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7월 <늦봄과 민주주의>

🈷️ 전태일-이 아픔, 이 진실, 이 사랑

[늦봄과 전태일]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였다” 

 
전태일 아닌 것들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문익환의 시 ‘전태일’>
 
◇ 전태일 분신 소식을 듣고 작성한 문익환 목사의 시, <전태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늦봄 삶에 변곡점이 된 전태일 분신
1970년 11월 13일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에는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를 외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선언하고 스스로 횃불이 되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 피복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여 명이 일하는 공장에 환풍기 하나 없이, 7평 남짓 공간에서 30명이 함께 일을 하는 다락방 공장에서 하루 평균 14시간의 작업 시간에 대부분의 재단사는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위장병을 달고 살았으며, 미싱사 90%는 신경통 폐병을 달고 살아 갔다. 혹사당한 어린 여공들이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바로 해고당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개선해 달라고 정부 기관 곳곳에 탄원을 하고 대통령에게 편지도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대한 시위나 집회조차 방해로 무산되었다. 마침내 전태일은 비인간적인 처참한 노동 환경을 세상에 알리고자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고 근로자의 권익을 외치며 자신을 불살랐다.

국민학교를 중퇴한 그에게는 한문으로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이 너무 어려워 옥편을 찾아가며 밤새워 해설서를 정독했으나 현실에서는 무용지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청계노조와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핍박받는 자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였다.

신학교 교수로, 한빛교회 목사로 지내다가 1968년 신·구교 공동 번역 책임을 맡게 되면서 성서 번역을 필생의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정력과 시간을 쏟아 매진하고 있었던 늦봄에게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삶의 커다란 변곡점이 된다.

 
◇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쓴 문익환 목사의 붓글씨(1990년 봄)
 

“장준하와 전태일은 민족의 두 횃불”

▲“모든 운동의 출발점은 전태일이다”

 
민족 해방 운동의 선구자가 장준하였다면,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자는 전태일입니다. 민족의 두 횃불입니다. 경대도 자랑스러운 그 행렬에 당당히 섰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1991.07.01 경대 아버지 어머니에게> 

민족 해방의 선구자가 장준하라면 전태일은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자로 보았다.
전태일의 죽음은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그늘을 보여주는 처참한 기록 그 자체였기에 대학생부터 지식인, 종교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노동·농민 운동, 학원 자유권 운동, 언론 자유 운동, 선교 자유 운동 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늦봄은 모든 운동의 출발점은 전태일에서 시작되어 전태일로 귀결된다고 했다. 민주도 통일도 자주도 그 근본은 민중의 생존권 그 자체이기에 민중 중심의 운동관을 확실히 하였다. 
 
전태일의 죽음이 청계천 평화시장 공순이, 공돌이들의 생존권,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죽음이었는데, 그 불티가 번지다 보니 그게 민주화의 불길, 통일의 불길, 민족자주의 불길로 번진 것 아닙니까? 이게 참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주도 통일도 자주도 그 핵심은, 그 본질은 공순이, 공돌이가 대표하는 민중의 생존 자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중략) 전태일은 민족사의 새 초점이 되었습니다. 새 초점이 되었다는 건 새 발화점이 되었다는 말도 되고,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언제나 되돌아가서 새로 출발해야 하는 원점이 되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1989.9.22 오경환 선생님에게>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이 살아생전 누웠던 병실을 방문해서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였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시를 통해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목숨들이 전태일이며 전태일이어야 한다고”라고 썼다.
문익환의 부인 박용길과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은 이때 서로 알게 된 이래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로서 평생을 함께 기도하고 투쟁했다.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함께 해온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왼쪽)와 구순을 맞은 박용길 장로가 함께 찍은 사진 ©민족21(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제공)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문익환 목사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청계피복 노조를 방문하여 밥을 사 주거나 격려의 말을 해주며 낮은 곳으로의 섬김을 실천해 나갔다. 청계피복 사태 이후 핍박을 받던 이소선 여사는 “문익환 목사님은 우리를 보호하는 아버지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현판식에서 이소선 여사와 문익환 목사, 박용길 장로(90.11.24)


▲초대 전태일 기념관 건립위원회장으로 
 
“젊은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는 6천만 겨레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로 풀어져 흐르는 맑은 강이 되어야 합니다. 앞을 죽음처럼 가로막는 절벽을 무너뜨리고 흐르는 민족사의 물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땅속을 흐르는 이 물줄기 속 한 방울로서….”
<1983년 전태일 평전 발간사 ‘이 아픔, 이 진실, 이 사랑’>

◇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 현판


늦봄은 1983년 초대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전태일 평전 출간을 추진하기도 했다. 
1976년에 조영래는 전태일의 일기와 바보회, 삼동회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전태일 평전>을 탈고했지만 유신체제인 국내에서는 어려워 1978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했다. 83년에는 지명수배자인 조영래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서, 문익환 목사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 전태일 기념관건립위원회에서 엮은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1983년 6월에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 출간되었으나 당국은 바로 판매금지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전태일 평전은 “전국의 각 대학, 노동단체, 농민단체는 물론 지식인, 종교인, 나아가 해외에서까지 널리 읽히는 필독서가 되었다.” 
1988년에는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횃불을 높이 든 전태일을 기념하고자 ‘전태일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공장에서, 농촌에서, 학교에서, 각각의 삶터와 일터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였다.


▲전태일을 언급한 늦봄의 편지들
 
민주주의의 길은 아랫물을 맑게 함으로 윗물을 맑게 하는 길이 아닐까요? 무슨 그런 억지 논리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그게 마냥 억지 소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아요? 푹푹 썩어가는 혼탁한 이 사회를 맑게 하는 샘물줄기는 청계천에서 터진 거거든요. 전태일과 그를 따르는 젊은 노동자들의 함성이 이 사회를 맑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삶이 당연한데, 그걸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알고 살아가는 데 인류의 구원, 사회의 구원이 있는 거죠. 오늘은 이만. <1987.7.18 당신께> 
 
70년대 민족사의 새 장을 연 것이 전태일이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요…. 70년대 대표적인 노동 운동인 동일 방직과 YH도 물론 생존권 쟁취 운동이었죠.그 이후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노동 운동·농민 운동이 모두 그것이구요. 박형규 목사를 중심으로 한 도시 빈민 선교 운동도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된 선교 운동이었지요. 그것이 학원으로 들어가면서 자유권 운동으로 발전하지요. 또 동아·조선 기자들에게서 언론 자유 운동이 되고, 교회에서는 선교 자유 운동이 되었구요. <1992.2.24 당신께> 
 
민주고, 자주고, 통일이고, 그 원점이 전태일이라고 했을 때, 내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니겠니? 청계천 평화시장 공순이·공돌이들의 생존이 바로 민주와 통일과 자주의 원점이요 귀착점이라는 게 바로 ‘주기도’에 담겨 있는 민중의 비나리이지. 예수님 당시 갈릴리 민중의 비나리요, 오늘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민중의 비나리이지.
뜻을 모으는 일의 ‘과학화’에 관해서는 쓸 지면이 없어서 내 생각의 일단을 이것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더 많이 고민해라. 아비 씀 <1992. 4. 21 호근에게>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문헌]
정경아 (2020). 『봄길 박용길:  살림, 기도 그리고 편지』. 삼인
김형수 (2018). 『문익환 평전』. 파주: 다산책방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3권』. 사계절 출판사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7권』. 사계절 출판사.

 
전태일

           문익환

한국의 하늘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한국의 산악들아 강들아 들판들아 마을들아
한국의 소나무야 자작나무야 칡덩굴아 머루야 다래야
한국의 뻐꾸기야 까마귀야 비둘기야 까치야 참새야
한국의 다람쥐야 토끼야 노루야 호랑이야 곰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백두에서 한라에서 불어오다가
휴전선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뒹구는
마파람아 높파람아
 
동해에서 서해에서 마주 불어오다가
태백산 줄기에서 만나 목놓아 우는
하늬바람아 샛바람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뭐 다르겠느냐
우리의 이름도 전태일이다
 
깊은 땅속에서 슬픔처럼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물어야 알겠느냐
한국 땅에서 솟아나는 물방울치고
전태일 아닌 것이 있겠느냐
 
가을만 되면 말라
아궁에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
이 땅의 풀이파리들아
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
그야 물으나마나 전태일이다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테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어찌 우리의 숨결뿐이겠느냐
우리의 맥박도 야위어 병들어 가는 살갗도
허파도 염통도 발바닥의 무좀도
햇빛 하나 안 드는 이 방도
천장도 벽도 마루도
삐걱거리는 층계도
똥오줌이 넘쳐 냄새나는 변소도
미싱도 가위도 자도 바늘도 실도
바늘에 찔려 피나는 손가락도
아- 깜깜한 절망도
그 절망에서 솟구치는 불길도
그 불길에서 쏟아지는 눈물도
그 눈물의 아우성 소리도
무엇 하나 전태일 아닌 것이 없다
전태일이 아닐 때
우리는 배신이다 죽음이다
우리는 살아도 전태일 죽어도 전태일이다
 
빛고을에 때아닌 총성이 요란하던 날
학생들 손에서 총을 빼앗아 들고 싸우다가
전사한 양아치들아
너희들도 당당한 전태일이었구나
먹을 것 마실 것 있는 대로 다 내다가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서
새신랑 맞는 처녀의 가슴으로
떨리기만 하던 티상(창녀)들아
너희들도 청순하고 자랑스런 전태일이었구나
 
전태일 아닌 것들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섭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월간 문익환_7월 <늦봄과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