가 발표됨. 12일에 늦봄과 김대중을 포함한 37명이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송치됨

▲1984년(67세)
7월 20일, 세 번째 시집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출간
◇ 세번째 시집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7년(70세)
7월 8일 형 집행 정지로 네 번째 수감 14개월 만에 출옥. 진주교도소에서 풀려나온 다음 날인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 시민, 정치인, 재야인사들과 하나가 되어 신촌에서 시청까지 행진


▲1988년(71세)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이하 조.평.협) 공동 대표. 민통련, 민청련 등 12개 단체가 모여 발족한 <조.평.협>은 7월20일 발족 기자회견을 함. 7~8월 중에 남북 공동 올림픽 쟁취를 위한 가두 서명운동을 하였고,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교류를 위한 행사를 추진
: 첫 저서 『새 것, 아름다운 것』(1975년)을 제목을 바꿔 『혁명의 해일』로 재출간
: 7월 29일~30일, 동아일보사 주최 ‘남북한 통일 방안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민주화와 통일, 중립화 등에 대해 의견 피력

▲1989년(72세)
7월 10일과 24일에 방북 사건 2차, 3차 공판 진행. 3차 공판에서 늦봄은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평화통일 임무를 주었다는 것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뜻인 만큼, 지금은 남북이 모두 각각의 체제만을 고집하여 통일을 요원하게 할 것이 아니라 ‘평화통일’이라는 남북 공통의 ‘문패’라도 하나 붙여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진술

월간 문익환_7월 <늦봄과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