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

[시 속의 인물] 6. 서 승 교수(재일동포 인권평화운동가)

[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그 무지무지한 고문을 견뎌낸 19년 감옥살이
질크러진 얼굴은 이 겨레 진실한 아름다운 넋

 
◇서 승 씨와 늦봄. 1990년 10월 22일로 기록된 촬영일자는, 방북 사건으로 19개월 수감 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10월 20일의 이틀 후이다. 서 승 씨는 2월 석방되어 8~9월에 미국에서 활동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서 승 씨 결혼소식에 “이건 정말 거룩한 일”

 
정말 우리에게 대경사가 났군요. 세상에 이렇게 큰 경사가 또 어디 있으리오. 서 승 씨가 장가를 가게 되다니, 이건 정말 거룩한 일이군요. … 난 벌써 그 두 사람의 사랑의 열매들의 이름마저 지어 놓았다오. (옥중편지 1992. 2. 28)

옥중편지에서 느껴지듯, 서 승 씨의 결혼 소식을 접한 늦봄은 아마도 감옥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 것만 같다. 서 승 씨가 늦봄의 주례를 희망한 데 대해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아우 동환이 5월에 미국에 가게 되면 주례를 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편지로 전했다. 

늦봄은 2년 전의 옥중편지에서도, ‘서 승 씨의 행복이 되어주고 싶은 여성들이 그리 많다’는 예상 밖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황홀한 심정에 이르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찬사를 표했다.
 
그 억울하고 쓰라린 민족의 아픔, 그 질크러진 얼굴을 쓰다듬는 한 여성의 떨리는 손길, 품에 안아 주는 한 여성의 뜨거운 가슴, (중략) … 불의 앞에, 폭력 앞에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고, 그 무지무지한 고문을 견뎌 내고, 19년 억울한 징역살이를 이겨 낸 이 겨레의 진실한 아름다운 넋을 안아 주는 일이군요. (옥중편지 1990. 3. 22)
 

가혹한 고문에 분신자살 시도…전신 중화상


재일동포 서 승. 일본 교토 출생으로 25살에 서울대로 유학을 왔다.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조교를 시작하려던 1971년 2월 졸업 시점에 보안사에 불법 체포되었고, 모진 구타와 가혹한 고문을 견딜 수 없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전신 중화상을 입은 직후부터 그는 세 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보안사가 조작한 ‘재일교포학생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무려 19년이나 감옥생활을 한 그는, 1988년 12월 정치범 특별사면 때 20년으로 감형 처분을 받았고 1990년 2월 28일 석방되었다. 동생 서준식도 같은 사건으로 체포되어 7년의 징역과 10년의 보호감호처분을 합쳐 17년의 수감생활 끝에 1988년 5월 석방되었다.

서 승이 첫 공판에서 화상을 입은 얼굴을 드러내자 전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그가 수감된 직후부터 <서형제를 구원하는 모임>을 만들고 회보를 발행하며 19년 동안 석방 노력을 기울였다. 국제앰네스티도 1974년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며 힘을 보탰다.

 

“비전향으로 출소한 것은 나의 작은 성공”


석방 후 그는 언론 앞에 서서 출소 감회를 이렇게 말했다.
 
19년간 수많은 곤란을 당하였고, 그 속에서 수많은 방황을 반복하면서도 양심을 지켜 비전향으로 출소한 것은 나의 작은 성공이다. …사상전향제도는 양심·사상의 자유에 반하고, 민족을 분단하는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며, 결국은 분단체제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염원하기 때문에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서승 2018)

늦봄은 서 승이 단식투쟁을 하던 때 그를 면회했다. 1988년 전국 교도소에서 정치범 통일 단식투쟁 소식이 전해졌는데 대전에서도 서 승이 단식투쟁을 조직, 10월 10일 단식에 들어갔다. 단식 15일째인 10월 24일 그를 면회한 늦봄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우리들이 모든 분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고 장기수를 석방되도록 최대한 노력을 할 터이니, 식사하기 바랍니다”라고 간절히 말했고, 이를 단식 중인 모두에게 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를 확인해서 다수의 찬성으로 단식투쟁 종결을 결정했다고 한다.

시 <서 승>은 늦봄이 5번째 수감생활에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기 14일 전인 1990년 10월 6일에 썼다.  2월 석방된 서 승이 8~9월 중 미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장기수 문제를 제기하며 활동했는데, 이를 취재한 신문 기사를 읽고 그가 말했다는 내용들을 그대로 시에 인용했다.
 
19년이나 억울한 징역살이를 시킨 조국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변방에 버려진 존재였던 재일동포로서 우리 겨레의 참된 일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고요
우리 겨레의 분단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나게
값진 교훈이요 경험이었다고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의식했고 대학에서 공부보다는 ‘조선인답게 살아가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는 서 승의 겨레 사랑에, 늦봄은 무한한 칭송의 마음을 시를 통해 표현했다. 만약 자신이 20대 처녀라면 서 승을 사랑하겠다며, ‘질크러진 얼굴’로 인해 결혼 상대가 없을까 봐 은근히 걱정 했었다는 늦봄. 16개월 뒤 그의 결혼 계획 낭보에 춤출 듯이 기뻐했다.

서 승 씨는 석방 후부터 지금까지 동아시아와 미국 등을 오가며 평화와 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을 벌여 왔다. 그가 기록한 19년 옥중생활은 『옥중 19년』이란 책으로 발간되었다.

재일동포는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미묘한 중간 입장에 처해 있었고 국내에서도 직접 관심과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간첩으로 조작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장기 독재의 폐해가 극심해진 1970년대에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이 잦았고, 특히 70년대 중반부터는 간첩 혐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2021년 중반까지 재일동포 간첩 사건 연루자는 100~130명 정도이며, 이 중 30여 명이 재심 무죄를 선고 받았고 현재 3~4건이 재심 중이라고 한다.

서 승 씨가 체포되었던 때는 1971년 4월 27일 대통령선거를 2개월 앞둔 시기였다. 남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방학 중 북한을 방문했던 서 승은, 심문과정에서 북의 지령을 받아 정부타도와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했다는 혐의와 함께 김대중 후보에게 북의 자금을 전달했다는 두 가지 혐의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았다. 대선 시기에 맞춘 공작과 조작이었다.


<글: 조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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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문익환 옥중편지 (1990. 3. 22, 1990. 4. 30, 1990. 10. 6, 1992. 2. 28)
서 승 (2018). 『옥중19년』. 서울: 진실의힘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2권』 시집2. 사계절출판사
한겨레신문 (1990. 10. 6). 정연주 특파원 <서 승 씨 미국에서 한국장기수 문제 제기>
한겨레신문 (2011. 4. 24). 이인우 위원 <한겨레가 만난 사람>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4580.html

 
서 승


문익환

내가 갓 스물 한창 나이
꿈 많은 처녀라면
난 당신의 가슴에 온몸 던져
사랑으로 녹아 내리련만
당신의 꽃씨 받아 고이고이 키우련만
서 승 씨 우리 7천만 겨레의 애인이여
당신은 너무 멋져
당신은 남성미의 극치야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고문
세 번씩이나 안겨 준 조국
19년이나 억울한 징역살이를 시킨 조국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변방에 버려진 존재였던 재일동포로서 우리 겨레의 참된 일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고요
우리 겨레의 분단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나게 값진 교훈이요 경험이었다고요


당신의 입에서 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백두산 천지에 풍덩 알몸을 던지고 싶어졌다오
당신은 그 쓰라린 고통을 거쳐 새로운 삶의 모형을 창조해 내었군요
수많은 고통을 거쳐 아름답고 빛나는 인간상을 그려 내었군요
자주 평화 통일을 이룩하여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꽃피울 뿐 아니라 인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주는 위대한 지평을 열고 있군요
도무지 웃음이 되지 않는 그 얼굴로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 가슴에 안고
당신의 희끗희끗한 머리 나의 눈물로 적셔 주고 싶군요
당신의 일그러진 입술을 빨며
그 고운 얼굴 끝도 없이 어루만져 주고 싶군요


내가 사내라는 거
내가 일흔이 넘은 늙은이라는 게
이렇게 억울할 수야
(1990. 10. 6.)

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